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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易地思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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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易地思之)
  • 의약뉴스
  • 승인 2006.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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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이 처음 교류를 시작했던 무렵, 적십자 회담에 참석했던 우리측 인사들이 돌아와 기자 회견을 했다.

당시 某 신문기자는 ‘북한에 자유의 바람을 얼마나 남기고 왔냐?’며 집권자를 의식한 아부성 질문을 했다.

그러나 대표 단장이었던 ‘김범석’ 장관은 ‘북한 적십자사 대표들이 남한에 와서 공산당 바람을 남기고 가면 좋겠는지 바꿔 생각해 보라’며 순수한 적십자 교류에 정치 사상을 개입시키지 말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 광경을 TV 화면을 통해 지켜보며 진정 훌륭한 인물이라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얼마 전 금강산을 관광하고 온 某 수필가가 쓴 글 중에 ‘들녘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관광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는 순간, 50년대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 차를 발견하면 손을 흔들고 그 뒤를 좇던 시절이 떠올랐다’는 내용이 있었다.

동족을 환영하는 북녘 농부들의 순수한 감정을 비하하는 듯한 그 구절을 읽는 순간 마음이 씁쓸했다.

만일 북측 인사들이 남쪽의 한 지방을 방문했을 때 호기심 가득 찬 천진난만(天眞爛漫)한 어린이들이 그들의 차 꽁무니를 좇아오는 광경을 보고 ‘헬로, 양키! 기브미 껌!’을 연상했다는 글을 북한의 책자에 썼다면 우리의 감정은 어떠했을까?

우리는 매사를 바꿔 생각할 줄 아는 겸양 지덕을 갖춰야 한다. 금강산 관광 도중 정치성 발언으로 억류되었다가 풀려난 某씨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유도 발언에 대꾸만 했다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라. ‘월북한 남한 사람이 잘 살고 있으니 와서 확인해 보라’는 말을 북측 안내원으로부터 들었다면 공산주의자가 아닌 이상 기분 좋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적십자 회담을 적십자 정신으로 매듭지었듯이 금강산 관광은 풍물 관광으로 끝나야 한다. 거기에 사상 논쟁을 개입시키고 또 그것을 핑계삼아 관광객을 억류시킨다면 서로에게 불행한 일이다.

요즘엔 경기 은행 퇴출을 둘러싸고 구속과 불구속의 잣대 질에 대해 뒷말이 많다.

1억 원을 되돌려 준 某 도지사는 전례 없이 부부를 함께 구속하고 몇 천만 원을 받은 某 광역시 시장과 시의원은 풀어 준 수사 결과를 놓고, 그렇다면 겨우 수십 만원 혹은 수백 만원을 받은 하위직 공무원들은 왜 직위를 박탈하고 구속했느냐는 여론이 일고 있다.

부도 직전의 건설회사는 은행으로부터 수십 수백 억 원의 대출 특혜를 누리고 측근의 인사들은 법에도 없는 수천 만 원의 정치자금(?)을 얻어 쓰며 희희낙락하는 순간, 수많은 예금주들은 평생 근검 절약하여 모은 돈을 찾지 못한 채 땅을 치며 통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의 입장에 서서 반성해야 한다.

정부와 시 산하 기관이 맡겨 놓았다가 연기처럼 날린 기금 역시 공금이 아니고 그들의 개인 재산이었다면 그렇게 태연할 수 있고 성인 군자처럼 선심을 베풀 수 있었을까. 돈을 떼인 서민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시민들은 흉기를 든 ‘신창원’만 강도라고 여기지 않고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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