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5-19 04:23 (일)
추억으로 남은 인연
상태바
추억으로 남은 인연
  • 의약뉴스
  • 승인 2005.09.0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반 백년의 인생 여정을 겪어오며 기억 속에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아쉬움으로 가득 찬 그리운 사람, 짝사랑 연정을 전달해보지도 못한 채 떠나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봐야만 했던 안타까운 연인이 있는가 하면 꿈속에서조차 나타날까 두려운 악연의 대상도 있다.

사회적으로 없어선 안될 인물이 있는가 하면 존재하든 안 하든 상관없는 인물이 있고 절대로 존재해선 안될 인물도 있다.

대화 중에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말 가운데는 ‘암적인 존재’라는 단어가 있다. 하지만 암이라는 병을 가까이서 겪은 사람은 이 단어가 얼마나 모욕적인 줄을 잘 알 것이다. 암에 비유할 만큼 모든 사람들이 기피하는 즉 ‘왕따’당해 마땅한 사람을 뜻하는 것이다.

내가 구의원에 출마의사를 밝혔을 때 ‘주민 중 △△△는 절대로 조심하라’는 염려 섞인 조언의 전화를 여러 사람으로부터 받았다. 그때 나는 ‘어떻게 인생을 살았기에 그분들의 기억 속에 오점을 남겼을까’ 하고 연민의 한숨을 내쉰 적이 있었다.

내가 아는 동장님들 중엔 훌륭한 분들이 많지만 특별히 감사와 존경심으로 추억을 장식하고 있는 분이 있다. 이완수(전 구의원) 동장님과 현재 남동구청 총무과장으로 승진한 민병현 동장님이다. 이완수동장님은 구월2동에서 소식지 ‘밝은 소리’를 창간한 후 간석3동사무소에 부임해서도 ‘돌말사람’을 창간하여 지금까지 이어 내려오고 있다.

민병현 동장님은 만수5동사무소에 부임하여 소식지 ‘비루고개’를 창간하고 문화센터까지 개설했으며 간석2동사무소에 부임하자마자 ‘석뫼골’을 창간한 분이다. 두분 모두 복지부동하며 임기나 때우면 될 것을 사서 고생을 한 분들이다.

민동장님이 관내에 고등학교 입학금을 못 내고 있다는 여학생의 딱한 사연을 전하며 남동구약사회에 도움을 청했을 때 나는 흔쾌히 여약사위원회 장학기금을 전달했다. 민동장님이 내 마음속에 존경스런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동장님에 대한 첫인상이 좋지 않았다면 그 뜻이 훌륭해도 장학금을 협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내게도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부친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을 때 모친은 스물 다섯의 청상이었고 나는 생후 보름밖에 안된 핏덩어리였다.

외갓집 식구들은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저 것들을 키워 무엇하냐? 창창한 앞날을 생각해 팔자를 고쳐야 된다!’며 다그쳤다. 아직도 생생한 네 살 때의 기억 때문에 지금도 이모와 외삼촌에 대한 나의 감정은 순탄치가 못하다.

또한 당시의 불안한 정서로 인해 성격 형성 과정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요즘처럼 본드를 들이마시고 가출을 하는 문제 청소년으로 탈선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뿌린 대로 거두어들이듯 상대의 가슴속에 심어 놓은 추억의 씨앗은 언젠가는 업보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 인생이란 생각이 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