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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 박 전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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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 박 전 화
  • 의약뉴스
  • 승인 2005.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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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폭력이란 기사가 심심지 않게 매스컴을 타고 있다.

신상 협박용이든 여성을 상대로 한 성폭력용이든 당해 본 사람이 아니면 장난 정도로 웃어넘겨 버리는 것이 전화 폭력이기도 하다.

개인은 전화 번호를 변경하면 그만이지만 직책을 맡고 있는 공인으로선 회무상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약사회장직을 맡으며 나는 두 번의 협박 전화를 받았다.

그 사건을 통해 위험에 처한 나를 보호해 줄 진정한 이웃이 누구인가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두 번째 협박 전화 사건은 1997년 7월 9일에 일어났다. 관내에 120평이나 되는 초대형 약국이 들어왔다. 업주인 비약사가 약사를 고용하여 불법으로 영업을 하는 약국이다.

처자식을 부양하기 위해 면허 대여 약국을 개업했다는 것까지는 양해할 수 있다. 요는 제약회사보다도 10% 내지 20%나 싼 가격인 일반 약국 판매가의 절반 값으로 덤핑하는데 있다.

생명을 다루는 약을 백화점 바겐 세일 하듯 하므로 써 오랫동안 믿고 상담해 왔던 단골 손님들로부터 주변 약사들은 도둑 취급을 당하기 시작했다. 끝내는 생업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될 지경에 다다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선 사업가가 아니다. 손해보고 판만큼 보충을 시켜야 하기에 파렴치한 짓을 해야만 한다. 소비자가 찾는 약 대신 잘 알려지지 않은 약을 바가지 씌워야 하고 필요하지 않는 약까지 보따리로 안겨 매상을 올려야 한다.

그런 능력은 약사가 아닌 전문 ‘카운터 맨’ 만이 가능하다. 주변 약사들은 저들을 제재하지 못하는 회장의 무능을 탓하며 직무 유기를 성토하는 전화를 걸어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면허 대여라는 사실도 심증만 있는 상태이고 면허를 빌려준 약사가 자신의 약국이라고 우기는 데는 할 말이 없다. 만에 하나 면허를 빌려 준 사실이 들통나면 면허 정지 6개월이기 때문에 위장술 역시 필사적이다.

고작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정부에서 정해 준 공장도 가격 이하로 판매할 경우 이를 적발해 처벌하는 것뿐이다.

그것도 겨우 20개 품목을 선정해 암행 감사로 판매 가격 위반을 적발한 경우 1차는 3일 영업 정지나 벌금, 2차는 7일 영업 정지나 벌금, 3차는 15일간 영업 정지시키는 것인데 그나마도 처리 기간이 1개월 이상 걸린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비(非) 약사들의 조제 행위 증거를 마련해 관계 당국에 고발하는 것인데 위험을 무릅쓰고 나설 약사들이 없다. 도미노 현상으로 약국을 폐업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낀 회원들과 가족들은 진정서를 작성해 서명 날인을 받아 왔다.

나는 진정서를 담당 검사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수사를 하고 안하고는 밑에서 일하는 실무자의 손에 달렸기 때문이다.

진정서라는 압력 때문인지 수사가 시작되었나 보다. 9일 오후 4시와 5시경, 신분을 밝히지 않는 사내로부터 협박 전화가 걸려 왔다.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했으니 네 눈에서도 피눈물이 날 줄 알아라! 오늘밤 9시부터 가족을 차례차례 회를 떠서 죽일 테니 몸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평소, 수상한 전화를 녹음해 온 습관대로 단 한마디의 대꾸조차 하지 않은 채 이번 협박 전화도 녹음을 했다.

내가 관여하고 있는 파출소 소장님의 자문을 받아 즉시 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녹음된 테이프를 들고 경찰서를 찾아갈 때도 약국 문을 걸어 잠그고 아내와 막내딸을 동행시켰다.

협박 내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형사계 직원은 퇴근 시간도 미룬 채 강력계로 사건을 넘겨주었다. 그곳엔 구청에서 열리는 학교 폭력 근절 협의회 때 경찰서장을 대신해 참석해 온 소년 담당 여직원이 화사한 미소로 나를 반겨 주었다.

하지만 청소년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해 주어야 할 내가 오히려 신변 보호를 요청하러 왔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경찰서장의 결재를 맡아 전화국에 협박 전화 발신인 추적 장치를 설치하고 밤 9시부터 담당 형사가 경계 근무를 시작하자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틈틈이 몽둥이를 든 조카를 약국 앞에 세워 놓기도 했다.

이튿날, 임원 회의를 소집했다. 아무도 회장의 신변을 염려한 대책 회의를 소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이 제 머리를 깎는 격이었다. 그나마도 밤이 되면 불안한 우리 가족의 처지는 아랑곳없다는 듯 밤 10시 반에 소집한 임원들은 11시가 다 되어서야 나타났다.

나의 약국 주변은 가구점들이기에 밤 9시만 되면 상가가 철시하여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더욱이 어제 밤엔 내가 안에서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괴 청년이 약국에 들어와 살피다가 아내가 나타나자 뒤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골목으로 사라졌다는 내용까지 임원들에게 전하며 사태의 긴박함을 호소했었다.

걱정이 된다며 잠시 방문을 하거나 전화 한 번 해 줄 만한 임원이 다른 핑계를 대며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런 임원일수록 자신의 아쉬운 일은 빠지지 않고 연락을 해 오곤 한다. 그나마 참석한 임원들도 차기 회장이나 다른 임원이 이런 일을 당할 것을 대비해 회원들이 관심을 갖도록 하려 했던 나의 의도와 달리 ‘경호원을 고용하되 그 비용을 회비에서 지출하여 사건을 더 이상 확대시키지 말자’는 사무적인 의견을 제안할 뿐이었다.

내가 회비를 아껴 둔 것은 회장인 나의 안위를 위해 사용하려 함이 아니라 다른 임원과 회원들의 권익을 위해서였다. 그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엄청난 경호 비용을 따져 보지도 않고 형식적으로 대응하는 저들이 야속했다.

결국 나는 회비를 아끼기 위해 가구점을 경영하는 조카를 밤 9시부터 근무시켰다.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지역의 약사들은 성금을 걷어 C. C- TV를 내 약국에 설치해 주었고 그 지역 간사장 K약사는 틈틈이 남편을 보내 내 약국을 지켜 주었다.

고교 동문 후배인 Y약사도 약국이 끝나면 나에게 달려왔다. 약사회장직 수행에 대한 회의감을 다소나마 가라앉혀 주는 위안이었다. 발신인 추적 장치가 작동되면서 전화를 걸어온 상대방의 전화 번호가 자동으로 통보되어 왔다. 담당 형사는 즉시 협박자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서 강력계로 출두할 것을 명령했다. 범인은 긴가민가하면서도 형사의 목소리를 농담으로 받아 들였다.

하지만 휴대폰이든 일반 전화이든 매번 전화를 걸어올 때마다 즉시 그 번호로 담당 형사가 전화를 걸자 자신의 전화 통화가 추적 당하고 있음을 깨달은 듯 했다.

어느 날, 그는 존댓말을 사용하며 전화를 걸어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더 이상 협박 전화를 하지 않겠다며 나 때문에 자신의 사업이 망했으니 후에 조용히 만나자고 했다. 나는 아무 때고 약국으로 찾아오라고 이르며, 약사와 그 가족 287명이 진정서를 낸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잘 알고 있으며 회장이기 때문에 내가 십자가를 지게 된 경과도 알고 있지만 평소 내가 검찰청에 자주 드나든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감정을 품었다고 했다.

그는 약사가 아니면서 면허를 빌려 약사 행세를 한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으며 도피 중에 있으며 나로 인해 살인 협박죄까지 추가된 피의자가 되었다. 결국 그는 동업자의 제보에 의해 구속되었고 형량을 감할 수 있도록 협박전화에 대한 고소를 취하해 달라며 모친을 보내왔다.

죄가 밉지 인간이 미우냐며 응해 주었지만 약국에 수상한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우며 C. C-TV를 녹화했던 나의 일과(日課)와, 밤늦게 돌멩이를 들고 귀가하는 내 아들의 가슴 조이는 이야기가 제삼자에게는 어떤 무게로 가슴에 와 닿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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