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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선은 부드러웠고 품격은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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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선은 부드러웠고 품격은 넘쳤다
  • 의약뉴스
  • 승인 2013.04.02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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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은 한 번에 가서 맞출 수 없었다. 이것저것 잴 것도 많았고 그에 따라 가격도 자꾸 올라갔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광장시장 쪽에서 할 생각이었으나 무슨 연유에서 인지 한 번 가더니 종각 뒤편의 어느 한 복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세종인지 한국인지 혹은 대한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뒤에 무슨 주단이 붙어 네 단어어로 된 한복집 이었던 것 같다.

광장시장 쪽에 비해 규모는 비슷했지만 원단은 더 많이 쌓여 있어서 천장까지 차고 올랐다. 푸짐한 인상의 주단집 아주머니는 어머니를 대모라고 불렀다. 나는 이런 호칭은 처음 듣는 것이어서 나중에 집에 돌아오면서 대모가 촌수로 몇 촌간인지 물었다.

어머니는 촌수로 셀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친척은 아니지만 아주 남은 아니라면서 말을 아꼈다. 나도 더 이상 묻지 않았는데 혈연관계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막 대할 수는 없을때 부르는 적당한 호칭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대모라고 불리는 사람에게 하대를 하거나 하지 않고 깎듯이 존대를 했는데 아주머니는 아주 미안해하면서 자꾸 말을 놓으세요 대모님 하고 말끝마다 대모님 하고 말했다.

나한테는 아저씨라고 불렀는데 내가 아저씨가 될 만큼 나이가 먹지도 않았고 집안 어른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런 호칭으로 불리는 것이 어색했으나 아주머니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저씨 아저씨 하고 불러 진짜 내가 아저씨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집은 아버지의 소개로 왔다. 아버지는 선친 때부터 교류가 있었던 집안이라고 말했는데 어머니는 아주머니를 보는 순간 어떤 낌새를 느꼈던지 경계심을 보였다.

짙은 화장에 웃을 때 눈 꼬리가 길게 늘어지는 전형적인 요염한 타입이었는데 어머니는 아버지가 이 여자에 대해 좋은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아버지는 소리 소문 없이 미리 한복을 맞추었고 가족사진을 찍을 때 기왕이면 모두 한복을 입자고 해서 나왔던 것인데 처음에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다가 우리가 광장시장에 갔다 온 날 버럭 화를 내면서 한복이라면 사업차 만나 알고 있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실력도 있다고 언성을 높였다.

가격은 깎지 말고 부르는 대로 주면 알아서 해주는데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바느질 솜씨가 좋다고 하셨다. 그 말도 어머니는 귀에 거슬렸다. 나라까지 들이 대면서 한복솜씨를 칭찬하는 것이 나도 어쩐지 어색해 보였다.

어찌되었든 엄마와 나는 한복을 맞추기 위해 주단집을 세 번인가 갔고 형은 따로 두 번을 갔다. 형은 그 여자 화장이 너무 심해라고 고개를 흔들었고 그래서 다음에 또 와야 한다는 것을 이것으로 끝내자고 우겨 두 번에 한복을 맞췄다고 말했다.

어머니 한복은 조금 복잡했다. 남자들 한복은 바지와 저고리가 기본으로 들어가고 허리띠나 대님 조끼 등으로 간편했다. 하지만 어머니 한복은 저고리와 치마에 속점삼 바지 단속곳 속치마 버선 등이 추가됐다.

입는 것도 불편하고 벗는 것도 불편했지만 무엇보다 걷는 것이 어색했다. 등 뒤에 꽃히는 시선도 부담스러웠지만 서걱 서걱 거리는 소리가 불안했다.

하지만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자 모두 귀한 사람들인 것처럼 광채가 났다.

특히 어머니는 눈부셨는데 노란바탕에 붉은색 꽃무늬가 들어간 상의와 붉은색 단색의 치마가 어울려 마치 여왕이라도 된 듯이 자태가 고왔다.

그런 모습으로 웃고 있으니 한 결 너그러웠고 우아했으며 품격이 넘쳐났다. 한복의 부드러운 선에 나는 이런 옷도 한번쯤은 입어 볼 만 하다고 감탄했다.

그래서 나는 명절날이면 꼭 한복을 입었는데 손님이 다 돌아간 저녁이 되어도 벗지 않고 빈둥거렸다. 그런 모습에 형은 너는 꼭 샌님 같구나, 기집애 처럼 화려한 것을 좋아 하는 것을 보니 하고 놀렸다.

놀릴 때 입꼬리가 위로 올라 갔는데 웃을 때 드러나는 표정과 같았다. 그런 표정으로 형은 액자 속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형과 나는 나란히 청색 계통의 한복상의를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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