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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법 제정 불구, 수련 환경은 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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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법 제정 불구, 수련 환경은 제자리
  •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 승인 2019.08.01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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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협, 산재 승인 촉구 기자회견....“과로 노출 여전”

전공의법이 마련됐지만 전공의 수련환경에 대한 문제점은 여전했다. 특히 지난 2월 가천대 길병원에서 근무하다 사망한 故신형록 전공의로 인해 주80시간을 넘겨선 안된다는 전공의법의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한전공의협의회(회장 이승우)와 故신형록 전공의 유족은 지난 30일 인천노동복지합동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故신형록 전공의의 죽음에 대한 산재 승인을 촉구했다. 경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이날부터 故신형록 전공의의 산재 승인 여부를 심사해 오는 8월 5일 결과를 밝힐 예정이다.

▲ 대전협은 지난 30일 인천노동복지합동청사 앞에서 故신형록 전공의의 죽음에 대한 산재 승인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대전협 이승우 회장은 “대한민국 전공의가 처한 참혹한 현실이 누군가의 죽음으로 드러나게 됐지만 현장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고 오히려 점점 더 심하게 굴러가고 있다”며 “다시는 이런 참혹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방지대책 마련과 산재승인을 촉구하기 위해 대전협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열리는 오늘 이곳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평소에 지병이 없던 청년이 갑자기 근무 중에 사망했다는 사실은 다시 한 번 저희 마음을 아프게 할 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공의들이 바로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공포로 다가온다”며 “故신형록 선생님은 환자를 위해, 남아있는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퇴근 시간보다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3시간에 이르는 시간을 더 일했다. 법적으로 보장된 휴게시간조차 없이 최대 근무시간을 훨씬 초과하는 근무를 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동료들은 기억하고 있다. 故신형록 선생님은 지속적으로 과로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근로환경에서 심각한 만성과로에 시달리던 중 담당 환자 상태가 악화되면서 사망 당일에는 정신적 스트레스 또한 극심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근로복지공단 산재 인정기준에는 주 60시간 이상 근로, 주 52시간 이상에 더해 가중요인 1개, 주 52시간 미만에 더해 가중요인 2개 이상을 과로로 인정하고 있다”며 “가중요인에는 근무일정 예측이 어려운 업무, 교대제 업무, 휴일이 부족한 업무, 유해한 작업환경에 도출되는 업무,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 시차가 큰 출장이 잦은 업무,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가 해당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故신형록 선생님의 근무시간은 주 60시간 이상 근로보다 터무니없이 많은 것은 물론, 휴일도 부족했고 정신적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업무를 지속하고 있다”며 “의사의 노동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전공의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죽어 나가는 것을 지금처럼 무책임한 태도로 내버려 둔다면 왜곡된 의료체계에서 묵묵히 희생을 감내하고 있는 1만 6000명 전공의의 행동을 보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故신형록 전공의의 유족은 “제 동생의 죽음으로 가천대 길병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벌금은 과태료 500만원이었다. 유가족으로서 비참한 마음이 들게 한다”며 “지금도 여전히 바뀌지 않은 현장에서 제 동생처럼 아이들을 사랑하고 전문의를 꿈꾸고 있는 많은 전공의들이 살인적인 근무환경을 이겨내고 있다. 제 동생이 이번 산재 판정을 받음으로써 과도한 근무환경에서 수련 받고 있음이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전공의법 이후에도 과로에 시달리는 전공의
전공의의 열악한 수련환경에 대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전공의특별법’이 마련, 지난 2017년 12월 23일부터 시행됐다.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은 전공의의 주당 최대 수련시간을 80시간으로 제한하되, 교육적으로 필요한 경우 88시간까지 추가할 수 있고, 최대 연속 수련시간은 36시간이지만 응급상황인 경우 40시간까지 초과근무가 가능하며, 최소 휴식시간(10시간)을 규정했다.

‘수련환경평가위원회’를 설치·운영해 수련환경 개선, 수련병원 지정, 수련교과과목, 수련규칙표준안 및 수련환경평가 등을 심의하고, 세부적이고 전문적인 심의를 위해 5개 분과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했다.

그러나 전공의법으로 최대 88시간이라는 상한선이 정해졌지만 전공의의 수련 및 근무환경은 개선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의료계 안팎에서 들려오고 있다.

▲ 대전협은 지난 2월 ‘수련환경 개선 촉구 및 전공의 사망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2018 국정감사 정책자료’를 통해 보건복지위원회 소관 보건복지부 주요이슈로 ‘전공의 수련 환경 문제점’을 검토한 바 있다.

당시 입법조사처는 “실제로 전공의의 60%이상이 80시간을 초과한 주당 평균 87.3시간을 근무하고 있고, 최대 연속 근무시간도 평균 70.1시간으로 규정보다 2배 가까이 연속 근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수련환경평가위원회에 전공의의 입장을 대변하는 통로가 의사회가 추천하는 전공의 대표로 한정돼 있어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전공의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전협에서 파악한 故신형록 전공의의 근무표만 살펴봐도 입법조사처의 지적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故신형록 전공의는 지난 1월 7일부터 13일까지 월, 목, 토 등 3일만 당직을 서게 됐으나, 실제로는 일요일에도 당직을 섰다. 그 다음주인 14일부터 20일까지는 수요일과 토요일에만 당직을 하게 됐지만, 실제로는 금요일도 당직을 섰고, 故신 전공의가 사망한 바로 전 주인 21일부터 27일에는 원래 존재하지 않은 월요일에 당직을 선 것으로 파악됐다.

길병원 측에선 故신 전공의의 정규 근무는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총 11시간 근무 중 2시간은 휴게시간이라고 했으며, 당직 근무는 오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24시간 근무 중 수련 인정 시간은 20시간이고, 4시간은 휴게시간이라고 주장했지만 대전협이 파악한 바에 의하면 故신 전공의의 실제근무시간은 주 평균 118시간, 최대 연속 근무는 1월 12일 오전 7시부터 1월 14일 오후 6시까지 59시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이승우 회장은 “故신 전공의는 퇴근 시간 후에도 환자를 위해, 그리고 남아있는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3시간에 이르는 시간을 더 일하고 있었다”며 “길병원은 주당 80시간을 지켰다고 하지만 사실 故신 전공의는 일주일 168시간 중 110시간을 일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이는 길병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수많은 수련병원이 근무시간을 지킨 것처럼 보이기 위해 보장되지도 않은 휴식시간을 교묘하게 끼워 넣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전공의의 명의로 처방을 내게 하는 탈법적 행위를 강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1월 대전협이 인턴·전공의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8 전국 전공의 병원평가’ 결과를 살펴보면, 현재 인턴·전공의들이 처해있는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설문 대상이 된 82개 수련병원의 인턴·전공의 평균 근로시간은 ‘78.32시간’으로 나타났는데, 이 중 27개 병원은 전공의 특별법 규정 80시간조차 준수하지 않았다. 가장 높은 평균 근로시간을 기록한 병원은 94.33시간을 기록하기도 했다.

적절한 휴식 시간 역시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당직근무 종료 후 정규 시작 전까지 실질적인 휴식 시간을 묻는 질문에 전체 평균은 6.7시간, 82곳 중 28개 수련병원이 6시간 미만이라고 답했다. 평균 휴게 시간이 0시간, 30분인 곳도 있었다.

상황이 이러니, 전공의들은 수면 부족 등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노릇. 대전협에서 실시한 ‘전공의 업무 강도 및 휴게시간 보장에 관한 설문조사’(전국 90여개 수련병원, 전공의 660여명 참여)를 살펴보면 전공의 81.1%가 평소 수면을 충분히 취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항상 충분하다’고 응답한 전공의는 0.9%에 불과했다.

특히 전공의들은 ‘36시간 연속 수면 없이 근무했다’, ‘이러다 죽겠다 싶은 생각을 하며 새벽까지 일한다’, ‘집중력이 떨어져 무거운 수술 도구를 나르다 다쳤다’, ‘환자를 착각해 다른 환자에게 검사하거나 투약할 뻔한 적이 있다’ 등 불안감을 나타냈다.

야간당직을 서는 날의 피로도는 더욱 높았는데, 전공의 35.9%가 야간당직 시 담당하는 입원환자 수가 평일 주간의 통상 업무시간에 담당하는 입원환자 수의 3배 이상에 달한다고 답했다.

야간당직으로 인한 스트레스 수준도 그만큼 높았다. 10점 만점에 평균 7.7점으로 분석됐으며, 10점 만점이라고 답한 전공의 비율도 21.5%에 달했다.

◇전공의 수련환경, 정부가 적극 나서야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전공의법과 여전히 가혹한 전공의 수련환경에 대한 해결책은 없을까? 

국회 입법조사처에서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에 대해 “수련환경평가위원회의 활성화를 위해 평가시스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과 함께, 전공의 수련과 관련한 의사결정 과정에 당사자인 전공의의 참여는 필수적이라고 해결책을 제안했다.

하지만 수련환경평가위원회의 기능이 실효성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선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전협 이승우 회장은 “현재 수련환경평가위원회 위원은 15명인데 이중 전공의는 2명이다. 전공의 참여를 좀 더 늘려야한다”면서 “위원회 회의시간도 전공의에 대한 배려가 없다. 전공의들이 근무를 하고 있는 시간에 회의를 진행하면 실질적인 전공의 참여가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전공의의 참여에 있어 한 가지 더 배려해야할 부분이 전공의가 속해있는 병원에 대한 협조 요청공문을 보내달라는 것으로, 지금 위원회에 참여하는 전공의들은 개인적인 휴가를 사용해 회의 참석하고 있다”며 “전공의들이 참여할 수 있는 시간과 회의 참석에 대해서 좀 더 배려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수련병원 지정 취소를 할 수 있다는 게 법령에 명시돼 있지만 시행된 적이 한 번도 없다. 실제로 사례가 있어야 효력이 생기는 지만 할 수 있다는 내용만 명시돼 있으면 실효성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올해 초 시정명령이 나온 수련병원들에 대한 재평가도 무작위 추출에 의한 현지조사가 이뤄져야하는데, 이조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병원계 뿐만 아니라 정부에서 더욱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故신형록 전공의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젊은 의사가 110시간을 근무했다가 사망했으면 의사여서가 아니라 당연히 산재로 인정해줘야한다고 본다”며 “故신형록 전공의에 대한 산재 인정으로 끝날 게 아니라 그와 같은 처지의 전공의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병원계 뿐만 아니라 정부의 적극적인 제도적·재원적 뒷받침이 있어야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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