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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하워즈 엔드(1992)- 나무에 박힌 돼지 이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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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하워즈 엔드(1992)- 나무에 박힌 돼지 이빨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4.04.06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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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당신이 사람을 죽였느냐. 암흑가 보스의 아내가 물었다.

그런 일 없어. 오, 내 사랑 난 당신을 믿었어요. < 대부>의 한 장면은 남자의 세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비정한지 잘 보여준다. (그 순간 아내는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 그 자체다. 나중에 눈치 챈 것과는 별개로. )

이런 질문도 있다.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하워즈 엔드>에서 마가릿( 엠마 톰슨)은 며느리가 어떤 말을 했는지 남편에게 묻는다. 남편 헨리 월콕스( 안소리 홉킨스)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은근슬쩍 넘어간다.

하지만 마가릿이 알았더라면 별일 아닌 것이 아니다. 월콕스의 사별한 전처는 핏줄이라고는 전혀 섞이지 않은 마가릿에게 영화의 제목이며 저택 이름인 하워즈 엔드를 유산으로 남겼다. ( 며느리가 한 말은 ‘시어머니 뜻대로 됐네’ 였다.)

그걸 윌콕스는 현재의 아내인 마가릿에게 말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사람을 죽여 놓고도 태연히 아니라고 부인하는 장면과 흡사하다.

사업을 하는 윌콕스 역시 남자의 세계는 여자가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이 있다고 말한다. 세련된 것을 찾고 독서나 하는 당신이 남자의 삶을 알겠어. 남자의 유혹에 대해 뭘 아느냐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월콕스는 아래 등장하는 주연급 조연인 바스트 아내의 정부였다. )

이렇게 서두를 시작하고 나니 이 영화가 남자 대 여자의 대결처럼 흘러갈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남녀가 나오는 영화에서 그런 갈등이 없을 리 없다.)

마가릿은 여동생 헬렌( 헬레나 본햄 카터)과 더없이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책을 읽고 이해하고 거기에 맞춰 멋들어진 대화를 하고 감상에 빠져 그들이 보고 듣는 세상은 온통 꽃들이 만발해 있다. (실제로 하워즈 엔드의 고택에는 세상의 모든 꽃들이 만발해 있는 듯하다.)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이지 싶다. 헬렌은 언니보다 한술 더 뜬다. 멋진 문장은 마치 그녀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다. 직업도 없으면서 먹고 살 걱정거리라고는 없는 이상의 세계에서 자매들은 현란을 하루를 보내고 있다. 외로움과 걱정거리는 모두 남의 것이다.

하루는 헬렌이 음악회를 간다. 베토벤의 피아노 선율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지구는 헬렌 자매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헬렌은 음악회 도중 일어난다. 밖은 비가 내린다. 마침 그녀의 손에는 우산이 들려 있다.

한 남자가 그녀의 뒤를 쫓고 있다. 집까지 따라온다. 바스트(사무엘 웨스트)는 우산의 주인이 자신이라고 말한다. 인연은 이렇게 시작돼서 운명으로 엮인다. 바스트는 아내가 있다.( 윌콕스의 정부라고 표현한 바로 그녀다.)

보험회사에 다니는데 상류층은 아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그 대열에 낄 조짐은 가지고 있다. 부지런히 독서 하고 사색하고 음악회에 참석하는 이유가 되겠다. 한편 마가릿의 옆집으로 윌콕스가 이사를 오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만난다.

상류층 윌콕스는 바스트가 다니는 회사가 곧 파산할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가능하면 그러기 전에 빨리 직장을 옮기라는 것. 오지랖 넓은 헬렌은 그 사실을 바스트에게 말하고 바스트는 헬렌 말대로 은행으로 직장을 옮기는데.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주인공들의 관계가 원만하게 흘러간다. 그러는 와중에 마가릿은 윌콕스의 아내가 된다. 월콕스의 아들, 딸, 며느리는 마땅이 자신들이 가져야 할 재산을 뺏길까 봐 전전긍긍한다.

여기에 어머니의 유언까지 확인했으니 불안은 더해간다. ( 유언은 서명이나 날짜도 없고 연필로 썼다는 이유로 법적 실효성이 없다는데 의견이 모아진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유언장은 모닥불의 재로 변한다.)

▲ 태어나면서부터 금수저를 물고 나왔을 마가릿과 헬렌은 음악과 책과 예술을 사랑하고 인간을 이해하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다.
▲ 태어나면서부터 금수저를 물고 나왔을 마가릿과 헬렌은 음악과 책과 예술을 사랑하고 인간을 이해하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다.

이제 화려한 영상은 음습한 비를 몰고 온다. 바스트는 이직한 직장에서 해고돼 빈민층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헬렌은 참지 못한다. 월콕스의 잘못된 정보 때문에 바스트 부부가 위기에 처했다면서 책임을 윌콕스에게 돌린다.( 헬렌은 월콕스의 차남과 약혼까지 했으나 결혼에 이르지는 못했다. 차남은 헬렌을 내치면서 어젯밤은 제 정신이 아니었다. 나이지리아는 문학과 예술을 아는 멋진 여자가 살 곳이 못된다는 핑계를 댔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 화를 참지 못하는 헬렌은 그 문제로 언니와도 불화한다. 급기야 그녀는 런던을 떠나 독일로 향한다. 하지만 자매가 누구인가. 책을 사랑하고 낭만을 알고 이상을 꿈꾸는 지성들이 아닌가.

세월은 흐른다. 헬렌은 바스트의 아기를 임신했다. ( 놀라 자빠질 일이다. 호숫가 수작질이 예사롭진 않았으나 선을 넘을 줄이야. 무엇이든 돕겠다는 헬렌의 보트 속 언약이 이런 것이었던가. 진보와 양심을 앞세우면서 아내가 있는 남편의 아이를 가진 헬렌.)

남자가 상처가 있고 그 상처를 자신이 치유해야 한다는 마음에서인지 불륜에 어떤 죄책감도 비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적어도 바스트 부인에게는 어떤식으로든 감정 표출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도 없다. (대신 헬렌은 엄청난 수표를 준다. 바스트는 받을 수 없다며 돌려준다. 바스트의 아내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당신 같은 사람은 책에만 있는 줄 알았다고 칭찬하는 바스트에 대한 배려라고 하기에는 나가도 너무 나갔다. 어쨌든 마가릿은 그런 헬렌의 태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헬렌을 내칠 수도 없다.

책을 가져가라는 핑계로 하워즈 엔드로 헬렌을 초대하는 마가릿. 거기에 바스트도 끼어든다. 자신의 최후를 맞게 될 것도 모르는 바스트. 그는 헬렌으로 인해 잠시 행복했다 영원히 불행한 처지가 됐다.

양심과 책임을 자처했던 헬렌의 동정이 바스트를 지옥의 문으로 떨어트렸다. 그는 죽었다. 그러나 그의 자식은 살아서 하워즈 엔드의 주인이 된다면 그와 헬렌의 엮임은 해피 앤딩인가, 아닌가.

영상이 한 마디로 폭발적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영화가 있을까 싶다. 포스터의 원작을 바탕으로 했으니 주인공들이 주고받는 언어는 가히 반발한 정원의 꽃처럼 생기가 넘친다. 2020년 한국에서 재개봉 됐다.

국가: 영국, 일본

감독: 제임스 아이보리

출연: 엠마 톰슨, 안소니 홉킨스, 헬레나 본햄 카터

평점:

: 1차 대전 직전의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성장하는 신흥 부유층과 사다리를 올라타려 하나 거꾸러진 중산층의 스산함이 묻어 있다. 거기에 헬렌을 중심으로 진보하려는 세대와 월콕스를 중심으로 보수하려는 두 진영의 대결도 엿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성 대결로까지 볼 수 있는 장면도 여럿 나온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대결보다는 화해와 수습으로 가닥이 잡혀간다. 제목이면서 저택의 이름인 하워즈 엔드의 주인이 마가릿으로 낙찰됐기 때문이다.

하워즈 엔드는 단순한 집이 아닌 영혼의 안식처 그 이상이다. 죽은 전처와 마가릿 만이 아는 나무에 박힌 돼지이빨의 전설처럼.

월콕스의 전처 유언이 실현됐다. 더구나 마가릿이 죽으면 그 집은 헬렌의 자식에게 돌아가도록 했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모든 대결들은 깨끗이 해소됐다고 봐야 하나.

다른 건 다 그렇다고 쳐도 월콕스의 진실에 대한 해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당신은 한 번도 진실 된 적이 있었느냐고 마가릿이 뒤늦게 항변해 보지만 그의 입에서 진실이 나오기를 바랄 수는 없다.

그는 마가릿이 죽을 때까지 전처의 유언이 실현됐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대부>의 신흥 보스가 아내를 속였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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