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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 발생시 국가배상책임 적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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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 발생시 국가배상책임 적용해야"
  •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 승인 2019.12.24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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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덕 재판연구관..."의사-환자 등 사회적 갈등 최소화"
▲ 대한의료법학회는 지난 21일 대법원과 함께 ‘의료기관 개설과 의료과오의 새로운 쟁점’이란 주제로 ‘2019년 동계공동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전 국민이 가입된 국민건강보험이라는 공적 보험이라는 특징을 이용, 의료사고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을 적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한의료법학회는 지난 21일 대법원과 함께 ‘의료기관 개설과 의료과오의 새로운 쟁점’이란 주제로 ‘2019년 동계공동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대법원 이상덕 재판연구관(판사)는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의료배상책임에 미치는 영향’이란 발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매년 법원행정처에서 발간하는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0년대 매년 1심 법원에 접수되는 의료소송의 사건 수는 평균적으로 대략 1000건인데, 그 중 약 20%는 조정ㆍ화해, 약 30%는 원고 승소(일부 승소 포함), 나머지 약 50%는 원고 패소로 종결된다.

통계상 약 30%는 원고 승소로 파악되고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원고가 청구한 손해배상금액이 전부 인용되는 경우는 약 1%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원고 청구금액을 대폭 삭감한 일부승소 판결이 선고되고 있다.

이상덕 재판연구관은 “현재 의료소송 시스템과 의료배상책임 법리에 의하면 의료소송에서 환자 측이 승소하기 매우 어렵다”며 “의료인은 의료사고가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소송을 제기당해 일종의 죄인 취급 받는 문제가 있다”고 전했다.

이 연구관은 “법원의 의료감정에 결정적으로 의존하지만, 감정절차 지연으로 소송이 장기화되고 있고, 권위있는 주요 대학병원의 교수들이 감정을 잘 수락하지 않는 등 감정결과의 전문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감정절차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고 감정인들을 부당한 청탁이나 압력에서 보호할 제도적 안전장치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판결결과에 대해 패소한 당사자로부터 강한 불신을 받는다는 게 이 연구관의 설명이다.

이 연구관은 “현 의료소송 시스템 및 불법행위책임 법리로는 법원이 의료분쟁을 제대로 재판하기 어렵다”며 “의료소송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ㆍ장기적으로 입법정책적 차원에서 의료행위에 내재된 위험을 사회화해 의료사고를 공적 보험에서 보상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에 대한 입법적 개선이 이뤄지기 전, 현행법 하에서 의료소송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과도기적 해결방안으로 의료배상책임을 국가배상책임으로 규율해야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제도는 지난 1977년 제정된 의료보험법에 의해 시작됐으며, 점차 적용범위를 확대해 1999년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해 보험사업자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단일화되고, 전 국민이 건강보험 적용대상이 돼 현재 모습이 갖춰졌다.

우리나라에서 국민건강보험의 가입자나 피부양자인 국민이 의료기관에서 받는 의료서비스는 원칙적으로, 대부분 국민건강보험이라는 공적보험의 일환으로 행해지는 것.

이 연구관은 “국가배상법 제2조에 의하면 공무원 또는 공무를 위탁받은 사인이 공무를 수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타인에 손해를 입힌 경우에는 공무원에 일을 맡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손해를 배상해야한다”며 “공무원에게 경과실이 있는 경우 국가나 지자체는 구상할 수 없고, 피해자가 공무원에 손해배상을 구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같은 국가배상책임 제도는 공무원에 일을 맡긴 국가나 지자체의 면책을 불허하는 한편, 경과실 공무원을 면책시킨다는 점에서 피해자 보호 및 공무원 보호에 입법취지가 있다”며 “국가보상법 제2조의 공무원이란 형식적으로 공무원 신분을 가진 자에 국한하지 않고, 공무를 위탁받아 실질적으로 공무에 종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전했다.

그는 “의료기관이 국민건강보험의 가입자나 피부양자인 국민에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기관의 지위에서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를 건보공단을 대신해 제공하는 활동으로, 명백히 공무에 해당한다”며 “논란이 있겠지만 적어도 공무를 수행하는 실질적 의미의 공무원에 해당한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국가배상법 적용범위와 관련해 헌법 제29조는 국가배상책임 주체를 ‘국가 또는 공공단체’라고 넓게 규정하고 있지만, 국가배상법 제2조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라고 규정해, 공공단체의 경우 어느 법에 따라 배상책임을 부담해야하는지 논란이 있다”며 “이 문제에 대해 대법원이 분명하게 판단한 판례는 없는 상태”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공법인이 수행한 공무에 관해 국가배상법이 적용되는 것을 전제로 공법인이 국가배상책임을 부담하는 행정주체라고 판단한 판결이 나오고 있다는 게 이 연구관의 설명이다.

지난 2010년 1월 선고된 대법원 판결을 살펴보면, 해당 사건은 파주시장으로부터 행정대집행을 위탁받은 한국토지공사가 민간용역업체에 철거용역 도급계약을 체결해 행정대집행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상대가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안이다.

한국토지공사가 행정대집행을 위탁받아 수행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의미의 공무원에 해당해 공무원 경과실 면책 법리가 적용돼야 하는지가 쟁점이었는데, 대법원은 “행정대집행을 실행한 업무를 담당한 한국토지공사 직원, 민간용역업체 및 소속 직원의 경우 실질적 의미의 공무원에 해당하지만, 한국토지공사는 공무원이 아닌 행정주체로 국가배상책임을 부담해야하고, 경과실 공무원 면책법리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연구관은 “민간용역업체의 경우 경과실 공무원 면책 법리가 적용돼야한다는 점에서 의문을 품지 않았다”며 “공법인에게 공무를 위탁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국가배상책임 성립을 부정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견해에 의하면 건보공단과 같은 공법인도 요양급여의 제공이라는 공무 수행과 관련, 국가배상법에 따른 배상책임을 부담해야한다는 게 이 연구관의 설명이다.

이 연구관은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하면 국민건강보험사업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아 주관하는, 국가사무로 사업운용의 효율성과 행정실무상 편의를 위해 산하 공법인인 건보공단을 설립해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 제공과 관련된 하자로 환자에 손해가 발생했다면 공무를 위탁한 국가도 배상책임을 부담해야한다”며 “다만 행정의 효율성이라는 건보공단의 설립취지와 재정손실을 국가재정으로 메워주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환자 측은 건보공단을 상대로 배상책임을 청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이 연구관은 의료사고에서 국가배상책임을 적용하는 방안의 실천적 의의로 ▲건보공단의 책임 확대 ▲의료인의 경과실 면책 ▲별도의 배상기준ㆍ절차의 활용 ▲위험의 사회화 및 사회적 갈등의 최소화를 꼽았다.

그는 “현재 의료사고 배상책임은 민법상 일반 불법행위책임에 관한 법리, 즉 주관적 과실책임 원칙과 환자의 증명책임 원칙을 기본으로 한다”며 “의료사고에 국가배상책임을 적용하는 경우, 1차적으로 건보공단에 배상책임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배상책임의 범위 확대(성립요건 완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가배상법은 피해자 보호를 입법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각국의 법률과 판례는 책임성립요건으로서 과실의 객관화ㆍ고도화, 증명책임 완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며 “다만 대법원 판례는 이에 관해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데, 공무원 직무집행이 사실은 경우는 국가배상의 성립을 넓게 인정하고 있지만, 처분에 해당하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국가배상법은 공무원 보호(경과실 면책)을 입법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의료사고가 의료인의 경과실로 발생한 경우, 배상책임을 건보공단이 부담하고 의료인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게 필요하다”며 “건보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 이행제공을 위탁받아 수행한 의료인은 ‘실질적 의미의 공무원’에 해당하므로 경과실 공무원 면책 법리를 적용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당연지정제를 통해 모든 의료기관과 의료인이 개별적 동의 없이 강제로 국민건강보험의 요양기관으로 동원되고 있는데, 경과실로 발생한 결과에 대해 막대한 배상책임을 부담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료기관이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를 국민에 제공한 것에 대한 비용은 건보공단과 의약단체의 계약 등으로 정해지는 수가로 결정되는데, 여기에는 의료인이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해야하는 위험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의료서비스가 국민건강보험이라는 공적 보험을 통해 제공되는 이상, 의료서비스의 하자로 인한 손해배상책임도 공적 보험이 부담하는 것이 당연”이라며 “만약 국가나 건보공단이 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않으려면 민간 의료기관을 국민건강보험 요양기관으로 강제동원하지 말거나 의료사고 위험을 요양급여비용 산정에 반영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의료사고 위험의 사회화는 의료배상책임이 국가배상책임 제도를 매개로 해 산재보험 제도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지향해야한다”며 “의료사고의 위험은 환자나 의료인에 전가하는 것이 아닌 공적 보험을 통해 사회적으로 분담, 의료사고 피해자에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고 사회 전체의 갈등과 비용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국가배상책임을 적용, 이로 인한 손해는 의료인의 고의ㆍ과실 유무를 따지지 않고 1차적으로 건보공단이 건강보험재정에서 배상하고, 의료인에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구상해야한다”며 “이를 통해 의료사고에 따른 환자와 의료인 사이의 직접적 갈등은 대부분 없어지게 될 것”고 말했다.

또한 이 연구관은 장래 개선입법에서 국가나 건보공단이 부담해야하는 배상책임의 범위와 정도에 대해 2가지 측면을 고려해야한다는 점을 주장했다.

그는 “하나는 현재 의료소송에서 인정되는 의료인의 배상책임을 하회해서는 안 디는데, 환자 입장에선 현재보다 지위가 나빠지는 걸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다른 하나는 공적 보험을 통한 의료사고의 위험의 사회화라는 관점에서 국가ㆍ건보공담이 부담해야할 배상책임을 현재보다 강화해야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보험재정 확충 및 건강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는 점은 감내해야한다는 게 이 연구관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이상덕 재판연구관은 “의료사고에 대한 건보공단의 배상책임을 국가배상책임으로 이해하는 경우에도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해 의료사고 배상금을 별도의 급여항목으로 규정해야한다”며 “이를 통해 국가배상이 아닌 법률 규정에 의한 사회보장적 성격의 보상제도로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 연구관은 “고의 또는 중과실에 의한 의료사고에 대해 형법상 상해죄, 업무상과실치사상죄에 의한 처벌, 의료법에 의한 의사자격정지ㆍ취소처분과 같은 단호한 제재가 필요하다”며 “건보공단이 피해자에게 배상한 후, 의료인에게 이를 구상하는 조치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선 의료인의 고의ㆍ중과실 여부를 판정하는 절차와 불복할 경우 항고소송 방식의 다툴 기회가 보장돼야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의료인의 고의ㆍ중과실 여부는 결국 전문가위원회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며 ”위원회에는 전문의, 의료법에 전문성에 있는 학자와 법조인 외에 의료인단체와 환자 또는 의료소비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단체에서 추천하는 사람도 포함하는 것이 공정성ㆍ객관성ㆍ중립성을 담보하기 위해 바람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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