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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여행을 꿈꿔본 적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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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여행을 꿈꿔본 적 있나요?
  • 의약뉴스
  • 승인 2007.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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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아 장편소설 『달의 바다』
▲ 정한아 장편소설 '달의 바다'
스물다섯의 나이로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해 주목받고 있는 정한아 씨의 장편소설 『달의 바다』(문학동네)가 최근 출간됐다. 인물들에 대한 따뜻한 묘사에서부터 생에 대한 냉정한 통찰까지 이번 작품에 쏟아지는 ‘찬사’(?)들이 많았지만, 정작 필자가 빠져든 것은 서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고모의 ‘편지’였다.

혹시 작가가 미국항공우주국 ‘NASA’와 같은 데서 일하는 사람이 아닐까라고 의심할 정도의 생생한 묘사는 그동안 판타지적으로만 그려졌던 우주공간이 마치 손에 잡힐 것처럼 ‘구체적인’ 공간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다리를 접은 발사자세를 취하고 있던 저는 순식간에 하늘로 튀어 올라갔어요. 우주선이 출발할 때는 어떤 기분일까 늘 궁금했는데 표면이 엉망인 선로 위를 달리는 낡은 화물열차에 탄 것 같은 느낌이더군요.” - 1997.1.17

“사람들은 우주유영을 무척 낭만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엄청난 육체노동이에요. 우선 우주복 때문에 온몸이 둔하고 갑갑한데다, 팔다리를 움직이는 데에도 아주 많은 힘이 들거든요. 저는 허리에 끈을 매달고 드라이버로 우주선 외벽의 나사를 조이고 있었는데, 자꾸 드라이버를 돌리는 쪽으로 몸이 같이 돌아가는 바람에 애를 먹었어요.” - 2003.3.16

“처음에 저는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공중에 떠다니는 것에 충격을 받았어요. 무중력에 대해서 모르진 않았지만 단순히 아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죠. 사람들은 누운 채로 천장을 짚으면서 나타나고, 거꾸로 서서 인사를 해댔어요. 바닥을 딛고 걸어 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2001.8.16

이렇듯 한 편에서는 ‘고모’의 생생한 우주여행 이야기가 진행되고, 한 편에서는 ‘나’의 고달픈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자그마치 오 년 동안 기자 입사시험에 매달렸지만 번번이 마지막 작문 시험에서 떨어지는 ‘나’는, 그래서 백수다. 이번에도 합격자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지 못한 ‘나’는 “순간 끝장을 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혀 열입곱 군데의 약국을 돌며 이백 알의 감기약을 모아 집으로 돌아온다.

‘졸음’과 같은 죽음의 전초를 느끼며 돌아온 ‘나’에게 할머니는 십 육년 전 집을 떠난 ‘고모’이야기를 비밀스럽게 꺼내게 되는데, 우울한 ‘나’와 환상적인 고모의 ‘편지’는 그렇게 조우한다. ‘나’는 잊고 지낸 고모를 떠올려 낸다.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까지 장학생으로 졸업했던 고모는 미혼모로 아들 ‘찬이’를 낳고 몇 년 뒤 갑작스럽게 결혼을 통보를 하고 ‘로저’와 함께 ‘찬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떠났었다. 그리고 1년 뒤 ‘미안해요’라는 쪽지와 함께 ‘찬이’만 한국으로 보냈다. 그로부터 15년이 흘렀다.

그렇게 가족과 인연을 끊었다고 생각했던 ‘고모’가 할머니에게 ‘편지’로 연락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그동안 고모에게 받은 편지와 함께 돈 봉투를 건네며 자기 대신 고모를 만나고 올 것을 부탁하고, 별다른 출구가 없었던 ‘나’는 단짝인 ‘민이’와 함께 편지 속의 ‘고모’를 찾아 미국행에 오른다.

소설은 이렇듯 갑작스런 ‘고모’의 소식과 함께 낙방 끝에 떠밀려 고모를 만나러 가는 ‘나’의 현실과, 할머니에게 보내온 ‘고모’의 꿈같은 우주여행 일지가 절묘하게 교차되면서 두 이야기가 하나로 연결되어 나간다. 그리고 그 안에는 트렌스젠더가 되고 싶은 ‘민이’의 꿈과 현실이, ‘달’에서 살고 싶은 할머니의 꿈과 현실이 뒤섞인다.

소설의 첫 머리에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이 있어요? 그건 사실 끔찍하리만큼 실망스러운 일이에요”라고 말하는 고모의 ‘편지’는 이 소설의 큰 줄기인 ‘꿈’과 ‘현실’에 대한 작가의 질문이면서 열쇠말이다. 작가는 우울한 현실과 환상적인 꿈의 거리 사이에서 ‘우리의 삶은 어떻게 지속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은 소설 중반쯤 나타나는 ‘반전’을 통해, 그리고 인물들이 찾아가는 ‘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꿈’과 ‘현실’이라는 것이 동전의 양면처럼 전혀 다른 것이지만 함께 있다는 것. 행복한 ‘꿈’은 고통스런 ‘현실’이 있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고, 우리는 그 ‘꿈’이 있기 때문에 고통스런 ‘현실’을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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