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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무명초(1929)- 돈 일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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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무명초(1929)- 돈 일원의 힘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4.03.11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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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호소할 곳이 없다, 오갈 데가 없다,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최서해는 그의 작품에 살인과 방화를 집어넣었다. <홍염> <탈출기> <누이동생을 따라> 등은 물론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이런 극단적인 내용은 자주 볼 수 있다.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막다른 골목에 몰렸기 때문에 더는 참을 수 없어 그런 비극을 주인공이 저지른 것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흰옷 입은 백성들의 처지는 이처럼 오갈 데 없이 비참했다.

기아와 수탈은 그들이 겪는 일상의 일이다. 대다수가 그런 가운데 소수는 그렇지 않아 문제가 발생한다. 비극이 탄생하는 이유다.

이런 비극은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침잠하게 만든다. 그러나 <무명초> 같은 작품은 보기 드물게 그렇지 않다. 물론 여기에도 찢어지게 가난한 백성들의 고된 삶이 눅진하게 묻어난다.

하지만 그 흔한 낟가리에 불을 지르고 산속으로 숨거나 벼린 낫을 들고 설치는 장면은 없다. 되레 후반부는 해피엔딩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상쾌하게 맺고 있다.

주인공은 31살 경상도 김천사람으로 이름은 박춘수이고 하는 일은 소작농이 아니다. 가난에 시달리다 못해 북만주나 간도로 쫓겨나지 않고 조선땅에서 그것도 경성에서 산다.

▲ 최서해의 '무명초'는 다른 작품과 달리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비교적 해피하게 결말을 맺는데 그것이 더 가슴을 저리게 한다.
▲ 최서해의 '무명초'는 다른 작품과 달리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비교적 해피하게 결말을 맺는데 그것이 더 가슴을 저리게 한다.

손에 흙 묻히지 않고 펜대를 굴린다. 그가 다니는 회사는 <반도공론>으로 초창기에는 이름을 날렸다. 다른 잡지와는 색채가 달라서 조선 민중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박춘수는 어깨 으쓱, 거들먹 거리는 부르조아지의 생활에 어울린다. 하지만 잡지는 3년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다른 잡지와 다른 색채가 발목을 잡았을 것이다.( 그런 내용은 없으나 아마도 그런 잡지를 일제가 가만두지 않았을 터.)

가난은 소작농뿐만 아니라 식자층에게까지 들불처럼 번지고 있었다. 춘수가 부양하는 식구는 넘쳐난다. 노모에 누이동생에 부인에 자식까지 무려 일곱 명이다. 방 한 칸에 일곱이 겹쳐서 자니 출근하는 길이 솜처럼 젖어 있다.

친구 집 대청마루에 기대 자니 몰골이 말이 아니다. 그래도 아직은 가야 할 사무실이 있다니 다행인가. 춘수는 천근만근 몸을 이끌고 창신동 좁은 골목을 거쳐 동대문을 지나 종로통으로 향하고 있다.

전철을 탈 돈이라도 있다면 이 고생을 면할 텐데. "여보 저녁거리가 없으니 오늘은 일찍 들어오세요." 누가 들을 새라 아내가 넌지시 던진 말이 귓속을 맴돌고 있다.

굶어 죽을 수는 없다. 어떻게든 오늘은 변통을 하고 말리라. 10시에 출근해 보니 학예부 기자실에는 자신 말고 아무도 없다. 망한 회사, 여러 달 월사금이 밀린 회사에 누가 나오겠는가 싶으나 갈곳 없는 동료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그들도 없기는 마찬가지. 우두머리 흉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삯은 고사하고 단돈 몇 푼이라도 받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다들 며칠씩 굶었는지 먹어야 일을 하지, 나오는 것은 한숨 뿐이다.

그때 와서 교정을 보라는 인쇄소의 전화가 울린다. 갈 사람이 있나. 눈치만 본다. 그깟 잡지 만들어서 어디에 쓰나. 당장 저녁거리도 없고 아이 월사금도 못내 학교에서 쫓겨나는 판국이다.

춘수는 동료들과 이런 잡담을 하면서 옆집 아이가 먹는 참외 타령을 하다 제 엄마에게 얻어터진 딸아이를 생각한다. 발가락 끝에서부터 열불이 솟는다. 대장간의 연기가 핑핑 도는 잘 드는 칼로 가슴을 박박 긁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다가 문득 돈 백 원만 있으면 원이 없겠다고 상상한다. 로또 당첨되면 뭐 할까 하는 것처럼 백 원만 있으면 집도 짓고 사업도 하고 그러다가 백 원이 천 원이 되고 만원이 된다.

참 허무한 꿈이다. 사장을 동정하기도 한다. 조선에서 잡지사업은 생돈 쓸어 넘는 것이라고. 그들도 돈이 없어서 그렇지 있다면 왜 밀린 월급을 주지 않겠느냐고 위로한다. 남 걱정하는 선량한 우리 춘수.

오후가 되자 춘수의 몸은 더욱 좋지 않다. 온 몸이 후줄근하게 땀이 젖는다. 열이 난다. 학질에 걸렸나. 금계랍이라도 먹으면 나으련만. 밥도 못 먹는데 약 먹을 돈이 어디 있나. 죽을 때 죽더라도 돈이나 꾸어보자.

죄지은 사람처럼 중학 친구를 찾아 청진동을 거쳐 중학동으로 찾아든다. 지금도 그렇지만 일제 시대도 남에게 돈 꿔달라는 말이 입에서 바로 나오겠는가. 신문사에 근무하는 친구를 찾아가서는 원고를 써주고 돈을 변통하려는 계획도 세운다.

도둑질 빼고는 뭐든 다해볼 생각이다. 이꼴저꼴 안 보고 꽉 죽고 싶기도 하다. 한 번 궁경에 빠지자 좀처럼 일어서질 못한다. 세상을 떠나고 싶다. 그러나 발 길은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해 있다.

겨우 얻은 일원을 아내에게 건네자 화색이 갑자기 변한다. 돈벼락을 맞은 듯 흐린 빛에 광채가 인다. 돈 일원의 힘이라니.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겨우 저녁 한 끼 일뿐이다. 내일 아침과 아이들 월사금은 어쩌고 또 집세는.

집세 받으러 온 사람과 한바탕 싸우고 나니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다. 꼴에 정의파라고 자신처럼 집세에 시달리는 젊은 아낙을 두둔한다. 그러나 그뿐이다. 춘수는 밤새 설사를 했다. 네 살 딸 옥선은 아파서 열이 펄펄 끓는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자신은 아파도 아이는 살려야지. 없는 놈에게 자식은 원수라고 이를 갈면서도 안면이 있는 수표정에 있는 아는 의사를 찾아 나서는 춘수. 약값만 칠팔 원은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는데 광교아래 축 늘어진 아이를 안고 아래만 겨우 누더기로 가린 여인을 보면서 그래도 나는 저보다는 낫다고 위로해 본다. 자책을 하면 할수록 자신만 망가진다. 없는 놈이 자식을 낳으면 죄악이라고 해봤자 이미 낳은 자식인데 어쩔 수 없다.

어디 하소연할 데가 있는가. 언제나 좋은 세상이 오려나, 나오는 것이 한탄뿐이다. 병원 간판은 자신을 비웃고 있다. 돈도 없는 주제에 치료를 받으려고 오다니. 그러나 의사는 딸아이의 약을 지어준다.

그리고 백지장처럼 창백하고 지친 춘수를 보고는 어디 아프냐고 묻는다. 그리고 춘수도 치료해 준다. 눈감으면 코 베어가는 세상에서 이런 친절이라니 가당키나 한가.

: 최서혜식 작품의 결말이라면 의사는 당연히 춘수를 문전박대 해야 옳다. 돈 가지고 와라, 그래야 치료해 주고 약 지어준다, 돈 가져 왔나. 아니오. 그럼 썩 꺼지시오.

춘수는 품에 든 칼을 꺼내 의사를 찌른다. 그리고 자신도 피묻은 그 칼로 죽는다. 이런 식의 결말이 맞다.

조선을 탈출했으나 간도는 조선만도 못한 박군의 <탈출기>나 살인과 방화의 비극으로 끝맺는 <홍염>이나 어린나이에 부모 잃고 뿔뿔이 흩어진 누이동생의 죽음으로 끝나는 <누이 동생을 따라> 등을 <무명초>는 따르지 않고 있다.

의사가 왜 문전박대를 하지 않고 친절을 베풀었는지 단지 기분이 좋아서라는 표현으로는 해석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춘수는 어린애에게 먹일 약 봉지를 손에 들고 기뻐하고 있다.

어색한 웃음과 마지못해 응대하는 의사의 태도, 돈가져 왔나 묻는 표정에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나 하다가 피차 편하게 죽지 않고 살았다. 작가는 왜 이런 해피한 결말을 맺었을까.

그런 질문보다는 오늘은 그렇다 쳐도 내일 눈뜨면 달라진 것이 없다는 암울하 미래가 씁쓸하다. 오늘 비극은 면했으나 내일은 그렇지 않을 거라는 암시였을까. 지긋지긋한 가난의 세월을 견뎌온 선조들의 인내에 가슴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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