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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 아무르(2012)-사랑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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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 아무르(2012)-사랑과 죽음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4.02.15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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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안느(에마뉘엘 리바)를 위해 누군가가 그 일을 해야 한다면 조르주(장루이 트랭티냥)가 하는 게 맞다. 맞다니. 그 일은 누군가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누구도 해서는 안 된다. 조르주는 더더구나.

그 일이 무엇이고, 맞는지 안 맞는지는 나중에 이야기하자. 안느와 조르주는 늙었다. 하지만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넉넉한 살림살이와 온화한 성품 그리고 음악회를 찾아다닐 만큼 건강하다.

그러던 어느 날( 여기서도 어느 날이 문제다. 모든 일은 어느 날에 일어난다.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안느에게 문제가 생겼다. 오른쪽 마비가 온 것이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는 말이다.

길고 긴 간병이 시작된다. 간호는 남편 조르주가 담당한다. 해낼 수 있고 해야만 한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자, 내 몸과 바꿔도 아깝지 않을 아내이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이었으면 아니 한 달, 두 달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끝이 보이지 않는 간병에 지쳐가는 남편과 몸도 마음도 악화 일로를 걷는 아내. 두 사람은 매일 힘겨운 하루를 보낸다.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어떻게든 참고 견뎌 보겠는데 상황은 더 나빠진다. 딸이 있지만 저 살기도 바쁘다. 어쩌다 와서 한다는 말은 이 지경이 될 동안 뭐 했느냐고 아버지를 원망하는 일뿐.

▲ 치매와 하반신 마비 아내를 간병하던 남편은 사랑하는 아내를 저 세상으로 보낸다.
▲ 치매와 하반신 마비 아내를 간병하던 남편은 사랑하는 아내를 저 세상으로 보낸다.

그렇게 잠시 실랑이하다 자식은 가고 남은 간병은 고스란히 남편 몫이다. 물리치료나 운동요법은 무용지물이다. 다시는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아내. 요양병원 같은 곳은 절대 보낼 수 없다는 남편.

사랑은 이제 지옥으로 변해간다. 치매는 점차 심해간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아내. 그래도 일상은 지속된다. 집값은 폭등하고 주식은 폭락한다. 친구의 장례식장에도 가야 한다. 이제 아내는 먹기를 거부한다. 입을 벌리지 않는다. 

억지로 떠먹였으나 곧 뱉는다. 조르주는 참다못해 때린다. 이 장면을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 있을까. 아무 소리 없이 검은 화면만 십 초 이상 떠 있다고 해도 충격과 공포는 가시지 않는다.

먹지 않는다는 것은 죽겠다는 것. 이렇게 사는 것은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 더는 남편에게 피해를 끼치기 싫다는 것. 그러니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손찌검을 한 남편은 참회의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어쩌다 이런 일이.

하지만 일상은 다시 시작이다. 간호사를 부른다. 일주일에 세 번. 다른 간호사도 오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제대로 간병하기보다는 돈만 밝힌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조르주는 이제 두 손을 들고 만다.

낮엔 자고 밤엔 자지 않고 비명을 지르는 안느를 어쩌지 못한다. 그렇다고 신경안정제만 줄 수만은 없다. 조르주는 결단해야 한다. 편지를 쓴다. 결단은 바로 앞서 언급한 그 일이다.

아내를 저세상으로 보내는 그 일을 다른 사람이 아닌 조르주 자신이 해야 한다. 방안에 들어온 비둘기를 잡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하얀 국화 한 송이면 영원한 작별이 가능하다.

키케로는 말했다. 인생의 모든 시기는 죽음에 노출돼 있으나 노년이 되면 죽는 날이 멀지 않았다고. 그리고 죽음은 재앙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조르주는 사랑하는 아내 안느를 보냈다. 그는 사랑의 절정에서 이별을 택했다. 누가 조르주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그저 먹먹할 뿐이다.

국가: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감독: 미카엘 하네케

출연: 장루이 트랭티냥, 에마뉘엘 리바 

평점:

: 시종 차분하고 차갑다. 감정이입은 없다. 간혹 암전. 작중인물도 다섯 손가락을 셀 정도다. 대화도 별로 없다. 화면은 움직이기보다 정지돼 있다. (촬영감독은 참 편하겠다.)

그래도 몰입감은 최고조에 이른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 간병이 문제다. 얼마 전 95세 아버지 49재를 마쳤다. 석 달 정도의 간병 기간이 있었다. 간병인 구하는 것이 수백만 원에 달하는 간병비보다 더 힘들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죽음과 노인의 간병 문제를 떠올렸다. 간호간병 통합서비스가 확대 시행된다고 하니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가 과연 조르주처럼 그런 친절하고 자상한 간병인이 될까 두렵기도 하다.

누구나 늙고 늙은 것은 훈장이 될 수 없다. 더 늙기 전에 ‘노년에 대하여’ 같은 우아한 말 대신 현실적인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히든>, <하얀리본>, <해피엔드> 등을 감독한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이 영화로 숱한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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