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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리지아(1838)-나의 리지아 리지아 리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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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리지아(1838)-나의 리지아 리지아 리지아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4.01.07 1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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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사람에게 죽음을 거부하는 의지가 있다면 생을 연장할 수 있을까. 인간이 연약한 의지라는 단점만 지니지 않았다면 과연 죽음에게도 완전히 굴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신 역시 집중된 의도로 모든 존재에 스며드는 거대한 의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애드거 앨런 포 역시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리지아>를 통해서 과연 그것이 가능한지 시험해 보았다.

그러기 위해 주인공인 리지아를 병들게 했고 아프게 만들었고 급기야 사망하도록 했다. 리지아가 죽기 전 그녀는 남편인 나의 손을 오랫동안 잡고 애정과 열정을 넘어 숭배의 모습까지 보였다.

이것은 한 치도 의심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넘치는 축복의 고백을 받고 난 순간 나는 사랑하는 그녀를 잃는 저주를 받았다.

세상을 뜨던 날 밤 자정에 그녀는 자신이 지은 시를 나에게 암송하라고 말했고 나는 ‘보라! 지금은 찬란한 잔치의 밤/ 외로운 해의 하룻밤!’ 그리고  ‘그 극의 주인공은 벌레, 정복자임을 확인한다’고 마지막 줄을 읽었다.

리지아는 그 정복자가 정복되는 일이 단 한 번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말이냐, 인간이 연약한 의지라는 단점만 지니지 않았더라면 천사에게도 죽음에게도 완전히 굴복하지 않을텐데! 라고 절규했다.

리지아 역시 연약한 의지라는 인간의 단점을 극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죽음에 강력히 맞섰고 오로지 삶만을 위한 거칠고 강한 욕망을 드러냈음에도 그녀는 죽었고 죽고나서 막대한 유산을 남겼다.

그래서 나는 슬픔이 깃든 라인 강변을 떠나 영국의 황량한 사원을 골라 이주했다. 하지만 리지아와 함께 했던 장소를 떠났어도 그녀를 잊을 수가 없어 아편으로 연명했고 그런 흐릿한 정신으로 로웨나를 교회의 제단에서 신부로 맞이한 다음 그녀를 신혼 방으로 데려갔다.

여기서 포는 이 방을 영원히 저주받을 방이라고 썼다. 왜 그런가. 이곳에서 리지아의 후계자 로웨나가 죽었기 때문이다.

전체가 하나의 창으로 된 오각형을 통과한 햇빛과 달빛이 방안의 모든 사물에 소름 끼치는 광채를 던졌더 바로 그 방. 방의 모서리에는 룩소르의 왕능에서 가져온 거대한 검은 화강암 석관이 있고 방 벽에는 천장 꼭대기에서 발끝까지 무겁고 육중한 주름이 잡힌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방 전체가 끔찍스러우면서 불안한 생기가 더해진 곳에서 나와 로웨나는 신혼 한 달을 보냈다. 하지만 나는 즐겁기 보다는 심하게 침울했고 그런 내 성정을 보고 아내는 사랑보다는 날 혐오했다.

나는 그런 혐오를 받아들였고 그것은 순전히 내 영혼 속에 여전히 무덤 속의 여인 리지아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로웨나는 열병에 걸렸고 곧 나았으나 다시 병에 걸렸다.

이번 병은 심각했다. 첨탑 뒤에서 무언가가 움직인다고 하거나 커튼에서 작은 소리가 들리고 거기서 이상한 움직임도 있다는 것이다. 그녀에게는 들려왔고 보였으나 나에게는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

포도주라도 먹으면 나을까. 나는 아내를 위해 병을 꺼내기 위해 향로 아래로 갔고 그 순간 보이지 않아도 무언가 손에 잡힐 듯 가볍게 내 몸을 스쳐 가는 느낌과 천사의 형상을 한 희미하고 불분명한 그림자를 목격했다.

이쯤되면 아내의 말을 전부 헛소리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아편에 절어 있었어도 그렇지. 이상한 일은 또 일어났다. 방의 공중에서 빛나는 루비빛 액체가 서너 방울 아내가 먹는 술병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아내의 병세는 급속히 악화됐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사흘째 되는 날 하인들은 장례를 논했고 나흘째 아내는 죽었다. 나는 아내의 관 앞에서 밤을 세우고 있었다. 어느 순간 황당한 환영들 가운데 리지아가 나타났다.

리지아에 관한 수천의 기억이 몰려왔고 비탄의 심정이 가슴속에 소용돌이쳤다. 아내의 관 앞에서 먼저 죽은 리지아가 가슴속으로 파고 들었던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밤새 시체를 골똘히 바라봤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시체의 몸에 생기가 돌았던 것이다.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아무리 약에 취해 있고 죽은 전처에 대한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고 해도 환영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말한다. 약하지만 혈색이 뺨과 눈꺼풀 주변으로 장밋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쁨이라기보다는 공포의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로웨나가 아직 살아 있다니.

▲ 리지아는 죽은 두 번째 부인을 통해 다시 살아났을까. 리지아의 생명에 대한 의지는 그만큼 강렬했다.
▲ 리지아는 죽은 두 번째 부인을 통해 다시 살아났을까. 리지아의 생명에 대한 의지는 그만큼 강렬했다.

나는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고 망설이고 있는 영혼을 불러 세우기 위해 홀로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런데 그녀는 살아나기보다는 원래 그 상태 다시 시체로 돌아가고 있었다. 눈꺼풀과 뺨에서 혈색이 사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입술은 쪼그라들고 시체 특유의 경직 증상도 나타났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나는 다시 살아 있는 리지아의 환영에 열렬히 빠져들어갔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흘렀을까. 관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고 곧 그것이 한숨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 시체가 말까지 하고 있다. 어찌된 일인가. 죽었다가 살았다가 다시 죽었다가 살아나고 있다. 나는 시체 쪽으로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황급히 달려갈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입술의 뻣뻣함이 풀리면서 밝은 진주 같은 고른 치아가 나타나는 것을. 사살이 이러니 내 시야가 침침해지고 이성은 방황할 수밖에 없다. 소리에 이어 이마와 뺨에도 밝은 빛이 드러났고 심지어 심장도 약하게 뛰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가 살아났다. 나는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열정적으로 아내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아내의 몸에서는 이내 혈색이 가시고 맥박은 멈추었으며 입술은 죽은 자의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무시무시한 밤이었다. 그 밤이 끝나갈 무렵 죽은 것이 분명해 보였던 그녀가 다시 한번 꿈틀거렸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현상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소생의 희망이 없는 끔찍한 부패상태에서 깨어나고 있다니.

이번에는 더 격렬하다. 시체는 움직였고 생명의 빛깔은 반짝였다. 비록 눈꺼풀은 감겨 있고 장례용 붕대와 휘장 때문에 납골당 분위기를 풍기기는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녀가 죽음의 족쇄를 벗어나는 것으로 보였다.

그녀가 몽유병자처럼 일어나 방의 중앙을 행해 걸어가고 있었다. 이것은 신의 부활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과연 그녀 로웨나는 리지아처럼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을까.

: 마무리는 지어야겠다. 누구라도 이런 경험을 했다면 생각은 미친 듯 혼란할 것이고 정신은 가라앉힐 수 없을 만큼 산란해 진다.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존재가 과연 살아 있는 로웨나 일 수 있을까.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발을 만져 봄으로써 이런 의문이 풀리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내가 손을 뻗는 순간 그녀는 움츠렸고 그 순간 수의가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술렁이던 밤의 공기 속으로 치렁치렁 헝클어진 머릿단이 떨어졌다. 한밤중의 까마귀보다 더 까만색.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인물이 서서히 눈을 떴다. 검은색 중에서 가장 찬란한 검은 그 눈동자를 나는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그것은 잃어버린 내 사랑 리지아의 광기어린 눈이었다. 다른 모든 것은 몰라도 이것만큼은 진실이다. 결코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다. 리지아는 죽지 않았다.

그녀는 앞서 언급했듯이 연약한 의지라는 인간의 단점을 극복하고 죽음에게 굴복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로런스 등 많은 평론가들은 포의 대표작으로 <리지아>를 꼽고 있다.

얼마나 리지아에 대한 사랑이 깊으면 환영으로, 실제로 이렇게 나타날 수 있을까. 리지아가 학식과 미모가 뛰어나고 재산이 많고 두 번째 부인 로웨나와 여러 가지로 비교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리지아>는 단순한 추리나 공포라기보다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강렬한 삶의 욕구와 죽음이라는 또 다른 메시지를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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