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10-09 09:00 (수)
423. 터미네이터 2(1991)- 기계만도 못한 인류
상태바
423. 터미네이터 2(1991)- 기계만도 못한 인류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4.01.03 14: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약뉴스]

사람에게만 선인과 악인의 대결이 있는 것은 아니다. 로봇들도 선악이 분명하다. 천만 관객을 넘기고도 파죽지세로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에는 악마 전두광(황정민)과 이에 맞선 이태신(정우성)이 등장한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터미네니터 2>는 악마 T-1000(로버트 패트릭)과 대항마 T-800(아놀드 슈왈제네거)이 맞선다. 악마라고 했으니 영화의 결말은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다. 과연 기대대로 악마가 패하고 선이 승리할까.

인류는 핵전쟁으로 멸망했다. 그러나 다 죽은 것은 아니고 일부는 살았다. 살아남은 그 일부인 미래의 지도자 존 코너( 에드워드 펄롱)를 처치하기 위해 T-1000이 왔다. 그가 오는 과정은 T-800과 마찬가지로 자못 흥미롭다.

그는 경찰 복장이다. 이동 수단은 차량이다. 가죽 잠바 차림에 오토바이를 모는 T-800과 확연히 구분된다. 벌거벗은 몸에서 완벽한 변신에 성공했다. 이제 존 코너를 찾아야 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미래 어느 날에는 저항군의 리더이나 지금은 꼬마인 존 코너는 세상 물정 모르는 말썽꾸러기다.

공부 대신 오토바이를 즐기는 것이 존 코너의 일상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양부모 아래서 제멋대로다. 엄마 사라 코너( 린다 해밀턴)는 정신 병원에 갇혀 있다. 로봇에서 인간으로 변신한 두 터미네이터는 훔친 돈으로 오락에 열중인 존 코너를 쫓고 있다.

하나는 그를 죽이기 위해 다른 하나는 그를 보호하기 위해. 둘의 대결이 볼 만 하다. 볼 만 하니 눈 팔 새가 없다. 둘은 총을 맞아도 죽지 않는다. 더구나 T-1000은 액체 기계다.

차에 깔려 찌그러져도, 머리가 두 쪽 나도 다시 원상태로 회복된다. 심지어 염산에 녹아도 일어선다. 그 과정은 너무나 황홀해 정말로 저런 로봇이 존재한다면 사채를 끌어서라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한편 사라 코너는 강인한 여전사의 힘으로 자신을 가둬놓는 의사와 감시인을 제압하고 아들과 함께 온 T-800과 합세한다. 그러면서 미래의 어느 날 지구를 멸망하게 만들 핵 과학자를 처치하기 위한 모종의 계획을 시도한다.

▲ 악당 터미네이터 T-1000이 최후의 대결이 펼쳐지는 용광로 앞에서 이 정도로는 어림없다는 듯이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 악당 터미네이터 T-1000이 최후의 대결이 펼쳐지는 용광로 앞에서 이 정도로는 어림없다는 듯이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과학자를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과학자는 아직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심판 받는 것에 불만을 품었으나 핵 개발의 모든 것이 들어있는 건물을 파괴한다. 이제 남은 것은 T-1000과의 최후 일전.

악당이라고 이미 말했으니 그가 죽을 것이라고 짐작한 관객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얼음 조각처럼 부서져도 살아 남았으나 철을 녹이는 용광로 속에서는 더는 버티지 못했다. 다 끝났다. 만신창이가 된 T-800은 수리하면 된다.

하지만 그는 자신도 위험한 존재라면서 스스로 악당의 길을 따른다. 존 코너는 울지만 엄마는 그가 매달린 쇠줄의 버튼을 누른다. 그가 가라 앉으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장면은 ‘아 윌 비 백’ 같은 대사처럼 관객들의 머리에 각인 된다.

터미네이터 2는 악당이 패배했다. 그렇다면 <서울의 봄>에 나오는 악당 두목 전두광은 어땠을까. 그는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완벽하게 이겼다. 반면 저항군 대장 이태신은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철저하게 파괴됐다.

그러나 우리는 선인이 승리한 영화에서도, 악당이 승리한 영화에서도 모두 진한 감동을 느낀다. 영화는 이런 것이다.

국가: 미국, 프랑스

감독: 제임스 카메론

출연: 아놀드 슈왈제네거, 로버트 패트릭, 린다 해밀턴, 에드워드 펄롱

평점:

: 선인과 악인 외에도 T-800과 T-1000은 차이가 있다.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눈물의 의미를 알려고 한 로봇과 오로지 차가운 기계의 역할만 충실했던 액체 로봇.

<서울의 봄>에는 누가 병력을 먼저 서울로 보내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렸다. 이 영화에서는 스카이넷이 동시에 보내는 두 대의 터미네이터 중 누가 존 코너에게 먼저 도착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렸다.

서울에 먼저 온 것은 전두광의 반란군이었고 존 코너에게 먼저 도착한 것은 T-800이었다. 결과는 두 영화 다 먼저 온 자들의 승리였다. 그러나 전투는 시차와 상관없다.

두 대의 기계 로봇이 벌이는 상상초월 전투씬은 오래전 영화임에도, 여러 번 보았어도 벌린 입을 다물 수 없다. 영화의 일들은 미래 어느 날 실현되는 경우가 많다.

두 로봇의 대결이 꿈만은 아니다. 그러나 끝내 그러지 말아야 할 것은 핵 전쟁이다. 영화에서처럼 미래의 어느 날에도 그런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에 나온 이런 희망의 메시지를 읽어 본다.  '알 수 없는 미래가 다가오나 처음으로 희망을 가져본다. 한낱 기계가 생명의 가치를 배울 수 있다면 우리도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새해 들어서도 세계 도처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많은 민간인이 학살당하고 있다. 짐승만도 못한 아니 기계만도 못한 인류가 아니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