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고대 로마 공화정 시대 개선장군들에게는 전차를 몰고 로마 시내를 돌 수 있는 영광이 주어졌다. 이때 개선식을 즐기고 있는 장군 옆에는 노예 한 명이 함께 전차에 오른다. 개선식 내내 장군과 함께하는 노예는 계속해서 ‘메멘토모리’라고 외치며 개선장군에게 ‘죽음을 잊지 말라’고 속삭인다.
이는 개선장군이 승리에 취해 우쭐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로, 화려한 영광의 중심에 선 인간일지라도 언젠가는 죽음을 마주함을 상기시키며 지금의 영광이 유한함을 알리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을 통해 개선장군들은 자만하지 않고 겸손함을 갖고 다시 전쟁에 임할 수 있게 됐고, 그 결과 거대한 로마 제국을 만들 수 있는 초석을 쌓았다.
올해 마지막 국회 본회의가 마무리됨과 동시에 대한약사회는 기쁜 소식을 회원들에게 전달했다. 약사사회의 오랜 현안이었던 의료기관 불법지원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이었다. 회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함과 동시에 약사회 내부에서도 임원들이 서로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공로를 축하했다.
대한약사회 집행부는 2023년 훌륭한 성과들을 이뤄냈다. 올해 초 공공심야약국 국가 지원을 명시하는 약사법 개정안, 보건소장에 약사가 오를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지역보건의료법 개정안,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에서 약 배달 저지 등 굵직한 성취를 달성했다. 또한 전문약사 제도에 지역약사를 포함시키는 성과도 올렸다.
이에 약사회 집행부는 올해 성과를 기반으로 내년에도 더 뛰어난 결과물을 회원들에게 보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개선식을 열고 있다. 하지만 다시 돌아보면 약사회 집행부의 2023년이 모두 황금빛 승리로 이어졌던 건 아니었다.
약사사회의 오랜 위협이었던 화상투약기의 실증특례 사업이 시작됐고, 이 사업은 2단계에 접어들어 전국으로 확산될 예정이다. 그리고 지난 10월 말에는 편의점 안전상비약 품목 확대를 논의하기 위한 자문단이 구성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여기에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계에서는 꾸준히 약 배달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약사사회의 위험 요소로 남아 있다.
여기에 도덕적인 문제들도 많았다. 대한약사회 이름으로 정체가 불분명한 선교회에 의약품을 기부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고, 약사회가 정부에 추천한 한 기관장이 도덕적 문제로 불명예스럽게 자리에서 내려오는 일도 있었다. 이외에도 상임이사가 약 배달 플랫폼 제휴 회원이었던 사실이 알려지며 사퇴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처럼 약사회 집행부의 2023년은 다사다난했다. 그렇기에 지금의 승리에 취하지 않고, 겸허한 자세로 산재한 현안과 내부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거대한 지형 변화가 예고된 새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오는 2024년에는 국회의원 총선이 있고, 올해 말에 시작된 안전상비약 확대, 약 배달 허용 등의 논의가 다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승리에 취해 자만한다면 변화하는 국회 상황과 약사사회 현안들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
그렇기에 약사회 집행부는 올해 거둔 성과를 되짚어 보면서 아직 해내지 못한 일들을 반성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타개할 방법을 찾고 일선 약사들에게 협조를 구해야 한다. 이뤄낸 성과들 또한 복기하며 부족했던 부분이 없었는지 점검해야만 닥쳐오는 거대한 파도를 넘어설 수 있다.
약사회 집행부가 이뤄낸 성과는 이제 과거의 일이 됨을 기억하고, 다시 현안들이 기다리는 현장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국민 건강을 위해 일선 약국 현장에서 헌신하고 있는 약사들의 미래가 안정될 수 있으니 말이다.
부디 끝없는 겸손함으로 제국을 이뤄냈던 로마인들의 모습을 보고 약사회 집행부가 겸손함을 잃지 않길 바란다. 그렇기에 약사회 집행부에 ‘메멘토모리’라는 말을 전하며 2023년을 마무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