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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이반 일리치의 죽음( 1886)- 죽은 것은 내가 아닌 이반 일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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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이반 일리치의 죽음( 1886)- 죽은 것은 내가 아닌 이반 일리치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3.12.18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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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카이사르는 인간이다. 인간은 죽는다. 고로 카이사르는 죽는다. 어려운 삼단논법을 꺼내 들 필요도 없다. 한마디로 인간은 모두 죽는다.

그러나 젊은 이반 일리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죽음은 카이사르 한테만 적용되는 것일 뿐 자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여겼다. 만일 그런 것이 자신에게 왔다면 내면의 목소리가 자신에게 알려 주었을 것인데 그런 말은 전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반 일리치는 자신에게 닥친 죽음을 당연히 이렇게 부정했다. 죽음이 자신에게 성큼 다가왔다는 것을 느꼈을 때도 한동안 부정은 계속됐다. 그러나 그는 검은색 테두리 안의 부고란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나이 고작 45살이었다. 제정 러시아 시대라고 해도 그 나이는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신세가 됐다. 항소법원 판사였던 그의 죽음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그의 동료 재판관들과 검사들은 그의 죽음이 가져올 연쇄적인 자리 이동과 승진을 염두에 뒀다.

표드르 바실리에는 처남을 이곳으로 오도록 부탁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이렇게 되면 처가를 위해 자신이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는 소리는 두 번 다시 하지 못할 터. 이런 대화 끝에 그들은 각자 재판을 위해 자리를 떴고 그런 다음에는 깊은 안도감은 느꼈다.

죽은 것은 내가 아닌 이반 일리치 였기 때문이다. 그는 죽었지만 나는 살아있다는 기쁨이 산 자들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조문이라는 번거로운 절차에 대한 불평이 이어졌다. 예의상 가보기는 해야겠지만 거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

그래도 표드르 바실리에는 번거로운 조문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이다. 문상객들 사이에서 표드르 바실리에는 조문보다는 카드 놀이에 팔려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미망인 프라스코비야 표도르보나로부터 사망직전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

끔찍했다. 임종을 앞두고 몇 시간 동안 비명을 질렀다. 그렇군. 사흘 밤낮을 끔찍한 고통 속에서 시달리다 죽었다고. 그런 일이 언제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어. 하지만 그런 일은 이반 일리치에게 일어났을 뿐 자신에게는 일어날 수 없고 일어날 리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은 이반 일리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고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 이런저런 이야기가 끝나고 나자 미망인은 본론을 꺼내야 할 때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국가로부터 어떤 지원금을 다시 말해 연금 같은 것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였다.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없을지 방법을 알아내려고 했던 것. 이제 조문객과의 형식적인 대화는 끝났다. 미망인은 그와 어서 떨어지고 싶어했고 표드르는 눈치를 채고 빈소를 빠져나와 카드놀이가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여기까지가 이반 일리치가 죽고 난 직후의 풍경이 되겠다. 다음은 이반 일리치의 삶이 이어진다. 그가 죽기 전까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과정을 통해 병에 걸렸으며 병에 걸린 후 의사의 치료과정은 어떤 것이었는지. 약을 처방받고 낫는다는 그럴듯한 말을 들으면서 이반 일리치는 여전히 죽음과는 먼 자신의 삶을 떠올렸다.

▲ 이반 일리치가 죽자 그의 동료들은 죽은 것은 그고 내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 이반 일리치가 죽자 그의 동료들은 죽은 것은 그고 내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점차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끔찍한 고통은 아편으로도 이길 수 없고 몸은 자꾸 쇠약해져 갔다. 그러다가 스스로 걷거나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에 빠지자 비로소 죽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과정은 무척 힘들고 어려웠다. 절망의 순간에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치 않았으나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이 지나도 차도는 없고 상황은 악화일로에 빠졌다. 이반 일리치는 자신이 인간이며 인간은 죽는다는 명제를 인정했다.

죽는 순간까지 그는 또렷한 의식을 갖고 있었다.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불쌍해 울음을 터트렸고 외로움과 사람들의 냉혹함과 하느님의 무자비함이 서러웠다. 그런 감정을 갖고 그는 이승을 마감했다.

: 이반 일리치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톨스토이가 평생 추구했던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와 맞닿아 있다. 그는 죽으면서 자신을 불쌍히 여겨 주길 바랐다. 그러나 의사도 부인도 딸도 아들도 그러지 못했다.

아기처럼 안아 주고 위로받기를 바랐으나 거짓과 위선에 둘러싸인 주변은 그의 마지막 소원을 외면했다. 누군가 누워있는 자신을 내려다보며 다 끝났다는 말을 들었을때 이반 일리치는 끝난 건 죽음이고 이제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되뇌었다. 그것으로 정말 끝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작가의 중단편 중 가장 유명하며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받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은 잘못된 것이다. 이런 자각을 하면서 이반 일리치는 죽었다. 오늘도 숱한 죽음이 이어진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죽으면서 내 삶은 거짓이었다, 이런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런 철학적 사고가 절실한 것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통해 현대인들은 오늘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성찰의 기회를 가졌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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