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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맥박리 놓친 의사 유죄판결에 "필수ㆍ응급의료 몰락"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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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맥박리 놓친 의사 유죄판결에 "필수ㆍ응급의료 몰락" 경고
  •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 승인 2023.12.16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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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학의사회 "법으로 의학 진단 기준 정하는 나라..의협 "과도한 사법판결은 없어져야"

[의약뉴스] 응급의학과 전공의 1년차 시절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했던 응급의학과 의사에 대한 유죄 판결이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의료계는 "필수ㆍ응급의료의 몰락을 선고한 판결"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 전공의 1년차 시절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했던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유죄가 확정되자의료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 전공의 1년차 시절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했던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유죄가 확정되자의료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대법원은 14일 전공의 시절 응급실에서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해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응급의학과 의사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진료기록부 허위 작성으로 의료법을 위반한 혐의도 인정했다

이 사건은 지난 2014년 9월경 60대 환자 B씨가 안면부 감각 이상과 식은땀, 흉부 통증을 호소하며 응급실로 내원하며 시작됐다.

응급의학과 전공의였던 A씨는 새벽 응급실에서 흉부통증을 호소하는 B씨에게 심전도와 심근효소 검사 등을 실시했으나 별다른 이상 소견을 확인하지 못했고 ‘급성위염’으로 진단했다.

B씨의 딸은 검사 1시간여 뒤에도 B씨가 등부위 방사통 등 새로운 증상을 호소하고 흉부 통증이 심해졌다면서, 심장내과 의사 진료를 요청했으나 A씨는 이를 거절하고 진통제를 투여하는 데 그쳤다.

A씨는 진통제 투여 후 B씨의 증상이 완화된 것을 확인, 퇴원 조치했다. 그러나 B씨는 퇴원 후 의식을 잃고 쓰러져 다시 병원에 실려 갔고, 대동맥박리가 진행돼 양측성 다발성 뇌경색 진단을 받았으며, 이후 사지가 마비되는 뇌병변장애를 입었다.

이로 인해 업무상과실치상과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는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이어진 항소심에서도 징역형이 선고됐다.

2심 재판부는 “A씨는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피해자에게 발생한 흉통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 흉부 CT검사 등 추가적인 진단검사를 실시하지 않은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으로 B씨의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해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를 상실하게 했다”고 밝혔다.

이어 “B씨의 증상호소와 등쪽의 방사통 등 통증 자체가 이미 대동맥박리를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이라면서 “B씨는 60대로 뇌동맥박리 호발연령이고, 고혈압과 뇌경색 과거력 등 주요 위험인자를 가지고 있었으며, 응급실에 내원했을 당시 B씨가 밝힌 가슴통증과 오심, 식은땀은 심근경색을 의심할 만한 증상”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검사에 이상이 없다면 급성 흉통을 일으킬 수 있는 대동맥박리, 기흉, 식도파열, 장천공 등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했어야 한다”며 “고혈압과 심비대 증상에는 흉부 CT검사 등의 추가적인 진단검사를 할 필요가 있음에도 이를 시행하지 않아 B씨의 대동맥박리 조기 진단의 기회를 상실하게 했다”고 판결했다.

연이은 판결에 불복한 B씨 측이 상고했으나 대법원이 이를 기각, A씨에게 내려진 징역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의료계에선 연이어 성명을 발표하며 대법원 판결을 강하게 규탄하고 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회장 이형민)는 15일 성명을 통해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라며 대법원 판결에 유감을 표했다. 

의사회는 “매일 환자들의 죽음과 사투를 벌이며 현장에서 노력하는 전국 모든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잠재적 살인자이니 지금 당장 우리 모두를 먼저 처벌하라”며 “응급실은 응급처치를 시행하는 곳이고 대동맥박리와 같이 진단하기 어려운 병을 100% 완벽하게 찾아낼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리 검사했으면 진단할 수 있었다는 논리는 응급실 현장을 전혀 모르는 사법부가 결과가 나쁘면 의사가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투사한 잘못된 예단"면서  “이번 판결로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료진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환자가 나빠지면 무조건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으며, 상급병원 과밀화와 방어 진료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흉부 관련 증상으로 응급실을 찾는 환자는 모두 CT 촬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고 그 수가 연간 100만명이 넘는다”면서 “진료비 폭증을 불러올 것이며, 대동맥박리 수술이 불가능한 병원에서는 감옥에 가지 않으려면 환자를 거부해야 할 것”이라고 힐난했다.

무엇보다 “법으로 의학적 진단기준을 정하는 나라가 됐다”면서 “전 세계에 유래가 없는 비상식적 진료지침이 마련돼야 할 것이며,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은 사법부에 있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나아가 “전공의 1년차를 10년간 소송 굴레를 씌우고 결국 면허를 취소하게 만드는 것이 지금 이 나라의 사법정의"라며 “소아청소년과 위기가 무리한 구속수사 영향으로 시작된 것처럼 앞으로 생명을 살리는 보람이 아닌 진료 중 사망하면 감옥에 가는 전공은 아무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이필수)도 15일 성명을 통해 "필수ㆍ응급의료의 몰락을 초래하는 과도한 사법판결은 없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의협은 “이번 판결의 대상인 의료사고가, 전문가로서 역할 수행을 위해 수련 및 임상경험을 쌓아가고 있는 1년 차 전공의 시절에 환경이 열악한 응급실에서 이뤄진 진단 오류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무한책임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의사에 대한 책임 범위의 무한한 확장은 결국 위험진료과목과 위험환자 기피 및 철저한 방어진료로 귀결돼 우리나라 의료 전체의 위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법원 판결은 단순히 의사의 의료과오에 대한 엄격한 판단으로만 볼 수 없으므로, 부당한 결과가 반복되지 않도록 조속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응급의료인의 응급의료 형사책임을 감면하는 내용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되어 있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조속히 통과시키고,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의료사고 형사책임 면책 법안의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의협은 이번 대법원 판결을 알리는 ‘대회원 서신’을 보내 강력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12월 14일은 대한민국 응급의학과에 사형선고가 내려진 날”이라며 “2014년 당시 1년차이던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10년 동안, ‘업무상과실치상’으로 재판을 받게 됐고, 거액의 민사상 보상 이후에 형사적 고발에 따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이라는 결과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전공의 1년차가 무엇을 더, 어떻게 해야했는가”라면서 “그를 10여년간 극심한 고통 속에 놓이게 하고, 결국 면허를 박탈할 정도로 악의가 있었으며, 사회에 해악이 있었는가”라고 반문했다.

심지어 “현직에 있는 교수들은 ‘나도 교수이지만 학생들에게 필수의료 하라고 못하겠다’고 한탄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더 이상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면서 "오는 17일 광화문 앞에서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자”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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