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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젊은 왕(1888)- 왕과 왕관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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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젊은 왕(1888)- 왕과 왕관의 무게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3.11.29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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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공주의 외동딸이 하필 그보다 신분 낮은 사람과 왕 몰래 결혼했다. 그리고 아들을 낳았고 아이는 잠자는 사이에 떼어져 외딴 숲에 사는 어느 평범한 양치기 부부에게 맡겨졌다.

공주는 궁중의원에 따르면 비통과 전염병 때문에 잠에서 깨어난 지 한 시간 만에 죽었다. 그러나 소문에는 향기로운 포도주에 든 이탈리아산 극약으로 살해됐다고 한다.

자, 이유야 어찌됐든 외동딸이 죽었고 시간은 흘러 왕은 노쇠했다. 그래서 늙은 왕은 겨우 열여섯 살밖에 안 된 양치기 부부의 아들을 데려와 후계자로 삼았다.

화려한 궁궐에서 살면서 소년은 한편으로는 고독과 고요가 있는 숲속 생활을 그리워했다. 그런가 하면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값진 물건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상인들을 보내 왕의 무덤에서만 발견되는 녹색 터키석, 양탄자 도자기, 상아색 월장석, 옥팔찌, 백단과 파란색 에나멜, 호박, 고급 모직 등을 구해 오도록 명령했다.

대관식 때 입을 황금실로 짠 예복과 루비가 박힌 왕관, 긴 줄무늬 위에 진주를 둥그렇게 감은 왕홀(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손에 잡는 지팡이 같은 상징물)도 빠질 수 없는 목록이었다.

훌륭한 옷을 입고 성당의 높은 제단에 올라선 모습을 상상하자 소년의 입가에는 저절로 미소가 어렸고 숯같이 검은 눈은 밝게 빛나지 않을 수 없었다.

장미향수와 꽃으로 목욕을 마친 소년은 최고로 안락한 침대에 누웠고 스스르 잠이 들자 꿈을 꾸었다. 쇠창살이 있는 창문으로 희미한 빛이 스며들어 오자 야윈 직조공들이 베틀 앞에 구부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왕이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면 세상은 좀 더 밝아질 것이다.
▲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왕이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면 세상은 좀 더 밝아질 것이다.

그들은 창백했고 병색이 짙었으나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면서 베를 짜는데 열중했다. 젊은 왕은 그 중 한 명에게 이런저런 것을 물었다.

배고픔으로 야윈 직조공은 우리 주인은 나와 똑같은 사람이나 내가 누더기를 걸치고 다닐 때 좋은 옷을 입고 내가 배고파 기운이 없을 때 너무 많이 먹어서 고통스러워하는 것 말고는 그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이 나라는 자유로운 땅이고 너는 노예도 아닌데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젊은 왕은 궁금했다. 이해 못하는 왕을 위해 직조공은 이렇게 덧붙였다.

"전쟁 때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노예로 만들고 평화 시에는 부자가 가난한 자를 종으로 만든다. 우리들은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데 부자들은 우리에게 살 수도 없을 만큼 아주 적은 임금밖에 주지 않는다. 우리가 종일 일하면 그들의 금고에는 금이 쌓이지만 우리 아이들은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어가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굳어지고 사악해 진다. 우리가 포도주 즙을 짜면 그들이 마시고 우리가 옥수수씨를 뿌리지만 우리의 식탁은 비어있다.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우리는 묶여 있고 사람들은 우리가 자유롭다고 하지만 우리는 노예다. 상인들은 우리를 착취하고 멋대로 값을 매기지만 어쩔 수 없다. 신부님들은 말을 타고 지나가면서 묵주를 돌리면서 기도를 하나 그뿐 아무도 우리를 상관하지 않는다. 비참함이 아침을 깨우고 부끄러움이 우리와 함께 앉아 있다."

소년은 또 물었다. 네가 짜고 있는 이 예복은 무엇인고. 이것은 젊은 왕이 대관식 때 입을 예복인데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인가. 이쯤되면 아무리 열여섯 살 젊은 왕이라고 해도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젊은 왕은 꿈을 꾸고 깨어났다 다시 꿈을 꾸는 것을 반복한다. 그러면서 갤리선의 노예들이 죽어 나가는 모습과 어린 노예가 물질을 통해 진주를 캐오는 것을 목격한다. 쉼 없이 물질하던 소년은 코와 귀에서 피를 흘리고 죽는데 마지막으로 캐온 진주는 모양이 보름달 같고 새벽별보다 하얀빛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진주였다.

다른 꿈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왕관에 달 루비를 찾고 있었다. 슬픔에 잠긴 소년은 대체 어떤 왕이 쓸 왕관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순례자는 자신이 들고 있는 거울을 소년에게 보여주었고 거울 속에는 소년의 얼굴이 들어 있었다.

소년은 놀라서 잠이 깼고 해는 밝게 빛나고 정원의 새들은 즐겁게 노래하고 의전관들은 황금 천으로 만든 예복과 왕관과 왕의 지팡이를 젊은 왕 앞에 갖다 놓았다.

대망의 대관식 날 소년은 행복한 마음으로 그것을 입고 썼을까. 아니면 이것들을 치워라, 하고 명령했을까. 정답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 왕은 이 예복은 슬픔의 베틀 위에서 고통으로 새하얘진 손이 짠 것이고 이 루비의 심장에는 피가 흐르며 진주의 심장에는 죽음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왕은 신하들과 귀족들에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그들은 젊은 왕이 미쳤다고 수군거렸다.

세상의 온갖 풍파를 격은 늙은 주교도 왕의 꿈이야기에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세상의 멍에는 한 사람이 지기에는 너무 크고 이 세상의 고통은 한 사람의 심장이 슬퍼하기에는 너무 무겁다고 힐난했다.

왕에 걸맞는 옷과 왕관이 없다면 신하와 백성들은 그가 왕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없다는 것. 이에 젊은 왕은 궁에 들어올 때 입었던 양치기 옷을 입고 머리에는 들장미 가시 면류관을 쓰고 거지꼴로 밖으로 나가 성당으로 향했다.

신하들은 우리나라에 수치를 가져왔으니 왕이 될 자격이 없다고 외쳤다. 신하의 말대로 젊은 왕은 왕의 자격이 없을까. <행복한 왕자>를 쓴 오스카 와일드의 <젊은 왕>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화려한 왕관을 쓸 줄만 알고 그 무게를 감당할 줄 모르는 왕은 없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 젊은 왕의 고뇌를 통해 오스카 와일드는 서민의 비참한 생활과 그에 대비되는 높은 위치에 있는 자들의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다.

동화에서 처럼 인간의 삶은 여전히 우열이 존재한다. 부자와 가난한 자는 지구상 모든 곳에 존재하며 갈등을 키우고 그 격차는 현대에 와서 더 벌어지고 있다.

의전관이 왕의 꿈 이야기를 듣고 한 대답은 현실을 잘 대변해 준다. 꿈은 꿈이고 환상은 환상일 뿐이니 그런 일은 마음에 새겨둘 현실이 아니라는 것.

우리가 우리들을 위해 애써 일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는 반문 앞에서 딱히 해결책이 없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매일반이다. 씨 뿌리는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빵도 먹지 말아야 하고 포도원 주인과 얘기를 하기 전에는 포도주를 먹지 말란 말이냐는 항변 앞에도 도무지 해답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주교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것도 그렇다.

그래서 작가도 해결책을 인간이 아닌 신에게서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누구도 아닌 왕이라면 젊은 왕처럼 무언가를 하려는 진지한 노력쯤은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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