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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 그린 북(2018)- 분노의 연주에서 환희의 연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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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 그린 북(2018)- 분노의 연주에서 환희의 연주로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3.11.16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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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토니(비고 모텐슨)는 떠벌이로 입담이 좋다. 하는 일은 시원찮아도 거침이 없다. 그는 백인이다. 미국에서 산다.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는 과묵하다. 천재 음악가로 백악관에서 초청할 정도다. 그는 흑인이고 부유하게 산다.

토니와 셜리 둘 가운데 하나의 삶을 선택하라면 여러분은. 때는 1962년이다. 참고로 흑인이 온전히 투표할 수 있는 권리는 그로부터 3년 후인 1965년 이후다. 천 명을 대상으로 토니가 될래 아니면 셜리가 될래, 투표를 한다면.

그 당시 미국에서 백인으로 산다는 것과 흑인으로 사는 삶을 피터 패럴리 감독의 <그린 북>을 통해 들여다보면 매우 흥미롭다.

셜리는 자신의 연주 여행에 운전자를 구한다. 면접 장소는 카네기 홀이다. 백인 뜨네기가 양복을 차려입고 서성댄다. 우여곡절 끝에 토니가 낙점됐다.

흑인이 마신 컵을 버릴 정도로 인종주의자인 토니가 흑인의 운전수라는 설정이 우습지만 좋은 영화라고 하니 끝까지 보자. 셜리가 가고자 하는 곳은 하필 남부다. 남부는 백인 우월주의가 미국에서도 왕성하기로 유명한 곳.

굳이 북부가 아닌 남부를 택한 이유가 있을까. 어쨌든 둘은 그렇게 좋은 차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좁은 공간에서 흑인 고용주와 백인 운전수가 나란히 앉았다. 떠벌이는 쉬지 않고 떠벌인다.

고용주가 아무리 천재 음악가고 박사라고 해도 흑인인 바에는 예의를 차질 이유가 없다.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행동 마음대로 한다. 담배는 달고 살고 음식물 쓰레기는 창밖으로 던지고 아무 곳이나 차를 세우고 용변을 본다. 과연 그가 백인 고용주에게도 이따위로 행동할 수 있을까.

셜리는 찡그리고 그러지 말라고 부탁도 해보지만 통하지 않는다. 그럭저럭 연주 일정은 진행된다. 성격과 신분과 인종이 다른 이질적인 조합이 위태위태 하지만 공연 장소를 찾아 이동하는 장면은 보아서 매우 아름답다.

이런 여행이라면 떠벌이를 동행자로 선택해도 이해할 만하겠다. 하지만 천재 음악가는 시무룩하다. 사색의 깊이를 떠벌이가 알기는 불가능하다. 이 여행,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마무리될까. 실제라면 이쯤에서 각자 갈라서 자기 길을 가는 게 맞다.

하지만 둘은 서로 마뜩잖으면서도 헤어지지 않는다. 우아한 청중들처럼 셜리의 연주를 듣는 토니. 토니는 백인들 가운데서도 아주 우월한 극소수의 백인들을 상대로 연주하는 셜리가 대단해 보인다. 그가 보기에도 피아노 솜씨가 일품이다. 연주가 끝나면 백인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한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셜리는 유색인종일 뿐이다. 잘 수 있는 곳은 한정돼 있고 양복점에서 옷을 마음대로 살 수도 없다. 화장실도 야외로 나가야 한다. 경찰도 흑인이라면 일단 범죄자로 몰고 간다. 흑인은 이 시간에 여기를 지날 수 없다고 명령한다. 유색인 통행 금지. 감히 흑인인 주제에 이 시간에 바퀴벌레처럼 기어 나와서는 안된다.

셜리도 그렇지만 토니가 보기에도 이건 좀 부당하게 싶다. 자신이 인종차별주의자인데 토니와 함께하면서 의식의 전환이 조금씩 이루어진다. 이제 토니는 운전수에 그치지 않고 거절했던 집사 역할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혼자 술 먹다 백인들에게 잡혀 집단 구타를 당하는 그를 구해내는가 하면 성소수자의 삶을 즐기다 체포된 그를 꺼내오기도 한다. 토니는 이제 흑인도 아니고 백인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라고 절규하는 셜리의 삶을 이해하는 지경에 이른다.

셜리도 지금껏 한번도 먹어 본적이 없는 치킨을 먹는다. 치킨의 고장 켄터키 주에서 먹는 원조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은 맛이 없을수가 없다. 흑인이지만 클래식 말고는 흑인 음악을 몰랐던 셜리는 토니가 알려주는 흑인 음악을 듣는다.

▲ 흑인 전용 숙소 앞에서 두 사람은 잠시 어색한 상태로 있다.
▲ 흑인 전용 숙소 앞에서 두 사람은 잠시 어색한 상태로 있다.

폭력 보다는 품위로 승부하자고 토니를 훈계했던 셜리의 삶은 토니가 보여주는 색다른 태도에 빠져든다. 자 여기까지 따라온 관객이라면 토니가 아내와 약속한 크리스마스 이브 날 귀가는 틀림없어 보인다고 확신한다.

무사히 두 달간의 대장정이 끝나가고 있다. 마지막 연주만 남았다. 관객 400명이 한 시간 후에 펼쳐질 천재 뮤지션 셜리의 공연을 애타게 기다린다. 그 공연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까. 그러면 재미 없지.

관례이며 규칙을 내세워 식당의 총지배인은 셜리의 식당 출입을 막는다. 이곳에서 식사를 할 수 없다. 대신 길 건너 흑인 전용 식당으로 가라. 그럼 난 공연을 못한다. 맞서는 시간이 길어진다.

결과는 뻔하다. 넷 킹콜이 무대에서 끌려 나와 폭행당했다는 사실과 농구 우승팀의 주역인 흑인들이 어디서 식사했는지 나열하는 식당측은 물너설 기미가 없다. 오늘 공연의 주인공이니 봐달라고 토니가 나서 보지만 협상 실패다.

길 건너로 간다. 거기는 흑인 천국이다. 백인인 토니가 되레 약자다. 그러나 흑인들은 그를 차별하지 않는다. 즉흥 연주가 이어진다. 양복점에서 쫓겨난 후 보였던 분노의 연주가 아닌 환희의 연주가 펼쳐진다.

뉴욕으로 돌아오는 날 눈이 엄청왔다. 셜리는 힘겨워하는 토니 대신 운전대를 잡는다. 그리고 그를 무사히 집까지 데려다 준다. 해피엔딩이다. 한편의 로드 무비이며 음악영화이고 인종차별에 관한 영화이면서 훈훈한 정을 주는 감동의 드라마는 이렇게 끝난다.

국가: 미국

감독: 피터 패널리

출연: 비고 모텐슨, 마허샬라 알리

평점:

: 불현듯 차를 타고 두 사람이 여행한 저런 도로를 끝없이 달리고 싶는 생각이 든다. 떠버리가 아니고 천재 음악가가 아니어도 좋다. 여행 안내서 그린 북을 옆에 끼고 미국을 서부에서 동부로 남부에서 북부로 한 두어 달 여행하는 꿈을 영화를 보는 내내 가졌다.

내용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냥 풍경만 보아도 좋다. 피아노 음악만 들어도 기분이 날아간다. 지금처럼 낙엽이 흩어져 마음이 우울한 날에 보면 좋을 영화다. 실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은퇴 후에도 종종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우정을 이어갔다고 하니 영화에서처럼 끝이 좋다.

사족을 달면 이브에 도착한 토니는 가족의 열렬한 환호를 받는다. 특히 아내의 눈시울이 뜨겁다. 초대를 거절하고 나홀로 궁상을 떨고 있던 셜리는 포도주병을 들고 토니의 집을 방문한다.

셜리는 말한다. 남편을 보내주셔서 고맙다고. 아내는 말한다. 그런 멋진 편지를 쓰도록 도와줘서 고맙다고. 그러면서 덥석 셜리를 껴안는다. 가족들은 놀란다. 더 놀라운 것은 토니의 태도다. 인종주의자 토니의 변신은 무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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