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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 항상 자신을 보호하라 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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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 항상 자신을 보호하라 했거늘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3.10.20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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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을 들어줄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들어줄 수 없는 부탁도 있다. 들어줄 수는 있되 심각한 고민을 필요로 하는 부탁도 있다.

이런 부탁은 애초에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오죽하면 했겠느냐고 하는 경우는 난감하다.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매기(힐러리 스왱크) 때문에 몹시 고통스럽다.

거절할 수 없는 부탁. 대체 어떤 부탁이길래. 사설이 길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부탁은 다름 아닌 나를 죽여 달라는 것. 죽여달라고 부탁하는 젊은 여자와 그런 부탁을 받은 늙은 남자.

어떤 곡절이 있기에 둘은 이런 살인 부탁과 살인자의 길을 가야 했는지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자. 프랭키는 한물간 권투 체육관 관장이다. 가난해서 청소용 세제까지 아껴써야 할 판이다.

그의 오랜 친구 스크랩(모건 프리먼)이 잡일을 도와주고 있다. 어느 날 그 미래의 살인 부탁자 매기가 프랭키를 찾아온다. 권투 선수로 받아 달라는 것. 노. 프랭키의 대답은 단호하다.

일언지하 거절이다. 여자는 안 받는다는 것. 여자 때문에 크게 데였는지 어땠는지 이유는 없다. (홀아비로 나오는 그는 딸에게 여러번 편지를 쓴다. 매번 편지는 반송되고 딸은 연락이 없다.)

여자는 노. 첫 번 째 부탁은 너무나 쉽게 거절됐다.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다. 그러나 영화를 조금 본 사람이든 아니든 매기의 부탁을 프랭키가 결국은, 마침내는 받아줄 거라는 걸 안다. 받기까지의 과정이야 좀 험난하겠지만.

예상대로 프랭키는 매기를 훈련 시킨다. 매기는 열심이다. 서른 살 넘은 무경험자가 권투에 이제 겨우 입문했으니 시합을 하기 위해서는 밤낮을 가릴 수 없다. 매기는 독종이다. 그런 모습을 프랭키나 스크랩이 눈여겨 본다.

매기는 승승장구한다. 케이오 퍼래이드가 이어진다. 훌륭한 지도와 타고난 열성 덕분이다. 이제 시합에 나가도 좋다. 밀리언 달러가 걸린 큰 대회다. 그러나 상대 역시 만만찮다. 푸른 곰의 별명을 가진 웰터급 챔피언은 실력보다도 반칙으로 유명하다.

그걸 모를 리 없는 프랭키는 거기에 대한 주의를 단단히 주었다. 땡, 종이 울리고 사각의 링에서 두 선수는 불꽃을 튄다. 매기가 앞선다. 푸른 곰은 반칙으로 응수한다. 도전자의 실력이 월등하니 수세에 몰리는 챔피언.

▲ 가난한 두 사람이 만나 혈육의 정을 나눴으나 끝내 이별하는 신파는 관객들을 울린다.
▲ 가난한 두 사람이 만나 혈육의 정을 나눴으나 끝내 이별하는 신파는 관객들을 울린다.

종이 울리고 코너로 돌아갈 때 반칙왕은 매기의 안면을 강타하고 매기는 비틀댄다. 그 순간 프랭키는 매기가 쉴 수 있도록 의자를 집어넣고 그 의자 모서리에 매기의 머리가 부닥친다.

충격과 공포가 따로 없다. 그 다음은. 매기가 의식을 찾았을 때는 병상이다. 그녀는 눈과 입만 살아 움직일 뿐 나머지 신체는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없다. 그야말로 식물인간 상태.

어머니를 위해 매 맞아 번 돈으로 집을 사줬던 매기. 그런 효심도 아랑곳없이 엄마는 매기의 건강보다는 돈에 더 욕심이 팔려있다. 간호는 프랭키 몫이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권한이 없지만 실질적인 보호자 역할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 매기의 부탁이 들어온다. 미국에서 안락사 논란이 크게 일어났다. 꼼짝못하는 삶, 좋아질 기미가 없는 삶. 지금 정신이 있을 때 내 삶을 마감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 그 심정 프랭키는 안다.

최고의 순간을 기억하며 죽는 것. 그것이 웰다잉이라는 것을. 입장을 바꿔 자신이 병상에 누워 있다면 똑같은 부탁을 했을 터. 매기의 부탁을 들어준 프랭키를 살인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법은 아직은 그렇다,라고 말할 것이지만 언젠가는 아닐지도 모른다.

국가: 미국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출연: 클린트 이스트우드, 힐러리 스웽크

평점:

: 시작은 일반적인 권투 영화와 엇비슷하다. 주인공이 어려움을 겪은 끝에 행복에 도달한다는 것. 그러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행복의 끝에 비극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프랭키의 고뇌가 돋보인다. 다 너 때문이다. 널 안받으려고 했어. 온몸이 거부했거든. 참담한 결과 앞에서 프랭키는 체육관을 찾은 매기의 첫날을 기억한다. 그러나 어쩌랴. 이제는 내 손으로 매기를 보내야 한다.

날 보내줘. 이렇게 살 수는 없어. 뭔가를 해냈고 세상을 봤어. 환호성이 들리지 않을 때까지 누워 있게 하지마. 그런 부탁하지마. 난 못해.

다리를 절단했다. 죽기 위해 매기는 스스로 혀를 깨물었다. 더는 미룰 수 없다. 프랭키는 결단을 내린다. 주사기를 챙긴다. 산소 호흡기를 뗀다. 그리고 말한다. 내 소중한 혈육 모쿠슈라.

진짜 딸 대신 프랭키는 매기를 딸로 여긴다. 딸의 소원을 들어주고 병원 문을 나서는 아빠의 뒷모습. 항상 자신을 보호하라고 했거늘, 아쉬움과 자책이 가득하다.

<록키>류의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일종의 눈물샘 찍어내는 신파극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철저한 할리우드식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 여우주연상 등 주요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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