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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종생기(1937)-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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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종생기(1937)-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랗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3.09.20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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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주인공이 그나 단순한 ‘나’가 아니다. 작가 이름 그대로 이상이다. 이쯤 되면 작가의 자기애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하다. 그런 자존감으로 뭉친 주인공 이상이 종생하려고 한다. 예술가에게 하루가 평생이니 더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랗다는 말을 따라야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내 나이 겨우 25세 11개월에 불과하다. 청춘을 탕진하기 아까운 홍안의 미소년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 아닌가.

하지만 거울 속의 자신은 늙은이에 다름아니다. 그러니 나 이상은 앞으로 12시간 안에 종생을 다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생기>라는 것을 써야 한다. 고민이다. 뭐든지 명문을 쓰는 것은 어디 뚝딱하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때는 가을바람이 불어대니 자못 소혜한 나 이상의 마음은 안 봐도 심란하기가 이를 데 없을 터. 구중중한 방안에서 홀로 누워 그중 으젓스러운 놈으로 몇 추려 보지만 얻지 못하고 청산가는 나비처럼 마구 취해 죽어 버리고 싶다.

13벌의 유서 중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자명한 이치. 만족은커녕 천재의 아류에도 미치지 못한다. 천하의 이상은 자신에게 요만한 재주조차 없는 것이 분하고 억울하기 짝이 없다. 없는 지혜를 짜내려 하니 일분일초도 허송할 수 없으니 그 초조한 마음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어찌할까. 고민은 깊어가는데 바로 그때 편지 한 통이 배달된다. 속달로 온 그 편지는 만 19세 2개월 맞은 소녀 정희가 쓴 것이다. 나를 깍듯하게 이상 선생님으로 부르는 정희. 편지를 받은 나 이상은 편지를 받은 이상 <종생기>는 잠시 미뤄두고 그녀를 만나러 가야 한다.

편지 내용을 읽어 보고 나니 도저히 그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편지글은 서문조차 쓰지 못한 서투른 <종생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미문이니 여기 조금 옮겨 보자.

“선생님, 저는 어제 저녁 꿈에도 선생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꿈 가운데 선생님은 참 다정하십니다. 저를 어린애처럼 귀여워 해주십니다...헤어진 부인과 3년을 동거하시는 동안에 너 가거라 소리를 한 마디도하신 적이 없다는 것이 선생님 유일의 자만이십니다그려! 이렇게까지 선생님은 인정에 구구하신가요. R과도 깨끗이 헤어졌습니다. S와는 절연한 것이 벌써 5섯 달이나 된다는 것은 선생님께서도 믿어 주시는 바지요?”

꿈에 나타나 다정하게 대해주는 선생님. 그 선생님을 위해 R과도 끝장내고 S와는 헤어진지 5개 월이나 지났다. 그러니 내 몸은 청절하고 최후까지 더럽히지 않은 깨끗한 몸을 선생님께 드리겠다. 희멀건 피부의 매력이 다섯 달 동안이나 놀고 있는 것은 무어라 말할 수 없이 안타깝다.

저의 나스르르한 연한 목 온도가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나를 부르라. 오로지 선생님 한 분만 사랑하겠다. 나를 전용으로 삼으라. 참으로 열렬사고 전폭적이며 헌신적인 사연이 아닐 수 없다.

▲ 이상은 종생기를 쓰고 곧 사망했다.
▲ 이상은 종생기를 쓰고 곧 사망했다.

더구나 나오지 않으면 징벌하겠다니. 이런 편지를 받았다면 꿀단지를 앞에 뒀다손 치더라도 숟가락 놓고 질주해야 한다. 순전히 거짓부렁이 임을 알면서도 그래야 한다. 그게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가 할 첫 번째 행동이다. 그러니 아무리 이상이라고 해도 3월 3일 오후 두 시 동서문 버스 정류장 앞으로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쓰레기 더미 가득한 방구석을 탈출한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흔희작약은 이런 때 써야 한다. 우선 이발소로 달려가 봉발을 싹뚝 썰어 버리고 상고머리를 만들어 버렸다. 귀를 우비고 코털을 다듬고 안마까지 받았으니 정희를 만나는 준비는 완벽하다. 문득 거울을 보니 태생이 어디갈까 마는 청초한 백면서생 혹은 미남자라고 우기고 싶다. 구겨진 모자를 찾아 15분간 세탁을 하고 흰 바지저고리에 고동색 바지에 대님을 차고 단장까지 잡으니 영락없는 천재의 풍모에 비겨도 손색이 없다.

이런 차림으로 꼴에 선생님이니 점잖게 30분쯤 지각하고 정희는 또 정희대로 아주 정희다웁게 한 삼십분 쯤 일찍 나와 있다. 이 만남 제대로 이뤄질까. 편지글대로 자상한 이상은 정희를 전용으로 삼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고상한 말을 내뱉어야 한다.

그러나 세상에 처음 나온 제비 한 쌍처럼 앙증맞게 천천히 걸어가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기절참절할만한 경구가 떠오르지 않고 제정 러시아적 우표딱지처럼 초초해서 나온 말이라는 것이 겨우 이렇다.

“설마가 사람을 죽이니라.”

정희의 대답이 기다려진다. 그러나 정희는 청천에 벽력이 떨어진 것 같은 인사에 대해 실로 대답이 없다. 해서 나는 분쇄된 촌철살인에 낙담해서 그럼 나는 가겠소, 하고 깍듯이 인사하고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옳은데 그렇지 못하고 마음을 달리 먹는다.

어느 순간 나 이상은 정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고 있다. 참으로 나라는 인간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렵고도 난해하다. 보통 좀생이들이 하는 것처럼 내치지 못하고 치맛자락을 따라가다니. 그러나 그 행동 이전에는 숱한 생각과 잡념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죽기 한 달 전에 이상은 <종생기>를 썼다. 이미 삶에 기진해 있고 자신의 운명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와중에 그는 혼신을 힘을 기울였다. 걸작을 남겨야 한다는 천재의 부서진 자의식이 수류탄 파편으로 날아와 가슴팍에 박힌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산호채칙일랑 꼭 쥐고 죽으련다는 말에서는 전율이 인다. 분열된 자아는 일기 형식으로 졸가리 없이 흘러가다가도 어느 순간 번뜩이는 재치로 입이 쩍 벌어지게 만드는데 과연 이상은 이상이다, 라는 것을 실감한다.

: 네가 오라고 했다고 해서 내가 불쑥 올 줄은 너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겠지. 이건 뭐 콩나물 3전 어치는 안 판다는 것을 기어이 3전 어치를 샀을 때 느끼는 미끈한 쾌감 같은 것 아니겠어. 그 기분 이어가려고 노심초사하는 이상을 이해해보자.

그래야 <종생기>니 뭐니 쓰면서 하루가 평생 같은 지옥에서 벗어나려는 이상의 고뇌에 한 발 다가 설 수 있다. 하지만 다 끝났다. 그녀가 따라오는지 안 오는지 결코 돌아봐서는 안 된다. 그러니 나는 그녀에게 철저하게 졌다. 어지럽다. 마지막 힘을 짜내 묘지명을 쓴다.

일생의 귀재 이상은 그 평생의 대작 <종생기> 1편을 남기고 서력 기원 후 1937년 정축 3월 3일 미시 여기 백일 아래서 그 파란만장한 생애를 끝내고 문득 졸하다. 향년 만 25세 11개월. 그렇다면 애인 정희는. 내가 죽고 나서도 수 삼 인의 비첩 된 바 있고 오히려 장수하니 지하의 이상은 바라건데 명복을 빌 수밖에.

여기서 <종생기>가 끝나면 기가 막히는 일이다. 종생이 어디 그리 쉬운가. 해서 흥천사 으슥한 구석방에서 나 이상과 애인 정희는 머물고 잠시 머물면서 무언가를 하고 있으니 그 일 잘됐으면 싶다. 과연 그럴까.

접전 수십 합에 좌충우돌해 보지만 정희의 허전한 관문을 통과하는데 이상은 끝내 지고야 만다.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판에 이 무슨 거사란 말인가. 차라리 술집 창문을 열고 기어이 떨어져 죽고야 말리라.

정희는 나를 붙잡고 말린다. 말리는데 안 말리는 것도 같다.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나 이상은 정희의 스커트를 잡아제쳤는데. 아뿔싸. 거기서 절연한 지 다섯 달이나 됐다는 S의 편지가 방바닥에 떨어진다. 내게 속달을 띄우고 나서 곧 뒤이어 받은 금화장 그때 그 자리에서 저녁 8시에 만나자는 전갈.

이상 선생님 어쩌고저쩌고하더니 그 낯으로 또 그를 만났으니 과연 정희는 공포에 가까운 변신술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모든 것은 끝날 수밖에. 더 하면 사족이다. 만 25세 11개월, 요사 아닌 늙은이의 죽음은 이렇게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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