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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약 배달을 보는 약사회의 안일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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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약 배달을 보는 약사회의 안일한 시선
  • 의약뉴스 이찬종 기자
  • 승인 2023.09.2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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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은 한 임금이 거짓된 재단사에게 속아 알몸으로 거리를 누비게 된 이야기다. 사람들은 벌거벗은 임금의 당당함에 정말 투명한 옷이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이 아닌지 착각하지만, 결국 한 아이의 지적에 현실을 직시하고 임금을 비웃기 시작한다. 하지만 임금은 체통 때문에 꿋꿋이 알몸으로 행차를 마무리하고야 만다.

최근 비대면 진료와 약 배달에 대응하는 대한약사회의 행보는 안데르센의 동화 속 임금님의 모습과 닮아가고 있다. 약사회의 약 배달 대응안을 두고 최광훈 집행부 내부와 외부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것.

지난 14일 열린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공청회는 초진 대상을 확대하려는 보건복지부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던 자리였다. 하지만 이날 공청회에서 초진 확대안보다 더 화두에 올랐던 주제는 바로 ‘약 배달’이었다. 토론에 나선 환자단체와 소비자단체들은 일제히 초진 확대보다 약 배달과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의 연계가 더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약 배달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접한 복지부와 약사회는 공청회 자리에서 아무런 답변도 내놓지 않았다.

약사회는 공청회 이후 진행된 정례브리핑에서 환자단체와 소비자단체의 목소리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이유를 설명했다. 김대원 부회장은 18일 정례브리핑에서 “약사회는 공청회에서 나온 약 배달 관련 의견에 대해 ‘노코멘트’로 정리하겠다”며 “답변할 가치가 없는 의견”이라고 말했다. ‘답할 가치가 없는 의견’, 이것이 바로 약사회가 약 배달을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약사회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시작하며 한시적 비대면 진료 허용 체제 동안 약사사회의 악몽과 같았던 약 배달 문제에서 벗어났다고 자평했다. 이후 약사회는 약 배달에 제한적인 현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즉, 대한약사회에겐 약 배달은 ‘이미 끝난 이야기’로 남은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약 배달은 ‘현재 진행형’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복지부가 연휴ㆍ심야시간대에 비대면 진료 접근성을 강화하는 방향의 시범사업 개선안을 발표하며 내건 명분은 ‘이용자들의 편의성 확보’였다. 복지부는 이용자의 편의성 없이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이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고 판단해 불편함을 해결할 개선책을 제시했다. 그리고 시범사업을 테스트베드로 최대한 활용하며 다양한 개선책을 계속해서 도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렇다면 초진의 제한보다 약 배달의 제한이 더 불편하다며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환자단체와 소비자단체의 의견을 가볍게 여길 수는 없다. 공청회에서 나온 환자단체와 소비자단체의 목소리가 ‘직접 현장에서 비대면 진료를 체험하는 시민들의 의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임금이 벌거벗은 채 거리를 활보하게 한 주범은 재단사이지만, 공범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임금과 신하들이다. 자신들만의 궁중에 갇혀 투명한 옷감에 대한 자화자찬을 이어갔기에 모든 이의 비웃음을 산 것이다.

지금 대한약사회는 약 배달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고 자축하며 벌거벗은 채로 거리에 나서기 직전의 임금과 비슷하다는 시각이 있다. 약사회가 현실과 멀어진 채 원론적인 이야기만으로 약 배달을 막아냈다는 자신감으로 거리에 나선다면 비웃음을 살 수 있다.

약사회는 지금이라도 침묵에서 벗어나 치열하게 환자단체, 소비자단체와 토론하며 대응 논리를 준비해야 한다. 약사회가 약 배달에 ‘노코멘트’라는 대책으로 거리에 나선다면 마주할 것은 아무 대책이 없다는 외부의 지적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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