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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마지막 잎새(1907)- 베어만 노인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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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마지막 잎새(1907)- 베어만 노인을 기억하자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3.08.26 1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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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고흐는 생전에 작품하나 제대로 팔지 못했다. 시대가 자신을 알아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흐처럼 불행한 화가가 여기 있다. 40년 넘는 화가 인생 중 변변한 그림 하나 남기지 못했다. 그도 고흐처럼 사후에 인정받을 수 있을까.

예순이 넘은 베어만 노인은 현재까지는 실패한 화가다. 그 나이 동안 붓을 들었으나 위대한 예술가의 옷자락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러니 노인의 살림살이가 뻔하겠다. 행색은 초라하겠다. 미켈란젤로의 모세상 같은 수염이 사티로스 같은 머리에서부터 악동 같은 몸으로 감겨 내려와 있으니 척봐도 베어만은 가난한 화가라고 누구나 인정하겠다.

수년 동안 감지 않은 떡 된 머리가 허리 아래에 걸쳐 있다고 상상해 보라. 거기에 백발이 성성한 늙은 남자다. 넝마도 이런 넝마가 없겠다. 그런데 꼴에 화가라고 언제나 걸작을 그리겠다는 떠들고 다닌다. 시작도 못했으면서도 말이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 은둔한 광부 모델로 푼돈을 벌어 근근이 살아간다. 그가 사는 워싱턴 스퀘어 서쪽의 허름한 3층 벽돌집 꼭대기에는 그 말고도 화가의 꿈을 키우는 사람들이 산다. 수와 존시가 그들이 되겠다.

때는 바야흐로 가을을 지나 겨울로 가고 있다. 11월 어느 날 의사들이 폐렴이라고 부르는 차갑고 보이지 않는 악마가 이곳을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여기저기 건드리면서 걸려들만한 인간들을 찾고 있다.

존시가 그물에 잡혔다. 캘리포니아의 산들바람 속에서 자란 작고 깡마른 여자는 폐렴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살 가망은 열에 하나라고나 할까요. 의사가 말에 수는 절망한다. 수은 체온계를 흔들며 의사는 덧붙인다. 그나마 살려는 의지가 있어야 해요.

▲ 그림 하나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 베어만 노인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라고 봐야 한다.
▲ 그림 하나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 베어만 노인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라고 봐야 한다.

과연 존시는 강한 의지로 열에 하나에 들어갈 수 있을까. 바람 앞의 작은 등불에 불과한 우리의 불쌍한 존시. 그녀는 여렸고 감수성이 예민했다. 살아서 일어나려는 것보다 자신의 장례식 행렬을 상상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이래서는 안 된다. 존시는 검은 조복을 입고 행진하는 무리 대신 올겨울에 새로 유행할 외투 소매가 궁금해 수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힘세고 잘생긴 남자가 자신 옆에 있는 것을 상상하던지.

하지만 존시는 그러지 않고 매일 떨어져 내리는 낙엽의 수만 세고 있다. 그 낙엽은 뿌리가 썩고 말라비틀어진 담쟁이덩굴의 잎이었다. 매일 떨어져 내리는 수가 많아져. 처음에는 3백 개가 넘었는데 지금은 5개가 남았어. 저게 다 떨어져 내리면 내 목숨도 다하는 거야.

그러지 마. 조금만 참아봐. 아래층의 늙은 화가를 모델로 그림을 그려서 돈을 벌어 올게. 그 돈으로 포도주도 사고 돼지고기도 사자. 수는 어떻게 해서든지 존시에게 삶의 희망을 주고 싶다.

그러나 존시는 어, 또 하나가 떨어지네. 이제 네 잎밖에 안 남았어. 저잎이 마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싶어. 그러면 나도 가는 거야. 그러니 포도주를 살 필요 없어. 스프를 만들지도 마. 하필 그날 밤 폭풍우가 몰아친다.

다음 날 존시는 눈을 뜨자마자 커튼을 열어 달라고 수에게 부탁한다. 어머나, 왠일이니. 다 떨어져 있을 줄 알았던 마지막 잎새가 여전히 붙어 있다. 톱니 같은 가장자리가 시들고 약해져 누렇게 변해 있었지만 잎자루 부분에는 아직 진한 초록빛이 남아 있는 마지막 잎새.

수프가 먹고 싶어. 그날 오후에 온 의사는 고비는 넘겼다. 당신들이 이겼다고 말한다.

: 어떻게 폭풍우에도 마지막 잎새가 버텨 냈는지는 다 들 알 것이다. 그것은 진짜 담쟁이덩굴이 아니라 베어만 영감이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린 그림이라는 것을.

그러면 그런 걸작을 남긴 영감은. 급성 폐렴에 걸려 그날 죽었다. 그가 남긴 마지막 잎새는 아마도 전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마지막 잎새가 될 것이다. 값어치도 물론 가장 비쌀 것이고.

고흐의 해바라기도 베어만의 마지막 잎세보다는 값이 헐할 것이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들이 제법 있겠다. 생전에는 이름값을 못했으나 사후에 유명세를 탄 화가를 꼽으라면 단연 베어만이다. 고흐는 그림으로 사람을 살리지 못했으나 베어만은 살렸다.

베어만 노인의 마지막 잎새가 전시회에 걸리면 값이 얼마라도 달려가서 보겠다.

오 헨리는 <마지막 잎새>를 통해 인간에게 희망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줬다. 그리고 그 희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위대한 화가의 모습도 함께 그렸다.

우리는 살아난 존시도, 그를 도운 그의 짝꿍 수도 기억해야 하지만 베어만 노인을 영원히 추앙하지 않을 수 없다. 진을 과하게 마시고 까칠하고 생김새도 볼품없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이웃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있는 진짜 예술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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