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그래서 언제나 말썽을 피운다. 어른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배웠다고 해서, 부자라고 해서도 아니다. 성별도 문제가 안 된다. 남녀노소가 전부 그렇다. 그걸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아이즈 와이즈 셧>은 이런 불완전한 인간의 내면에 메스를 깊이 들이대는 작품이다.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것은 아니다. 태조 이래 언제나 관심사였고 지금도 여전히 뜨거운 활화산이기 때문이다.
원초적 욕망은 제어하기 힘든 나사 풀린 브레이크와 같다. 아무리 밟아도 차는 멈춰서지 않는다. 무언가에 부닥치고 나서야 선다. 파멸하고 나서야 인간은 그것이 한여름 밤의 꿈치고는 참으로 고약하다고 한탄할 뿐이다.
월리암(톰 크루즈)은 직업에 충실한 의사다. 아내 엘리스(니콜 키드먼)은 그런 의사의 아내다. 둘은 젊다. 7살 딸이 있지만 욕망을 충분히 드러낼 만하다. 부부는 그것을 거부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적나라한 과정은 극장을 찾은 관객의 숨을 멈추게 한다. 행복해 보인다. 그래서 나쁠 게 없다. 어느 날 둘은 환자이자 친구인 지글러(시드니 폴락)의 파티에 초대된다. 억만장자의 초대이니 화려하기가 그지 없다.
참석한 남녀 역시 어디 내봐도 빠지지 않는다. 월리암은 거기서 두 명의 늘씬한 모델의 유혹을 받는다. 심상치 않다. 넘어갈 것만 같다. 부인 역시 핸섬 보이의 손을 잡고 춤을 춘다. 남자는 이끌고 여자는 이끄는 대로 갈 듯한 분위기다. 다른 곳으로 가자. 이 기분 이어가자. 엘리스도 그러기 일보 직전이다.
그러나 부부는 교묘하게 그런 상황을 모면한다. 그것이 잘 된 것인지 아닌지는 관객이 각자 판단한 몫이다. 그날 이후 아내는 싱숭생숭하다. 그러다가 자신의 과거를 남편에게 털어놓는다.
멋들어진 해군 장교. 미 해군은 흰옷이 눈에 띈다. 순결한 남자인가. 영혼도 그렇고 육체도 그런 남자 앞에 엘리스는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다. 상황만 허락되면 남편도 자식도 다 버리고 원나잇을 즐기려고 작정했다.
엘리스에 따르면 작정만 하고 끝났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눈에는 해군장교와 아내가 오뉴월 칡덩굴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일도장단 해야 맞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한다. 상상을 어찌 해 볼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의 발길은 집으로 향하지 못한다. 환자를 보고 의사의 역할에 충실 하는 등 일상을 유지하지만 일손을 놓은 다음에는 상상 속의 그 모습을 떨쳐 내지 못한다. 이런 게 남자다. 아무리 배우고 아무리 철학적 사유가 깊어도 내 아내의 그것을 상상할 때는 하나의 남성일 뿐이다.
그러니 여자들이여,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아서는 안 된다. 그 어떤 이유로도 그 어떤 상황에서도 설사 눈앞에서 들켰다 하더라도. 아니오. 난 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보고 있는 이 벌거벗은 남자는 소울메이트 일 뿐이오. 육체와는 상관없단 말입니다. 알아 , 난 당신을 믿어.그것이 서로의 정신 건강에 좋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도 말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방황한다. 거리의 여자를 찾고 의대를 중퇴한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피아노를 치는 친구를 통해 묘한 파티가 열리는 참석자 암호를 알아낸다. 복장을 갖추고 가면을 쓴다. 파티에는 알몸의 남녀들이 가득하다.
그들은 집단 난교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친구 지글러도 있다. 오랜 참석자인 듯 그들은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즐긴다. 그러나 불쑥 끼어든 윌리암은 그러지 못한다. 훼방꾼이다. 그는 주최 측에 불순불자로 잡힌다.
또다른 암호를 대라. 당연히 모른다. 애초에 또 다른 암호는 없었다. 그는 죽을 운명이다. 쾌락의 정점에서 나락의 정점으로 떨어져야 할 순간 대신 나타나 벌을 받겠다는 여자. 무사히 풀려나 집으로 돌아온 남편.
이런 스토리라면 너무 흔하고 흔해 빠진 것이어서 굳이 아까운 시간을 할애하면서 소개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감독이 누구인가. 스텐리 큐브릭이 만들었다면 왜 만들었지 곰곰이 따져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럴 시간을 충분히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왜라는 질문이 따라붙는다고 해서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 영화는 영화일뿐이니까.
국가: 미국
출연: 톰 크루즈, 니콜 키드먼
평점:
팁: 주인공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은 영화에서처럼 당시에도 실제 부부였다. 당시라고 한 것은 그 뒤로 이혼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많은 뒷이야기가 있다.
애초는 이 부부말고 다른 부부를 섭외했었다거나 영화 찰영기간이 무려 400일이었다거나 그래서 출연 배우들의 이후 일정이 꼬였다거나 삭제된 20여 분가량에는 엘리스가 윌리엄과 함께 컬트 파티에 참여했다는 등 숱한 말을 낳았다.
처음에는 별 볼일 없는 영화라는 박한 평점을 받았으나 이후는 웰메이드라고 반전을 맞았다. 흥행수익도 개봉 당시는 불만이었으나 이후 크게 늘어났다. 영화는 최고의 배우인 팔팔한 두 남녀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값어치가 있다. 특히 노골적이라고 할만한 섹시 코드는 대담한 정도를 넘어서 세미 포르노급에 해당한다.
왜 여자는 남자를 위해 대신 벌을 받겠다고 자청했는지 엘리스와 춤춘 남자는 이후 왜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지 등 좀 아쉬운 부분들도 있으나 열대야로 잠 못 이룬다면 숙면용으로 볼 만하다. 배경은 뉴욕이나 촬영 대부분은 영국에서 했다고 한다. 개봉 전에 감독은 사망해 이 영화는 유작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