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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수전노(1668)-목숨보다도 자식보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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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수전노(1668)-목숨보다도 자식보다도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3.08.02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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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몰리에르의 5막 산문 <수전노>는 젊은 남자 발레르의 사랑 고백으로 시작된다. 남자들은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사탕발림을 남발하게 마련이다. 오래전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을 녹이기 위해서는 최대한 미사여구를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엘리즈는 사랑 고백을 받고도 침울하다. 그것은 그의 사랑을 믿지 못해서다. 남자들이 너무 뜨겁게 사랑을 표현한 대가로 순진무구한 여자들이 치르는 대가가 너무 가혹하기 때문이다. 틀린 말일 수도 있고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여기서 발레르가 물러나면 재미없다. 나를 남들과 비교해 판단하는 그런 잘못된 처사는 삼가 달라고 애원한다. 뭐든 의심해도 좋지만 내가 당신에 대한 신의를 저버릴 것이라는 의심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못 박는다.

여자도 물러서지 않는다. 아, 누구나 똑같은 소리를 해요. 남자들이란 말로는 다 비슷하거든요. 엘리즈는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기 전에 걱정이 앞선다. 그러면 발레르는 이렇게 대꾸한다. 지레짐작으로 내게서 죄를 찾으려 하지 말고 수만 가지 증거를 통해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의 진정성을 납득시키겠다.

몰리에르는 이런 옥신각신을 통해 사랑을 멀리하기보다는 더 두껍게 하는 장치로 사용한다. 결국 엘리즈는 사랑하는 사람의 말에 설득당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결혼까지도 순탄할까.

한편 극의 제목이며 주인공인 수전노 아르파공은 앉으나 서나 재산 지키기에 바쁘다, 행여 자신의 집에 도둑이 들어 돈을 가져가면 어쩌나 하고 노심초사한다. 하인은 물론 가족까지 의심하면서 돈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을 한다.

▲ 마지막 순간에 새 옷 한벌까지 얻어내는 아르파공의 모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습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 마지막 순간에 새 옷 한벌까지 얻어내는 아르파공의 모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습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면서 내게 1만 에퀴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아들 클레앙트와 딸 엘리즈에게 불평한다. 아들과 딸은 그런 돈이 아버지에게 있다는 것을 안다. 그것 말고도 상당한 재산이 있는데도 아버지는 없는 척한다.

아르파공은 자신의 기준으로 돈을 아끼지 않는 아들과 딸이 밉다. 그렇다고 해도 성년이 된 자식의 혼사를 멀리할 수 없다. 클레앙트는 정숙하고 매력적이고 살림에 능숙하며 행동거지가 좋은 여자가 있다고 말한다.

어. 그러셔. 나도 그런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 아버지가 대꾸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런 여자가 누구인지 서로 궁금해 한다. 마리안이다. 놀랍다 . 아들의 연적이 아버지라니.아버지가 마리안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바로 지참금 때문이다. 결혼보다는 돈이 탐이 나는 것이다.

대신 아들은 돈 많은 과부와 결혼시키기로 작정했다. 딸 엘리즈는 오십 대쯤으로 나이 많은 남자인데 돈이 많은 앙셀므를 점찍었다. 엘리즈는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거절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오늘 밤에 당장 결혼하라고 야단친다.

이런 일은 억지로 시킨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딸에게 아버지는 억지로 시킬만한 일이라고 반박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는 혼처하는 것. 부녀가 이렇게 싸우는 사이 엘리즈의 연인 발레르가 오자 아버지는그에게 누가 옳은지 판단을 맡기기로 한다.

관객은 발레르는 당연히 엘리즈 편을 들겠거니 하고 속단하기 쉽다. 그러나 발레르는 아르파공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엘리즈와 결혼하기 쉽다는 판단하에 모든 것에서 아르파공이 옳다고 대답한다.

아르파공이 옳은데 그것은 아르파공이 틀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엘리즈의 결혼대상이 앙셀므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난감하게 된다. 돈도 많고 귀족이고 현명하며 더구나 전처소생의 자식도 없는 앙셀므를 아르파공은 강력히 밀어붙인다.

거기에 또 하나 이유는 딸의 지참금이 필요 없다는 것. 돈을 아낄 수 있으니 누구한테 시집을 보내도 상관없다는 아르파공의 태도에 발레르는 기겁을 한다.

하지만 태도는 아르파공 쪽으로 기운다. 딸은 아버지에게 복종해야 하고 남편감이 어떤지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 지참금이 없다는 대의명분이 있는 한 남편감이 누구든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돈인데 지참금이 없는 혼사라면 좌고우면 할 필요 없고 미모나 젊음 태생 명예 지혜 정직함까지 대신 할 수 있다고 거든다. 엘리즈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따지자 아버지를 자극하지 않고 만사를 잘 되게 하려고 그러는 것이라도 안심시킨다.

한편 아르파공의 아들 클레앙트는 결혼을 위해 돈을 빌리기로 작정하는데 돈을 빌려줄 사람이 내건 조건이라는 것이 참으로 황당하다. 담보물이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채권자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정도인 5부 5리다.

거기에 선이자 떼고 빌린 돈으로 싸구려 물건을 비싸게 사서 헐값으로 다시 팔아야 한다. 파산하기 딱 좋은 길로 들어선 클레앙트는 채권자에 대해 개자식, 악랄한 놈, 고리대금업자라고 분노하는데 알고보니 채권자는 아버지 아르파공이다.

채무자가 아들인 것을 안 아버지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빚을 지고 파산하려는 자가 너냐고 따지고 아들은 그렇게 사악한 고리대금업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이 아버지라고 맞선다.

그러면 발레르와 엘리즈의 사랑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을까. 마리안을 놓고 아들과 연적 관계인 아버지는 어떤 식으로 이 혼사를 마무리할까. 일단 돈 있고 빽 있는 아버지가 한발 앞서 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연인을 아버지에게 뺏기고 그 연인을 새어머니 혹은 계모라고 불러야 할 처지에 몰린 클레앙트는 마냥 즐거운 기분은 아니다. 그러면 연인을 의붓아들로 두는 마리안은 편할까. 둘은 서로를 슬프게 하는 이런 결혼은 있을 수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 한다.

이런 와중에 아르파공은 숨겨둔 큰돈을 도둑맞는다. 돈을 찾지 못하면 세상 사람 모두 목매달아 죽이고 자신도 맨 나중에 그러고 싶다고 한탄한다. 극은 수전노 아버지를 중심으로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 발레르와 엘리즈, 클레앙트와 마리안은 수전노의 방해를 뚫고 결혼에 골인할 수 있을까. 그리고 수전노는 잃어버린 돈을 찾을 수 있을까. 앙셀므와 발레르와 마리안은 어떤 관계로 엮여 있을까.

아들과 딸은 물론 극중의 모든 등장 인물에게 수전노 구두쇠 노랑이 고리대금업자라고 놀림을 당하면서도 돈 상자에 집착하는 아르파공의 모습은 희극의 결정판이다. 아르파공에게 돈은 자식보다 사랑보다 목숨보다 더 크고 위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냥 웃어넘기기에는 슬픈 게 현실이다. 물질 만능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재 우리의 모습과 중첩되기 때문이다. 해학과 희극이 가득 넘쳐나는 <수전로> 를 읽노라면 왜 몰리에르가 프랑스 최고의 작가인지 알 수 있다.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고 이탈리아에 단테가, 스페인에 세르반테스가, 독일에 괴테가 있듯이 프랑스에는 몰리에르가 있다. 몰리에르는 <수전로> 외에도 대표작으로 <남편들의 학교> <아내들의 학교>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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