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27 06:51 (토)
178. 찻집(1957)- 나랏일은 삼갑시다
상태바
178. 찻집(1957)- 나랏일은 삼갑시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3.06.17 16: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약뉴스]

올드한 느낌이다. 찻집이라니. 다방 정도면 몰라도. 아니 다방도 아니다. 이제는 찻집이니 다방이니 하는 이름들은 구식이 됐다. 하지만 꼰대 소리를 들을 만한 나이대 사람이라면 되레 친근감있게 다가온다.

라오서의 희곡 <찻집>은 이런 아련한 추억과 함께 왔다. 제목만 놓고 보면 매우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다. 그러나 내용을 보자 치면 현대에 접목해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먹고 사는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여전한 공통된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혼란한 정치가 거기에 개입됐다. 안 봐도 비디오 아닌가. 힘없는 백성은 무조건 이들의 희생양이다.

극의 시대적 배경은 청말기부터 1950년 정도에 걸쳐있다. 북경에서 제법 큰 찻집에서 일이 벌어진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나누는 대화를 통해 당시 사회 분위기가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등장인물이 많아 헷갈리지만 그래도 주인공을 압축해 나가다 보면 극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풀 수 있다. 먼저 찻집의 건물주인 진중의가 등장한다. 건물주가 있으니 세입자 있기 마련.

왕이발이 세를 얻어 찻집을 운영하는 주인이 되겠다. 진중의는 돈 많은 졸부 이전에 나름대로 애국심이 있다. 세를 올리려고 왕이발을 압박하지만 그래도 조금의 양심은 있다.

가난한 사람 구제하고 외세에 대항하고 나라를 살리기 위해 지주가 해야 할 일을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다. 공장을 짓고 물건을 생산해 국력을 키우고 싶다. 그래야 서양 세력이나 일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땅 팔고 건물 팔아서 그렇게 한다. 하지만 그는 부패한 정치 세력에 의해 모든 것을 잃고 만다. 왕이발은 자살한다. 건물주와 세입자가 거덜 났으니 찻집의 역사도 막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 극은 다시말해 중의와 이발의 흥망성회의 흑역사로 볼 수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찻집을 살펴보자. 여기서는 온갖 군상들이 들고난다. 그러니 하는 이야기 역시 차고 넘칠 것이다. 그런데 단 한 가지는 금지되어 있다. ‘나랏일은 이야기하지 맙시다.’

시대가 어수선할 때는 다들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있겠지만 간혹 제 기분을 못 이겨 금지한 나랏일을 입에 담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경고하기 위해 주인장은 아예 찻집 내부에 이런 글귀를 크게 써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써 놓았다고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막걸리를 먹고 취하다 보면 나라님을 욕할 수도 있는 것처럼 간혹 그런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1막에서는 일본 메이지 유신을 본떠 강유의가 일이킨 유신이 위안스카이의 배신으로 실패했다.

이후 청 11대 황제 광서제는 서구 열강의 침탈을 막고 나라를 부흥하기 위해 서양식 정책인 무술변법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 역시 개혁파 내부 분란으로 좌절됐다.

정치가 이렇게 어지러우니 서민들의 삶은 피폐하고 사기꾼들은 기승을 떨치게 마련이다. 운명을 점쳐 준다는 관상쟁이들이 날뛰고 한탕 하기 위한 인신매매범이 겨우 은 열 냥에 열 살 여자를 팔기 위해 혈안이다. (아이의 머리에는 파는 물건을 의미하는 짚으로 엮은 표식이 있다.)

그러나 환관에게는 은 이 백냥에 팔 계산이다. 중매쟁이 유마의 상술이 보통이 아니다. 빈농 강육은 자신의 딸이 환관 방태감에 팔려 갈 때 이렇게 넋두리 한다.

'아비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다. 그러니 어쩌란 말이냐.' 밥이라도 먹을 곳을 찾지 않으면 굶어 죽게 되는 이치를 한탄한다. 아비 자신도 은 몇 냥이라도 내지 않으면 지주에게 맞아 죽을 판이다.

그러니 못난 아비가 팔려 가는 어린 딸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다 팔자소관이다. 그러니 좋은 일 한다고 생각하렴.' 이 정도가 되겠다. 이 와중에 군인이나 경찰은 곤봉과 권총으로 무장해 아무나 체포하고 즉결 처분한다.

돈 양을 내지 않으면 탈영병으로 몰라 찻집 밖에서 목을 날린다. 유마도 그런 식으로 세상을 떴다. 양놈교 믿고 양놈밥 먹고 코담배까지 외제이니 나라는 이미 외세에 점령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방태감은 본능적으로 이런 시대의 처세술을 안다. 혀 한 번 잘못 놀렸다가 목이 달아나는 것을 여럿 지켜봤기 때문이다. 누구든 조상 때부터 내려온 법을 고치려고 하면 바로 목이 떨어진다는 이치를 꿰고 있다.

그만큼 개혁은 어렵고 험란하다. 그래서 왕이발은 배급도 뜯기고 각자도생해야 하는 시절을 불평하면 기꺼이 끼어들어서 나랏일은 여기서 이야기하지 맙시다, 고 제동을 건다. 불똥이 자신에게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1막이 지나고 십여 년 뒤 시작된 2막은 원세개가 죽은 뒤 서구 열강의 사주로 군벌들은 사분오열 흩어져 수시로 내전을 일으킨다. 백성의 삶은 보지 않아도 1막보다 더 피폐해져 있다.

북경의 큰 찻집들은 모두 문을 닫은 지 오래이나 왕이발이 운영하는 유태 찻집만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숙을 들이고 내부도 미인이 들어간 외국 담배회사 그림으로 바꾸는 등 개량을 거듭한 까닭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단 한 가지. 나랏일은 이야기하지 맙시다, 라는 표어. 그 전보다 더 크고 눈에 띄는 곳에 걸어 놓았다. 청나라는 무너지고 소위 민국의 시대가 도래했어도 나라는 여태 이 지경이다.

굶어 죽지 않고 살기 위한 백성의 몸부림만이 있을 뿐이다. 그 와중에 인력은 부족하고 월급은 더 줘야 하는 상황이 온다. 그러나 왕이발은 찻집을 그만둘 수 없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 차를 파는 일 말고 없기 때문이다.

군벌 간의 전투는 치열하고 피난민은 쏟아진다. 경찰과 군인은 찻집에 들러 서로 뜯어 먹기 위해 안달이다. 왕이발은 겨우 지폐 몇 장으로 무장 군인들을 달래고 순경을 내보내지만 그들은 오늘은 이만 봐주겠지만 내일은 어림없다고 엄포를 놓는다.

관상쟁이 당절취는 찻값은 내지 않을뿐더러 공짜 하숙을 원한다. 외세에 의해 몰락해 가는 민국의 사정도 황제 시대와 다른 게 없다. 양놈의 총과 대포에 기대 살면서 학생을 패고 교사를 잡아간다.

시위는 폭동이라 부르면서 민간인 살인을 주저하지 않는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혁명당을 잡아들이는 데는 몰두해도 굶어 죽는 민생은 뒷전이다. 어린 나이에 팔려 간 강순자는 왕이발에게 넋두리다.

자신을 팔아 먹은 유마를 발견하고 내리치려고 하나 그러지 못하고 겨우 한다는 것이 신세한탄. 자신을 산 환관 방태감은 민국이 되자 조카들 손에 의해 쫓겨났고 그 조카들은 자신과 어린 아들을 쫓아냈다, 여기서 팔렸으니 인연이 있고 그러니 일자리 달라고 온 것이다.

자신은 굶어 죽어도 방태감의 양자로 팔린 아들 대력 만큼은 그럴 수 없다는 것. 유마는 두 명의 군인에게 한 여자를 파는 일을 성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가 탈영병으로 몰려 참수당한 후 바로 3막이 이어진다.

일제와 전쟁에서 승리한 후 북경은 이제 미군과 국민당 첩자들 세상이다. 유태 찻집은 쇠락의 징후가 뚜렷하다. 등나무 의자는 사라지고 집안 가구는 추레하다. 왕이발은 찻집을 개량하기는커녕 자신도 굶어 죽을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러나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은 나랏일은 이야기하지 맙시다, 라는 표어와 찻값은 선불입니다, 하는 표어가 하나 더 붙은 것뿐. 이제 세상의 민심은 살기 위해서는 팔로군이 있는 서산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 온갖 사람이 드나드는 찻집은 정보의 보고이며 신세한탄의 진원지다.
▲ 온갖 사람이 드나드는 찻집은 정보의 보고이며 신세한탄의 진원지다.

찻집의 여종업원 정보는 겨우 17살인데 사는 것보다 죽는 게 좋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이런 와중에도 유마의 아들 소유마가 등장한다.(여기서 소는 영어로 치면 주니어라고 할 수 있다. 아들이라는 말이다.)

그는 아버지보다 한술 더 떠 조직적으로 인신매매를 꾀한다. 댄서 기생 매춘부 지프 걸 접대부를 엮어 '트러스트'를 조직한다는 것. 이름하여 화화 연합공사. 정보도 그가 보내서 온 것이다. 찻집에서 여종업을 쓴다.

소유마의 생각은 찻집에서 어린 여자를 써 손님을 끌어모으자는 것. 민초들은 이렇게 어려운데 놀아나는 지배층을 위해 찻집의 개조가 필요한 것이다. 전기세를 받으러 온 자는 여기가 권세가 심처장의 관할이라는 말에 줄행랑을 놓았다.

나라가 몰락이다. 건물주 진중의는 왕이발에게 한탄한다. 일본 놈들은 합작이니 하면서 공장을 먹어 치웠고 우리 정부는 반동의 재산이라고 몰수했다.

그러자 왕이발도 나선다. 먹고 살기 위해 나는 언제나 개량을 했다. 하숙도 치고 평서도 하고 체면 불구하고 아가씨도 쓰려고 했다. 사람은 살아야 하기에. 그러나 지금 내 꼴은 어떤가. 내가 누구에게 잘못했나. 황제인가 마마인가. 그들은 잘사는데, 난 찐빵 신세다.

찻집의 단골 상 대인도 끼어든다. 굶어 죽거나 잡혀 죽는 친구들을 두 눈으로 봤다. 나는 그 친구들을 위해 구걸해서 관짝 마련했으나 내가 죽으면 누가 관짝을 마련해 주겠나. 진중의가 끼어든다. 우리 세 노인이 스스로 제사나 지내주자. 그러면서 지전 몇 장을 뿌리면서 상여꾼 흉내를 낸다.

: 세 노인이 스스로 제사까지 지냈으니 무슨 미련이 남아 있을까. 그러나 막은 아직 절정에 이르지 않았다. 권세의 상징 심처장이 박차를 단 군화를 신고 손에 채찍을 들었다.

그 뒤를 호위하듯이 헌병 둘이 따른다. 그는 찻집에 들어서서 여 종업원 정보가 가져온 의자에 앉아 소유마의 브리핑을 듣는다. 온 북경 사람들이 모르는 이가 없는 60년 된 유태 찻집을 거점 삼아 큰 성공을 하시라.

예전처럼 차를 팔되 정보와 소심안으로 손님을 접대하게 하고 드나드는 온갖 종류의 인간들을 감시해 정보를 얻으면 공산당도 잡아낼 수 있다는 것.

찻집 뒤에 창고는 수리해 댄스홀을 만들고 양쪽에 침실과 화장실을 갖춰 처장님의 개인 구락부로 쓰면 관저보다도 편안하고 재미 있을 거라는 것. 이때 생각이 있는 정보가 나선다.

이 집 늙은 주인이 딱하게 생겼으니 제복을 입혀 문지기 일을 시키고 높으신 분들의 차 문을 열어 주는 일을 시키면 어떠냐는 것. 누구나 아는 살아 있는 간판이니 손해 볼 것이 없다고 간청한다.

심처장이 흔쾌히 허락하는데 소유마가 긴급 보고를 한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나 그가 목을 맸다는 것이다. 이로써 막은 끝났다. 라오서는 <찻집>으로 명실상부한 중국 현대 희곡의 아버지로 우뚝 섰다. 그러나 그의 말년은 비참했다.

1966년 문화대혁명 후 반동분자로 몰렸다. 홍위병에 잡혀 강제 삭발당하고 조리돌림과 모욕을 받았다. 경찰 조사를 앞두고 호수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정치는 언제나 경제를 좀먹고 문화와 예술을 비참하게 만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