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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미드나잇 익스프레스(1978)- 영화는 현실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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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미드나잇 익스프레스(1978)- 영화는 현실과 다르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3.04.04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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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고뇌에 차 있으면 관객은 어떤 식으로든 벗어났으면 하는 기대를 한다. 인간적으로 감정 몰입까지 더해지면 주인공의 처지가 안타깝다 못해 심하면 내가 주인공과 자리바꿈해보면 어떻게 할까, 하는 순진한 생각에 빠져든다.

아무리 주인공이라고 해도 마음만 그렇지 실제로 행동할 수는 없을 터. 그러나 아버지라면 다르다. 아들 빌리( 브래드 데이비스)가 감옥에 있다. 잘못했으니 죄를 받는 건 당연하다 싶다가도 지은죄가 별거 아니니 어떻게든 빼내고 싶다.

변호사를 쓰고 대사관과 접촉한다. 더구나 빌리는 미국인이다. 힘 있는 나라의 국민이니 튀르키에(당시 터키) 감옥을 벗어나는 길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영화가 되려고 그러는지 당시 미 대통령 닉슨과 터키 군사정부는 사이가 좋지 않다. 빌리는 국가 간 대립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영화의 처음으로 가보자. 빌리는 은박지를 싼 물건을 앞가슴에 칭칭 감고 있다. 자살 폭탄자 같은 그런 느낌이다. 그런 상태로 비행기에 오르려고 한다. 긴장이 흐른다. 이마의 땀도 덩달아 솟는다. 들키지 않을까. 호흡이 심하다.

관객들은 그것을 소리로 느낀다. 스트레오 사운드가 빌리의 호흡에 맞춰 꿍꽝거린다. 터키 군부는 그를 체포한다. 다행히 수류탄은 아니지만 금하고 있는 밀수품 바로 대마다. 조사가 시작된다. 거친 터키어에 그렇지않아도 주눅이 든 빌리는 더욱 쪼그라든다.

감옥에 갇힌 빌리. 그는 미국의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감옥을 빠져나가고 싶다. 그러나 일은 꼬인다. 아버지가 면회왔다. 이것저것 유치할 물건을 한 보따리 싸들고. 그리고는 이런 말을 한다. 곧 석방될 거다. 정부하고 접촉도 했고 유능한 변호사도 선임했다.

그 과정을 거구의 간수장 하미도우( 폴 L.스미스)가 지켜보고 있다. 그는 아버지의 애간장을 뒤로 하고 감옥으로 다시 끌려간다. 감옥에는 먼저 온 잡범들이 득시글하다. 환경은 열악하다. 추위 때문에 모포 한 장 가져갔다는 이유로 빌리는 매타작을 당한다.

아차, 싶다. 이것이 아니다 싶지만 빌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곳은 사회가 아닌 감옥이다. 이러저럭 시간은 흐른다. 드디어 재판이 열린다. 이스탄불 검사는 호전적이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재판장에게 호소하는데 빌리는 움찔한다.

돈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변호사는 지금 단계서 돈은 힘을 쓰지 못한다면서 긍정의 신호를 보내나 분위기가 심상찮다. 선고가 떨어졌다. 징역 4년 2개월. 대마를 판 택시운전사를 잡기 위해 잠시 시내로 나온 사이 도망쳤다고는 하나 제법 긴 형량이다.

그러나 변호사는 이만하면 잘 받은 거라고, 검사는 종신형을 원했다고 다독인다. 그리고 모범수라면 감형받을 수 있고 보석도 가능하다고 위로한다.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올까. 다시 감옥으로 끌려가는 빌리.

다음 재판은 언제 열릴지 기약이 없고 빌리는 동료들에 섞여 감옥의 질서를 익혀 나간다. 그런데 그에게 최악은 동료들이 아니다. 뚝 하면 주먹질을 날리는 간수장과 수형자들을 밀고 하고 차 한잔 팔면서 엄청난 고리를 챙기는 유대인 리프키(파올로 보나첼리)다.

정말 이런 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혹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빌리는 동료들과 탈출을 꿈꾼다. 여기 그대로 있다가는 제 명에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약한 곳의 벽돌을 드러내고 지하 하수구까지 가는 데는 성공했으나 막혀있다.

탈출 시도는 들통난다. 리프키는 간수장에게 알린다. 죄수들은 온몸에 피멍이 들고 탈장에 고환이 나가고 다리까지 부러지는 중상을 입는다. 시간은 흐른다. 병원에 갔던 동료가 돌아오고 또 시간은 하릴없이 그렇게 간다. 그 시간이 쌓여서 수 년이다. 단 한 줄로 수 년이라고 했지만 빌리에게 수 년은 천년의 세월보다 길었을 터.

▲ 주인공은 반항아다운 멋진 연기를 펼쳤으나 이후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요절해 팬들의 아쉬움을 샀다.
▲ 주인공은 반항아다운 멋진 연기를 펼쳤으나 이후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요절해 팬들의 아쉬움을 샀다.

그 긴 세월을 버티고 버텼다. 이제 53일 남았다. 그런데 재판이 열렸다. 청천벽력이다. 검사가 항소했고 상급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판사 38명이 참석해 25명이 종신형을 원했으나 판사는 30을 때렸다. 최후진술에서 너희들은 모두 돼지라는 빌리의 절규를 뒤로하고 그들은 유유히 퇴장한다.

빌리는 다시 감옥에 왔다. 돈버러지 변호사도 힘을 쓰지 못한다. 이번에는 정신병동이다. 거기서 그는 정신이 정말로 돈 개똥 철학자를 만나고 진짜로 미친 병자와 생활하면서 자신도 완전히 미친놈이 되고 있다.

그런 어느 날 애인 수잔(아이린 미라클)이 면회왔다. 이스탄불에서 헤어진 후 실로 몇 년만 인가. 수잔을 본 빌리는 그녀에게 다짜고짜 벗을 것을 애원한다. 수잔은 따른다. 빌리는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거친 욕망을 분출한다. ( 이 장면 참으로 기괴하다.)

수잔은 떠나면서 사진첩을 선물했다. 빌리는 그것을 살피던 중 수백 달러가 든 돈을 발견한다. 돈이라면 무엇을 해 낼 수 있다. 이번에는 변호사 대신 간수장을 직접 매수할 생각이다. 어린 두 아들이 사랑스러워 양손에 하나씩 손을 잡고 교도소 순례를 하다 수감자들에게 가혹한 매질을 하는 그도 때에 따라서는 감정이 있는 사람이다.

무언가 일이 될 것만 같다. 돈을 본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관객들은 숨소리조차 죽이면서 빌리가 어떤 식으로 접근하고, 돈을 먹은 간수장이 어떻게 호의를 베풀지 쌍심지 켜고 지켜본다. 영화가 종착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처음에 나왔던 심장박동의 울림이 더 크게 스크린을 압도한다. 영리한 간수장. 이번에도 허를 찌른다. 그가 바지를 벗는다. 자, 절망에 빠진 빌리. 들입다 그를 밀친다. 뒤로 밀린 간수장은 한 두 컷의 짧은 장면으로 화려했던 간수장의 생을 마감한다.

이후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이 펼쳐진다. 간수복으로 갈아입은 빌리. 그는 터키를 벗어나 그리스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가고 마침내 미국에 도착한다. 수잔은 물론 가족과도 재회 하는데 성공했다.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고 하고 재회 장면에서는 빌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환호가 이어지는 것을 보면 진짜 실화를 재현한 것이 맞는가 보다.

어쨌든 영화는 해피앤딩이다. 그러나 보는 내내 너무 처절해 탈출 성공에도 불구하고 빌리가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한동안 떠나지 않는다.

국가: 미국

감독: 알란 파커

출연: 브래드 데이비스, 폴 L 스미스

평점:

: 영화는 실화다. 실제로 비숫한 이유로 감옥에 갇혀 있다 탈출한 경험을 책으로 쓴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의 저자 빌리 헤이즈는 영화가 굉장히 왜곡됐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지옥처럼 당하지 않았다는 것. 더구나 간수장 살해 장면은 어처구니없다 라고 강하게 항변했다고 한다. 그러함에도 이 영화는 잘 짜여진 베옷처럼 몸에 착 달라붙는다.( 올리버 스톤이 각본을 썼다.) 영화사적으로는 완전히 성공했다.

당시 터키 군부의 잔혹함을 이런 식으로 영화는 알렸다. 당연히 터키에서는 상영 금지됐으나 이후 풀렸고 작가도 30년 만에 사죄를 조건으로 터키 방문이 허락됐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1996년에 개봉됐다.

화려한 연기로 강렬한 인상을 펼쳤던 주인공 역의 브래들리 데이비스는 이후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4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자유에 대한 갈망, 인간 황폐화라는 점에서 <빠삐용>, <쇼생크 탈출>과 함께 감옥 탈옥 영화 빅3에 해당할 만하다. 한편 영화 제목인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는 한밤의 기차여행 쯤을 상상하는 우아한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게 감옥 용어로 탈출을 의미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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