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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당장 진지를 옮기자고 총대장은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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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당장 진지를 옮기자고 총대장은 지시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3.02.21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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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를 잡은 동휴의 손이 떨렸다. 그는 언제나 그랬다. 권총보다도 일본도에서는 어떤 다른 살의가 느껴졌다. 가볍게 검지를 당기는 것과 온 몸의 체중을 실어 찌르는 것과의 차이였다.

거기에는 기합소리가 들어갔다. 총과는 다른 어떤 묵직한 것의 울림이었다.손의 떨림은 이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살의로 피가 역류하고 있었다. 그는 상대를 거꾸러트리기 전에 자신이 먼저 거꾸러질 것을 염려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걸 꺼내야 할지 말아야지 할지 결단을 내리기는 순간이 아주 짧았다.일단 빼면 돌이킬 수 없다. 그 결과가 좋을지 나쁠지도 알 수 없었다. 대대장까지 처단할 경우 수석 중대장의 반감을 살 수 있었다.

나머지 중대장들이 동요할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그들은 조센징이 아니라 날렵한 일본군 소속이었다.

그는 잡은 칼 집에서 손을 놓았다. 그와 동시에 부하를 사랑하는 인자한 장군처럼 행동했다. 제갈공명 흉내를 내지 않기로 한 것이다. 마속을 베어서 군기를 세우지 않아도 된다. 이미 장교들은 바짝 정신이 든 상태였다. 

용서다. 산 목숨이니 배로 더 용감하게 싸워라.

그제서야 마른침을 삼키던 무리들이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는 감사하거나 부끄러운 마음보다는 괘심한 생각을 품었다. 조센징 주제에 급이 높다고 감히 대일본제국의 대대장을 어쩌려고 한 것은 그에게 모욕을 주었다.

일단 살고나니 대대장은 마음이 바뀌었다. 살려만 주면 무슨일이든 하겠다는 각오가 있었으나 살고나니 저 자에게 당한 앙갚음을 하고 싶었다. 기회는 언제든지 올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사적인 복수를 멋지게 하고 싶었다. 그는 검은 야욕을 옷 속 깊이 감추고는 하이, 명심하겠습니다. 하고는 은혜에 감동했다는 감사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것으로 휴의의 기습에 대한 사후처리는 마무리됐다. 동휴는 이차 공격에 대비했다. 수비의 가장 좋은 방법은 공격이었으나 적들이 숨은 곳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어디를 어떻게 처야할 지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대신 방어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는 반드시 다시 쳐들어온다. 이번에는 그냥 당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현장에서 지휘한다. 그런 마음 다음에는 만일 내가 휴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역으로 생각해봤다.

노련한 놈이니 일차 공격같은 허술한 작전은 쓰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정면승부는 아니다. 그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주목했다. 그 자가 한 때 거기서 숨어 지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쪽 지리에 밝으니 거기를 타고 내려와서 자신의 후방으로 돌격할지 모른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그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입속으로 쉴 새 없이 되내면서 거기에서 한동안 빠져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배를 이용하는 방법은 쉽지 않을 것이다. 대규모 인원이 승선한다면 우리 함대나 레이더에 걸려들 것이다. 아니면 해안 경비대에 발각된다. 운이 좋아 무사히 상륙한다고 해도 보급로가 없는 이상 기세좋은 공격은 할 수 없다.

그래도 그는 그쪽에 자꾸 신경이 거슬렸다. 아니라고 해도 그것을 부정하는 또다른 뇌의 압박을 피하기 어려웠다. 압록강 쪽은 아예 작전 지역에서 제외했다. 방어선이 이쪽보다 더 튼튼하고 급파된 만주 지역의 독립군 토벌대가 있다. 

동휴는 아무래도 혼자 앓기보다는 대대장과 상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간혹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 자이니 이번에도 어떤 꾀가 있을지 알지 못한다. 혼쭐이 난 대대장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동휴의 방을 노크했다.

불려나온 그 옆에는 선임 중대장이 함께했다. 동휴는 중대장을 부르지 않았는데 함께 온 것이 불쾌했으나 내색은 하지 않았다. 녀석이 어지간히 떨었군. 자신을 헤칠까봐 미리 대기하고 왔어.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면 잘못됐다는 것을 알려 주기라도 하듯이 반갑게 맞아 들였다. 아까 했던 것은 부하들의 사기 때문이니 마음에 두지 말라는 위로의 말도 전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은 한 것은 안심 시키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대대장은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이라고 그 역시 호의에 대해 한 번 더 사과했다.

이건은 이제 마무리하고. 대대장은 휴의의 이차공격 지점이 어디라고 생각하나?

글쎄요. 저도 그 점을 궁금해 하면서 선임 중대장과 오면서 그 문제를 상의했어요. 정면돌파를 시도하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나름대로 허점을 노릴 텐데 여기 방서선이 길어서...

동휴가 말끝을 흐렸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대한 말을 아꼈다. 그의 입에서 먼저 나오면 신중하게 결정하자고 하면서 그의 의견에 따르는 척 하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작전에 실패할 경우 그 책임을 온전히 대대장에게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네가 거기를 방어하자고 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그의 대답은 군색할 것이 뻔하다. 대대장 역시 자신의 의견을 전적으로 내놓지 않았다. 이미 동휴란 자의 성격과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총대장과 대대장은 서로 이처럼 각자 의중을 떠보았다. 선임 중대장이 끼어들었다.

우리가 먼저 공격하는 것은 어떨까요?

어디를 어떻게?

진군하는 것이지요. 걸리면 닥치는 대로 쓸어버리고요.

한꺼번에 대동강 물을 삼키겠다고? 

대대장이 힐란하듯이 물었다.

상대가 약할 때 써먹어야지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야.

대대장이 제동을 걸고 나왔다. 총대장의 눈치를 살피면서 둘의 대화 가운데 내 판단을 내려 달라는 몸짓이었다.

동휴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대장이 옳다고 말했다. 

적이 약하고 무방비 상태라면 그 작전에 효율적이다. 겁을 주고 공포로 백성을 억압할 수 있으나 지금은 무장한 군인을 상대하기 때문에 그 작전은 작전으로써 가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무안한 선임 중대장이 머쓱한 듯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동휴는 더는 참지 못하고 거기는 어떻소? 북쪽 말이요. 내 생각에는 그 쪽을 통해서 허점을 찾지 않을까 싶어. 

그쪽이라면? 

그래, 맞았어. 로스케 땅.

사실은 저도 휴의가 그쪽으로 공격 지점을 정했을 거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만...

동휴는 이번에는 타박하지 않고 그렇지, 대대장 생각도 그렇지 하면서 자신이 먼저 꺼낸 아이디어에 대대장이 찬동하는 쪽으로 밀고 나갔다.

거기라면 우리도 승산이 있어. 여기에는 소수의 인원만 남겨 놓고 떠나자고. 야밤을 타야지. 우리가 이동하는 것을 알면 적들이 이곳을 노릴거야. 기회를 줄 이유가 없어. 

오늘 밤 당장 진지를 옮길까요?

그러지, 말이 나온 김에 당장 실천합시다.

하이, 하이.

대대장과 보조를 맞춰 선임중대장이 동휴에게 인사를 올려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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