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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재난 시대, 의료진 위한 법적 안전장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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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재난 시대, 의료진 위한 법적 안전장치 필요"
  •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 승인 2023.01.04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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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경 교수 "응급처치 후에도 의료기관에서 전문치료 시행해야"
김상범 교수 "응급상황 대처하도록 법적 안전장치 마련해야"

[의약뉴스] 지난해 12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응급의료법 개정안’, 일명 ‘착한 사마리아인 법’으로 응급상황에서 의료진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보호 장치 마련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현재도 응급처치로 인한 상해에 고의 또는 중대 과실이 없으면 민ㆍ형사상 책임을 면제하고 사망한 경우, 형사책임은 면제가 아닌 감면하고 있지만, 여전히 의료진은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는 상황.

▲ 최재경 교수(좌)와 김상범 교수.
▲ 최재경 교수(좌)와 김상범 교수.

건국의대 가정의학과 최재경 교수와 경희의대 신경과학과 김상범 교수는 최근 ‘대학의학회 뉴스레터에 ’제한적 응급 의료상황에서의 의료진의 대처‘와 관련, 각각 임상과 법적인 문제에 대한 기고를 통해 현행법의 한계와 과제를 제시했다.

먼저 최 교수는 병원 밖에서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현장에서의 응급처치는 의료기관으로 이송되기 전 일시적으로 시행되는 조치뿐만 아니라 적절한 회복을 도모하는 모든 과정을 포함한다는 점을 전제했다.

그는 “응급처치의 첫 과정은 응급상황을 인지하고 응급처치가 필요한지 판단하는 것으로, 응급처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안전성 평가를 해야 한다”며 “응급처치를 하기에 위험한 상황인지 아닌지를 평가해 안전하게 처치할 수 있는 상황을 확보한 후 응급처치를 시작해야 한다”고 전했다.

만약, 교통사고로 도로 한가운데 있거나 재난 상태가 진행 중이라면 응급처치를 하기에 안전한 장소로 이동해야 하고, 119나 응급전문기관으로 연락한 뒤, 환자의 상태를 평가해 어떤 응급처치를 시행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최 교수는 “심정지가 있다고 판단되면 기본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되, 자동제세동기(Automated External Defibrillator, AED) 이용이 가능한 경우에는 심폐소생술을 지속하면서 AED를 적용해 제세동이 가능한 심장리듬인지 분석한다”며 “가능한 경우라면 제세동을 시행한 후 심폐소생술을 시작하고 제세동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라면 심폐소생술만을 지속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도폐쇄가 있다고 판단되면 의식이 있는 성인 환자의 경우에는 먼저 기침을 하도록 하고 기침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복부 밀어내기 방법(하임리히법)을 시행한다”며 “시행 중에 환자가 의식을 잃으면 복부 밀어내기 방법을 중단해야 하고, 의식이 없는 경우에는 심폐소생술을 시행한다”고 강조했다.

또 “물에 빠진 후 구조된 경우에는 먼저 의식과 호흡, 맥박을 확인하여 환자의 호흡과 맥박이 확인되면 옆으로 눕힌 후 얼굴을 돌려 자연적으로 구토물이 배출되도록 회복자세를 취한다”며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져 있는 경우 구조 직후 바로 젖은 의복을 신속히 벗긴 후 마른 의복으로 갈아입히거나 모포나 담요를 덮어 주어 저체온증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고 전했다.

열사병, 열경련 등의 온열질환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는 통풍이 잘 되는 그늘이나 에어컨이 작동되는 실내로 이동한 후 가능한 빨리 몸을 차게 식히는 것이 우선이며, 의식이 없으면 질식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절대 물을 먹여선 안 된다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최 교수는 “응급처치 후에는 환자 상태가 회복됐다 하더라도 응급 의료사항이 완전히 해소되었는지 현장에서 판단하기 어렵다”며 “반드시 119 구조대에 인계하거나 의료기관을 방문하도록 해 정밀한 평가와 전문적 치료가 시행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김상범 교수는 의사에게는 진료 거부권이 없지만 불가피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안전장치도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대한민국 의사면허 체계는 의사의 독점적인 지위를 인정하는 듯 보이지만 의료법의 의료계약 조항을 보면 정당한 사유 없이는 환자의 진료요청을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서도 업무 중에 응급의료를 요청받거나 응급환자를 발견한 때에는 즉시 응급의료를 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는 응급의료를 거부하거나 기피하지 못한다고 해 의료를 민법상 계약자유의 원칙에서 배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병원 밖에서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제한된 의료자원 환경에서 의사가 적극적으로 응급처치를 취했을 경우 응급환자 상태에 따라 의사가 져야 할 책임의 범위라는 것.

김 교수는 “중증 응급환자에 대해 가능한 범위에서 최선의 응급의료와 처치를 했지만 결국 사망했다면 형사책임이 면제되는 게 아니라 감면된다”며 “운 좋게 환자가 살았어도 상해 상태가 생기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음을 응급의료종사자가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김 교수는 지난 2018년 5월 경기도 소재 모한의원에서 봉침 시술을 받은 30대 여자 환자가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사망한 사건을 들었다.

이 사건은 봉침 시술을 받아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온 환자를 응급처치한 가정의학과의원 의사에게 유족이 9억원대의 민사소송을 건 사건을 말한다. 2년에 걸친 재판과정을 거쳐 법원은 한의사의 의료과실만 인정하고 의사에게 민사책임을 지우지 않았지만, 판결에 불복한 유족들은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김 교수는 “재판 과정에서 가정의학과 의사가 감내해야 했을 온갖 고충과 응급 환자를 살리기 위해 뛰어든 의사에게 돌아오는 서늘한 소송, 그리고 유가족이 형사소송을 했을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 아찔하지만 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김상범 교수는 “이태원 참사 현장으로 출동한 의료진을 대상으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응급의료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즉 중대한 과실이 없었는지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의사에게 주어진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와 주의 의무를 다해도 고귀한 생명을 보존하기가 쉽지 않은 중증응급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의료진에 대해 중대 과실을 수사하는 현실은 생명은 고귀하게 여기되 생명을 소중히 진료하는 의료진은 박대하는 인지부조화로 생각된다”고 강조했다.

또 “응급상황에서 의료진이 주도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의료진을 위한 법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만이 다재난 시대에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첩경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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