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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3-12-09 17:54 (토)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그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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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것 하나 빠지는 그림이 없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12.16 1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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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를 타고 그들은 호텔로 돌아왔다. 산 옷은 마음에 들었다. 백화점에서 만족했지만 돌아와서도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한 번 입어 볼게요.'

하고 방으로 들어간 점례가 다시 거실에 나타났을 때 호사카는 옷이 날개처럼 그녀의 양어깨에 착 달라붙은 것을 보았다.

'옷이 날개라더니...당신 정말 천사 같아.'

'칭찬인가요?'

'물론, 말이라고 해.'

'당신도 한 번 입어봐요. 난 괜찮아. 벗고 입는 것이 귀찮아.'

'알았어요. 남자들이란?'

그 말을 하고 점례는 아차 실수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난 그런 표현 싫어해. 보통의 남자와 나를 섞어 넣는 거 말야.'

'미안, 미안해요. 내 실수에요. 인정.'

점례는 부지불식간에 나온 말 때문에 조금 미안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런 것을 마음에 담아둘 그가 아니었으나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지, 생각했다.

그는 정말로 가다가 치이는 그런 흔한 남자가 아니었다. 더구나 나의 남자 아닌가. 정신적으나 육체적으로나 그는 얼마나 고상한가. 그런 그를 그냥 보통명사 남자로 넣었다.

이런 실수가. 점례는 말을 돌렸다. 화제를 바꿔 벗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그런 걸 눈치챘는지 호사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여보, 아까 그 헌병대원들 조금 심하지 않아.'

'아, 종로통에서요. 그래. 굳이 채찍으로 때릴 것까지야 있나. 한쪽으로 비키라고 주의를 주면 될 것을.'

'그러게요. 말로 해서 안 듣는다고 생각했나 보지요.'

'개, 돼지도 아니고 사람인데 말로 해서 안 될 게 뭐가 있어.'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총독이라면 이런 식으로 조선을 관리하지는 않을 거야. 힘으로는 잠깐 복종시킬 수 있지만 영원히 그럴 수는 없거든. 군대도 마찬가지야. 명령은 실행되지만 성과까지 그런 것은 아냐. 인간적으로 감동을 줘야 해.'

'정말 당신은 휴머니스트. 인정.'

'더 들어봐. 조선 사람이 다른 민족한테 학대당하는 것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았어.'

'여보, 그럴 리가요. 더 보기 어려워 난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어요. 당신처럼 마음이 아팠어요. 하지만 그런 생각은 못했어요. 당신을 존경해요.'

'그만, 내가 당신한테 인정받으려고 이런 말 하는 거 아니라는 것 알잖아. 사람의 감정은 어려움에 처한 다른 사람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생기는 법이거든.'

'인정.'

점례가 짧게 말했다. 그런데 인정하고 아랫배에 짧게 힘을 주는 그 순간 뭔가 좀 이상했다.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배 안에서 밖으로 두들겨 대는 것 같았다.

이런 느낌은 화신에서도 받았다. 옷을 배에 댄 짧은 순간이었다. 상처처럼 배가 부어오른 느낌도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으나 지금은 달랐다.

임신인가, 아이인가. 그럴 리가. 내 몸은 내가 안다. 아이를 키울 만큼 건강하지 않다. 그럴 의사도 그럴 책임도 없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당신 왜 그래, 갑자기 말도 없이 얼굴을 찌푸리고. 내 말이 불쾌한 거야.'

'노 노, 네버 절대로 아니에요. 배가 좀 아파요. 현기증도 있고요.'

'지난번에도 그랬잖아.'

'그러게요.'

'병원에 가 봐야 하는 거 아냐.'

'그 정도는 아닙니다.'

점례가 돌아서면서 말투를 바꿨다.

'그래도 몰라. 한 번 가보자. 내일은 일정이 없잖아. 전시회 준비는 삼촌이 다 할 거고. 병원에 갔다가 화실에 들르자고. 서로 거리가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니고.'

'그럴까요. 아니에요.'

점례는 왔다갔다했다. 가보고도 싶었고 아니고도 했다.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임신이 확인되면 이보다 더 큰 낭패는 없다. 호사카는 아이를 원치 않는다고 했다. 결혼한 몸도 아니다.

'아이, 여자, 노예' 이런 단어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어째야 하나. 점례는 자신의 걱정이 다른 모든 걱정에 앞서자 오로지 이 문제 하나만이 자신에게 닥쳐온 것처럼 행동했다.

'내일 상태 봐서요.'

'그래, 그렇게 하지. 요즘 당신 무리했어. 한시도 쉴 틈이 없었잖아. 내가 커피숍에 간 사이에도 그 새를 참지 못하고 그림을 그리지 않나. 좀 쉬어도 좋아. 연필도 놓고. 그림은 파리에 가서 실컷 그려도 되고.'

'네, 염려 붙들어 매세요. 아프지 않겠어요. 당신 걱정하는 거 볼 수 없어요.'

점례가 입을 내밀었다.

'이리와, 여보. 내가 당신을 열망해.'

'나도요.'

둘은 한동한 선채로 포옹을 했다. 그 시각 호텔 로비에 동휴가 도착했다. 그는 호사카가 집을 나갈 때부터 미행했다. 백화점에서도 마차를 탔을 때도 호텔에 도착했을 때도 눈을 떼지 않았다.

오늘 휴의는 점례와 접선 실패다. 그렇다면 오후에 반드시 어떤 모션을 취한다. 그가 호텔로 온다. 로비에 점례가 나타난다. 둘은 스쳐 지나가지만 내 눈을 피할 수는 없다.

찰라의 순간 그들은 서로 말을 섞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다. 동휴는 담배를 신경질 나게 비벼 끄고는 마주 앉은 부하에게 네가 휴의라면 지금 어디에 있겠느냐고 물었다.

'자고 있겠지요.'

동휴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없이 쳐다봤다. 같잖다는 태도였다.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머저리 같은 놈.'

주변 다른 사람이 들어도 상관 없다는 듯이 제법 큰 소리로 그가 말했다.

'그것 말고 달리 뭐 할 게 있겠어요? 안 그래요? 그물을 쳐 놓고 샅샅이 뒤지고 있는데 어찌 움직이겠어요. 바보가 아닌 이상.'

그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그놈은 바보 이상이다, 이 얼빠진 놈아.'

동휴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호사카를 다시 불러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다른 상황이 없는 상태에서 그에게 다시 오라 가라 할 수는 없었다. 안 돼지, 안 돼. 경 칠일 있나. 그렇잖아도 기분 언짢은데. 

그러다가 불현듯 일본각 하고 동휴가 자신의 머리를 가볍게 쳤다.

'너희들 바로 출동해서 일본각을 감시해. 드러내 놓지 말고 멀찍이 떨어져서 오가는 놈들을 살피고 의심스러운 자는 바로 체포해. 서 너 명 더 데리고 가라.'

'여기는 어쩌고요?'

'나 혼자면 충분하다.'

동휴는 부하를 보내고 나서 다리를 길게 맞은 의자 쪽으로 뻗었다.

한편 시장을 나온 휴의는 근처 아지트로 급히 몸을 숨겼다.

'믿을만 하지. 그 음식점 주모?'

휴의는 대원에게 묻는 것인지 자신에게 질문한 것인지 모를 혼자 말을 했다.

'일년 전에 한 번 들렀었는데 나를 알아보지 못하네. 그때 군자금 모금을 위해 조선에 왔을 때 할머니랑 같이 왔었거든.'

휴의는 동료 대원에게 그때의 일을 간단히 설명하면서 어때 믿을만 해? 하고 이번에는 확실히 그들에게 물었다.

'글쎄요. 딱 한 번 본걸로는.'

다른 동료가 끼어들었다.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어요. 이마가 크고 눈이 가늘고 긴 상이거든요. 광대뼈도 조금 나오고요. 이런 정도면 배신을 잘 하지 않지요.'

'관상으로 일을 판단할 수는 없어. 일단 다이너마이트를 옮기는 중책이야. 양이 많거든. 한 번에 끝장내야지. 한옥은 물론 옆 건물에 있어도 타격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가 안전하게 옮겨 놓기는 어려워. 지금쯤 종로서나 헌병대 쪽에서 감시가 들어갔을 거야. 외곽 경비는 물론이고 십여 명이 상주하고 있을지도 몰라. 섣불리 들어갔다가 시도도 하지 못하고 끝날 수 있어.'

'그럼 그 자리에서 신분을 밝히지 그랬어요?'

'아니야, 그랬더라면 지금 신고가 들어갔을지도 몰라. 한 번 떠 본거야. 할머니 말로는 믿을 수 있다고 했지만 일년 전의 사람과 지금 사람이 같을 수는 없어. 더구나 아들이 아프다고 했잖아. 그동안 큰 변수가 생긴 거지.'

'그래서요. 사실대로 말해야지.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야.'

'그런 다음에는요. 야, 너도 좀 생각이라는 걸 해봐. 묻지만 말고.'

저야 시키는 일만 했으니까 그렇죠. 대장님은 지시만 했고요.'

'알았어. 이번 일이 성공하면 너도 시키는 일을 하게 될 거야.'

'저도 대장으로 승진하나요?'

' 됐거든요.'

다른 대원 하나가 끼어들었다.

'늦기 전에 이따가 한 번 더 들러볼까해. 이른 저녁을 먹으려고 한다면서.'

'같이 갈까요?'

'아니다, 혼자 가마. 너희들은 잠이나 자둬.'

'그깟 잠이야 잘못되면 영원히 자게 될 텐데요.'

'이놈이, 재수 없는 소리는.'

'뭐 먹을 거 있으면 말해라. 싸우지들 말고.'

'알아서 하세요.'

대원 하나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 시각 삼촌은 어떤 그림을 어떤 식으로 배치할지 머리를 짜냈다. 메인 그림은 확정됐다. 외국작품은 안쪽으로 배치할 생각이다. 여러 번 그림을 이리저리 달았다 놓았다를 반복하다 어느 것이나 어울린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세워 놓은 순서대로 벽에 걸었다.

'참 좋아, 조선 천재야.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이런 그림을. 조카가 빠질 만도 하지. 조선을 넘어 세계에 이름을 떨칠 거야. 조선에 있기는 아까운 인물이야.'

삼촌은 이런 말을 노래처럼 흥얼거렸다.

파리 미술전시에는 당연히 일본인으로 이름을 올리겠지. 뭐, 조선이라는 나라도 없어진 형국이니 일본 사람이지, 점례 마사코.

삼촌은 그림에 넋을 놓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다. 전시회가 끝나면 일본으로 보낼 것과 자기가 가질 것을 구분해 놓았다. 현장에서 사려는 자가 있으면 서너 점을 팔아야지. 꽤 돈이 될 거야.

삼촌의 얼굴이 양옆으로 넓게 퍼졌다. 그런데 휴의라는 놈하고는 왜 연결된 거야. 동휴는 또 어떻고. 마치 소설책을 읽는 기분이 들어. 승전하면 동휴라는 놈부터 제거해야지. 삼촌의 눈이 번득였다.

점례와 얽힌 게 기분이 상해. 휴의는 자연히 없어질 거고. 그나저나 점례의 정체를 모르겠어. 그가 어느 편인지. 휴의에 호감이 있는 것은 분명해. 그렇다고 호카카를 배신하지는 못 할거야. 그럼, 배신이라니. 당치도 않아.

호사카는 결혼을 해야지. 점례는 물론 아니고. 전시회 끝나고 총독님 만찬에 가지고 갈 그림을 챙겨야지. 메인 작품과 그래 저거야. 군복을 입고 욱일기를 들고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저 그림.

호사카를 잘 표현했어. 총독이 마음에 들어 할 거야. 어떤 그림을 모방했는지 아니면 순수한 창작인지는 몰라. 하지만 아무렴 어때. 주인공이 호사카고 깃발이 우리 것인데.  오후에 오면 내 전시 솜씨에 놀라겠지.

삼촌은 누가 보기라도 하는 양 갑자기 표정을 바꾸어 심각한 얼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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