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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감각과 눈썰미를 이번에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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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감각과 눈썰미를 이번에도 믿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8.08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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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 호사카는 생각이 많았다. 옆에 점례가 바짝 붙어 따라 걷고 있는 것도 잊은채 이런 저런 상념에 골몰했다.

특히 경찰 간부라는 자의 태도에 대해서 그는 이런 자들은 어째서 늘 승승장구 하는지 궁금해 했다. 대낮에 술을 먹고 큰 소리치고 행패를 부리는 자들이 높이 오르는 이유를. 군대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 불 가리지 않고 마구 들이치는 자는 어느 날 승진 발표날에 어김없이 명단에 들어있었다. 합리적인 사고와 토론을 중시하면서 신중하게 공격을 결정하는 상관은 늘 물을 먹었다.

나중에 그런 결정이 부하들을 죽음에서 건져 냈다는 명확한 근거가 있음에도 그런 것은 당장은 물론 다음 기회에도 정상 참작이 되지 않았다. 조선에 와서 처음으로 맞딱트린 이런 질문이 유지는 불쾌하지 않았다. 다만 하나의 현상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 

알고 나면 모르고 있을 때보다는 마음이 편할 것이다. 다들 그렇게 하니 여기서도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기에.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경찰 간부가 저 정도 행동을 하고 있다면 그 아래 순사들의 행동거지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는데 이르렀다.

물론 그들은 흰 옷 입자들이 무서워하고 피해야 하는 존재로 각인되는 것이 맞다. 두려워하는 존재가 없다면 통치는 불가능하다. 생각만 해도 무서워서 벌벌 떠는 존재가 있어야 한다. 

치안이라는 것이, 식민지 국민을 다루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유지는 잘 알고 있었다. 순한 양으로는 질서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강약은 조절할 수 있다. 이제 수 십년이 됐고 누구도 조선이 일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자는 세계어디에도 없는데 저렇게 까지 거만하게 구를 필요가 있을까. 

방법을 바꿔도 될 것이다. 굳이 적을 만들 필요가 없다. 특히 가장 가까이에 있는 주민은 확실한 우군이 아니면 언제든지 적군으로 바뀔 수 있다. 그것이 하루를 살아가는 민초들이 갖는 생존 방식이었다. 저들을 화나게 해서 경부는 무엇을 얻었을까. 개인적 화풀이는 했을지 몰라도 국가적 차원에서는 손실이다. 

유지는 아버지가 총독 관저에서 돌아오면 그런 이야기를 해 볼 참이었다. 그것은 그가 훗날 정치적 욕심을 미리 채우기 위해서 내세우는 조건 같은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눈도장을 미리 받아 총독부에 심어 달라고 부탁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만 아버지에게 자신의 의사를 건네는 것으로 아버지의 아들임을 증명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안에 있는 선한 마음이 작동되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정치나 정치적인 것에서 되도록 멀리 있고 싶었다. 눈에 보이는 좋은 것을 추구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은 일생을 살겠다는 것이 전선에서 조선으로 오면서 그가 수없이 되풀이 한 다짐이었다.

죽고 죽이는 피를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그것을 경험했고 그 일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어울렸다. 그러자 경부 같은 인간이 거기에 딱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은 경부가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의 경찰간부 직이라는 것이 무턱대고 떨어진 나무 아래의 곶감이 아니었다. 그만큼 그에게 그것은 적합한 것이었고 조직은 그에게 그것을 원했다. 경부는 자기 할 일의 일부를 한 것이다.

유지는 그런 생각이 들자 가라앉은 기분이 되레 이상했다. 그래서 점례의 손을 잡아 끌었다.

'우리 조금 천천히 걷자. 주변을 보고 무엇이 있는지 살펴서 약속 장소를 정할 때 다리 위라고 막연히말하지 말고 수표교 앞 혹은  보신각 안에서 처럼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자.'

점례는 본능적으로 대답했다. 지금껏 유지의 말을 반대한 적이 없었다. 일단 찬성해 놓고 다른 의견을 말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하자고 하는데 아니라고 해본 적이 없다. 점례는 천성적으로 순종하는 여자였다. 

'그래요.'

점례는 이번에도 그렇게 말하고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유지는 그런 것이 좋았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면 그것을 행동으로 직접 옮겨 보여주는 점례가 현명한 여자였다. 

통치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바로 점례가 같은 여자가 아닐까. 통치당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성립될 것이다.  자신의 존재 이유도 그녀 때문은 아닌가.

오늘의 일이 의미가 있고 내일을 설계하는데 점례가 없다면 가능한 일인가. 유지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점례의 존재가 소중하게 자신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왔음을 실감했다.

둘은 어느 덧 광화문 사거리에 도착했다. 시계는 늦은 오후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느 새 경부의 일은 까마득히 잊었다. 다시 만날 일이 있겠는가. 있다 손 치더라도 그 때는 유지가 나설 것이다. 똑같은 상황이 온다면 말이다. 

자신의 신분은 물론 아버지 까지 들먹이면서 함부로 자신들 앞에서는 날 뛰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다른 사람 앞에서 그러는 것까지 막을 생각은 없었다.

유지가 이런 생각을 할 때 경부는 머리를 굴리다 굴리다 마침내 희미한 여자의 정체를 구체적으로 짐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기쁜 나머지 작은 환호성을 질렀다. 

'점례다, 점례일 가능성이 팔 할이다.'

경부는 자신의 눈대중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보령 죽마을을 떠나 올 때 가장 최근의 점례 모습을 상상했다. 4년 전의 일이지만. 그 때 점례는 단발머리였다. 그러나 뒤로 묶을 수 있을 정도는 되서 때로는 이마가 훤히 드러나게 머리를 묶고 나왔다.

그 이마는 빛이 났다. 앞으로 조금 나온 이마는 의지가 굳은 소녀의 표식 처럼 보였고 조금 두툼한 입술은 여자라면 선망하는 선홍색이었다. 볼은 이마처럼 약간 앞으로 나왔고 두 눈, 어둠 까지 쫓아낼 듯한 밝은 두 눈이 틀림없는 점례였다.

그녀는 자신을 보지 못했다. 일어설 때 경부는 식탁위에 벗어 놓은 모자를 깊숙히 눌러썼고 그로 인해 자신은 감추고 상대를 관찰할 기회를 얻었다. 단 1초 정도 였으나 그는 점례라는 사실말고는 다른 것을 추측할 수 없었다.

점례라니, 놀라웠다. 그녀는 일본에 있지 않은가. 그래 일본으로 자신이 보냈다.

일본에서 돌아온 것일까. 돌아왔다면 죽마을에 있어야 맞다. 그런데 여기 인사동에서 일본말을 유창하고 구사하는 남자 둘과 함께 술집에 있다. 더구나 그림을 이야기 하고 파리 유학을 말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고 이런 저런 짱구를 굴려도 그 전의 점례와 지금의 점례는 일치될 수 없었다. 순식간에 변하고 사라지는 것이 전쟁터이고 식민지 시대라고는 하지만 점례의 변신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것이었다.

이 즈음에서 경부는 방금 떠난 여자가 점례라는 확신을 백 프로 가졌다. 비록 흰 옷과 검정치마 대신 양장 옷으로 빼 입고 머리를 조금 볶아서 귀뒤로 넘겼지만 내 눈은 속일 수 없다.

머리를 밀고 콧수염을 단 자도 바로 잡아 내지 않았던가. 본능적으로 맡는 냄새치고는 정확도가 매우 높았다. 동휴는 코를 벌름 거리면서 먹을 것을 찾는 돼지처럼 끙끙거렸다. 

그는 그의 감각과 눈썰미를 이번에도 믿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경부는 점례가 맞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현재 위치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판단하지 않았다.

일본 남자와 결혼해서 잘 산다고 해도 아니면 결혼 같은 것은 하지 않고 무슨 요정의 마담으로 활동한다고 해도 그래서 그것을 자신과 연결을 짓고 싶어도 고리가 없었다. 

그러다가 집히는 것이 있기라도 하듯이 이마를 가볍게 주먹으로 치고는 비뚤어진 모자를 바로 썼다. 점례와 휴의가 서로 어른 거렸다. 저들이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가 아닌지 궁금했고 그 궁금증을 바로 풀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서로 복귀하지 않고 자신에게 다가와 주의를 주었던 화랑 주인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술기운이 확 사라졌고 경부는 이제 말짱한 정신으로 몸을 똑바로 하면서 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멀리서 화랑 간판이 보였다. 10미터 까지 간 그는 무슨 생각이 나서인지 더는 발길을 옮기지 않고 왔던 길로 되돌아 갔다. 오늘은 위치만 확인하자. 작전을 짜서 행동하자.

그는 화랑 주인과 주인과 같이 있던 남자와 점례라고 확신하는 여자뒤를 미행하기 위해 믿을 만한 부하 셋을 차출했다. 일대일 전담 미행을 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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