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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운명이나 예감에 자신의 전부를 맡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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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운명이나 예감에 자신의 전부를 맡기고 싶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7.26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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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그 무렵 인왕산 자락에는 100여 명의 무장한 독립군들이 30여 명씩 짝을 이뤄 어떤 명령이 내려지기만을 초조한 기색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초조함은 늦으면 낭패를 본다는 조급함은 아니었다. 일찍 시작하든 조금 늦게 출발하든 시간의 문제는 아니었다. 작전의 성공을 높이는 적당한 때냐 아니냐 하는 것이었다.

그 시기를 저울질하는 휴의는 다른 곳의 지휘관들 역시 자신과 같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침투 시간이 동일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고뇌의 시간이 길어지자 들었을 뿐이었다.

그랬다면 시기를 놓고 이제니 저제니 잴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시 공격은 그만큼 많은 희생이 필요하다. 화력의 집중으로 적에게 미치는 타격도 크겠지만 독립군에도 적잖은 손실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무한정 기다릴 수는 없었다. 여기서 하루가 더 늦는다면 병사들은 동요할 것이다. 서두르지는 않는다고 해도 준비를 물릴 수는 없었다.

‘가서 격파하시오.’

그런 지시를 받기 위해 휴의는 기다렸다. 오후의 해가 석양으로 지려면 아직 30분 정도는 더 있어야 한다. 부서진 성곽을 따라 휴의는 위쪽으로 몇 계단 더 올라갔다.

그러자 나무 사이로 가렸던 북한산의 봉우리들이 멀찍이서 선명하게 들어왔다. 그림자와 역광을 받은 부분이 교묘하게 겹쳐지면서 산세는 한층 위세를 더하고 있었다.

허리를 굽혀 휴의는 무너진 돌을 하나 꺼내 들었다. 묵직했다. 힘을 주자 허리 쪽에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피긋하는 통증이 왔다. 그러나 휴의는 그것을 무시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그는 들어 올린 돌을 아귀가 맞게 무너진 쪽에 쌓아 올렸다. 성벽을 보수하려는 마음은 없었지만 그렇게 서너 개를 더 쌓자 그럴싸한 모양이 나왔다.

백 년 전 혹은 세월을 알 수 없는 어느 날 적의 침공을 막기 위해 선조들이 세운 성곽에 붉은 노을이 사뿐이 걸터앉았다. 산속 깊은 곳에 사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전에 고추잠자리들이 떼를 지어 성곽 주위를 빠르게 날기 시작했다.

일부는 볕을 쬐기 위해 돌의 끄트머리에 앉아 날개를 내리고 쉬고 있었다. 잠자리를 잡아 볼까.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면서 휴의는 엄지와 검지를 모으고 붉은 꼬리 쪽으로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빠르게 집게를 모은 순간 숨소리가 들렸던지 눈치를 챈 잠자리가 훌쩍 자리를 박차고 무리 속으로 사라졌다.

'사령관님, 좀 더 빨랐어야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병사 하나가 자신이라면 자신 있다는 듯이 휴의의 느린 동작 때문에 실패한 작전을 지적했다.

'이보다 더 빠를 순 없어, 그랬다가는 손가락을 접지도 못했을 거야.'

그는 멋적은 듯 이렇게 대꾸하면서 다음에는 잡아서 실력을 보여 주겠다고 웃었다.

병사는 더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뻗은 다리를 오무리지 않고 고향의 들판에도 지금쯤 날고 있는 고추잠자리 모습을 상상하느라 고개를 숙였다.

휴의는 뭐라고 대꾸하려다 말고 주머니 속의 회중시계를 꺼내 들었다. 상해를 출발할 때 주석 선생이 주신 것이다. 선생은 시계를 여러 개 가지고 있었다.

중요한 순간이 오면 서랍 깊숙이 숨겨둔 것 가운데 알맞은 것을 골라 일을 추진하는 당사자에게 건네주었다.

윤봉길 의사도 주석이 주신 시계를 갖고 작전에 임했다. 시계는 말하자면 주석과 자신과의 약속인 셈이었다. 시계의 둥근 테두리 안에 주석의 얼굴이 비쳐들었다.

'동지, 성공하고 돌아오시오.'

휴의는 꼭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동지의 성공이 임정의 성공이며 조선독립의 성공이 될 것이오.'

너무나 비장하고 절절한 음성이었다. 그 목소리가 시계속의 얼굴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성공하고 살아서돌아오시오.'

휴의는 주석의 말을 곱씹었다.

그러면서 내밀었던 시계를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말하자면 시계는 주석 그 자체였고 임무 완수의 상징물이었다. 그는 이 시계를 잘 간수했다가 자신보다 더 소중한 인물이 험난한 길을 가게 될 때 주고 싶었다.

자신이 이봉창 의사보다 먼저 태어났더라면 그를 만나 주석 대신 주는 시계라면서 주머니 속의 회중시계를 건네 주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의사는 체포되지 않고 다음 작전에 투입됐을 것이다.

그랬다면 의사를 체포했던 자들의 손에 시계가 넘어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장물을 압수해 놓고 증거품이라고 책상 위에 나열 당하는 수모도 겪지 않았을 것이다.

휴의는 시계를 들어 눈앞에 대고는 초침을 유심히 보면서 자신과 시계가 하나의 몸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았다. 이것은 자신을 지켜줄 부적은 아닐지 몰라도 어떤 위안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물건이었다.

이번에는 귀에 갖다 대고 소리를 포착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잠시 후에 째각 거리는 소리가 쉴 새 없이 휴의의 귀를 자극했다. 시계는 죽지 않고 잘 가고 있었다.

시계 소리를 들으며 휴의는 지체하지 말고 즉시 출동하라는 다그침의 명령으로 또 한편으로는 서두르지 말고 적당한 때가 오기를 기다리라고 붙잡는 명령 같기도 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을 시계가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렇게 한동안 시계와 눈을 맞추고 귀에 대고 하면서 저물어 가는 총독부의 긴 어둠 위로 눈길을 돌렸다.

그 때 멀리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서너 대의 군용차가 총독 관저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에 눈에 띄었다.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총독이 사는 총독부의 회색 건물 앞에 차는 연달아 멈춰섰다.

중요한 인물이 본토에서 총독을 방문하기 위해 온 것인지 지방의 고관대작들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들어 온 것이지 여기서는 알 수 없었다.

일제에 굴복한 조선의 왕이나 그 부스러기 혹은 대신들이 선물상자를 들고 아부의 길에 들어서기 위해 막 도착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여러 대의 차를 나눠타고 이동하는 것으로 보아 총독에게 중요한 인물인 것은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만약 일본에서 온 총리 일행이거나 왕실의 사람이라면 공격은 기대 이상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인왕산의 거대한 바위를 등지고 휴의는 창의문 인근에 대기하고 있는 또 다른 일행과 북악산 언저리와 북촌방향에 있는 특공대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공격의 시간을 재는데 참고가 될 것이 분명했다.

시간과 달리 공격 순서는 사전에 정해졌다. 선발대는 북촌방향에 있는 일공수 조선 특공대 33명이었다. 이들이 선수를 치면 뒤이어 창의문에 대기하고 있던 이공수 조선 특공대 88명이 들이닥치고 이어 북악산의 삼공수 조선 특공대 103명이 연달아 치기로 했다.

휴의의 사공수 조선 특공대는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실제로 전투에 투입되거나 아니면 후퇴할 경우 특공대의 후방을 맡아 퇴로를 터주는 역할을 하기로 했다. 따라서 휴의의 부대는 공격에 가담하더라고 가장 늦게 뛰어들게 돼 있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현장 지휘관의 재량에 따라 공격 유무가 결정되므로 휴의의 군대도 총독부 경내로 들이닥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기회와 위험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숱한 전투 경험이 있음에도 이런 때가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공격이 시작되면 되레 긴장은 사라지고 숨어 있던 용기마저 튀어나오게 된다.

그러기 전에 휴의는 어떤 운명이나 예감에 자신은 물론 부대 전체의 몸을 맡기도 싶었다. 휴의는 추격과 도피과정에서 그것이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다.

아무리 수가 많아도 지는 경우가 있고 적은 수라도 이기고 만세를 부르는 경우가 있었다. 돌아보면 졌을 때의 이유는 분명했지만 이겼을 때의 경우는 반반이었다.

작전이 반 운이 반이었다. 휴의는 짚차를 뒤따라 들어간 군용 트럭 서너 대가 이번 작전의 승리를 예감하는 신호탄으로 해석했다. 왜 그랬는지는 작가도 독자들도 모른다.

군용트럭이 멈추고 나서 수 십 명의 일본군이 내렸기 때문이다. 경비가 강화되거나 적의 수가 많으면 아무래도 싸움은 어려워진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휴의는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현상을 해석했다.

그는 더 나아가 잘하면 총독도 제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이인자인 경무 총감은 물론 그 아래에 있는 인사들도 쓰러트리자.

그러기 위해서는 북촌방향에 있는 일공수 조선 특공대의 전투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제타격으로 적의 기세를 제압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그들에 비하면 휴의는 안전한 후방에서 진을 치고 작전이 성공하고 있는지 아니면 어려운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는지 관전하는 입장이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경복궁 뒤의 거대한 회색 건물이 음산하게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마치 그것은 폐허 위에 서 있는 하나의 거대한 공동묘지처럼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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