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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6 15:07 (금)
155. 비곗덩어리(1880)-성당의 종소리 듣고 싶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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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비곗덩어리(1880)-성당의 종소리 듣고 싶을 때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2.02.15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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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명사 ‘비곗덩어리’를 발음할 때는 ‘비계떵어리’로 한다.

어쨌든 여기 나오는 ‘비계떵어리’는 안주로 먹는 삼겹살에 붙은 그 비곗 덩이가 아니라 사람이기에 애초 이름이 있었다.

그러나 작가는 이름 대신 ‘비계떵어리’로 부른다. (그러니 듣기 언짢은 독자분이 있다면 정중하게 양해를 부탁드린다.)

실제로도 뚱뚱하거니와 천대하는 듯한 ‘비계떵어리’가 그녀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주인공 ‘비계떵어리’는 매춘부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나 나폴레옹 시대가 가고 새로운 공화주의가 나오기 전의 프랑스 그 시절 몸 파는 여자는 귀하기보다는 천했다.

직업도 그렇고 몸도 그러니 그녀에게 ‘비계떵어리’라고 부른들 누가 뭐라고 시비 걸 사람 없다. 그녀도 그 이상은 몰라도 그 정도는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 ‘비계떵어리’가 내로라하는 사람들과 한 마차에 탔다. 택시든 마차든 좁은 공간에 사람이 모여서 장거리로 어딘가로 떠난다면 자연히 이야기가 오가기 마련이다.

이야기 내용을 말하기 전에 마차에 탄 사람들의 면면을 잠깐 훑어 보자.

‘비계떵어리’ 말고도 9명이 더 타 합 10명이 6섯 마리 말이 끄는 마차에 올라탄 시간은 아직 여명이 밝기도 한 참 전인 새벽 3시 30분이다.

세상 눈을 피해 급히 서둘러 도망치고 있다는 말이다. (퇴각하는 프랑스 패잔병을 보고 그들은 가망이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살기 위해 조국 프랑스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숨어들기 위해 이렇게 서둘렀다.)

이들 가운데는 혁명가도 있다. 세상의 온갖 부조리에 참견하면서 자신은 고고한 한 마리 학 행세를 하는 혁명가의 이름을 따로 언급할 필요없다. ( 다른 사람도 이름을 밝히지 않겠다. 우리의 주인공이 ‘비계떵어리’로 불리는 판국이니 이해하시라.)

혁명가는 부모를 잘 만나 많은 돈을 물려받았으나 맥주 마시는 걸로 탕진했다. 그러고도 그런 행위조차 ‘혁명적 소비’라고 둘러댈 정도로 혁명을 입에 달고 산다.

돈이라면 <베니스의 상인> 못지 않게 탐하는 포도주 상인 부부가 있다. 상인은 얼마나 수완이 좋은지 점원이었다가 가게를 아예 인수했다.

이들 부부가 냉혹한 현실주의자로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할지 독자들은 충분히 예측 가능할 것이다.

공장을 3개나 가진 부르주아 공장주 부부 역시 노련한 인물이다. 부자이면서 훈장도 받고 한때 야당의 우두머리에 젊고 예쁜 부인을 자랑거리로 두고 있다.

노르망디의 유명한 백작 가문 출신은 지위가 높은 이들에게 요구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보다는 기회를 적절히 포착하는데 능한 인물이다.

늙은 수녀와 젊은 수녀는 신앙심이 돈독한데 이는 진짜로 그렇다고 할 수도 있으나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거나 모른 척하기 위해 기도라는 수단을 적절히 사용한다.

눈을 감고 기도하는 수녀에게 무엇을 요구하거나 도움을 청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각자 혁명을 위하고 돈을 벌고 종군 수녀의 역을 위해 전쟁에 패한 조국 프랑스를 버리고 여차하면 영국으로까지 도망칠 계획에 있다.

일은 순조로운 듯 보인다. 그러나 마차는 예정 시간에 예정된 장소에 도착하지 못한다. 미쳐 점심을 준비하지 못했던 그들은 그날 오후 3시까지 굶었다. 굶주리는 그들이 과연 인간의 품위를 지킬 수 있을까.

다행히 극한의 시간이 오기 전에 3일 치 식사를 챙겨온 ‘비계떵어리’가 푸짐한 상차림을 펼친다. 뚱뚱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안 까닭이다.

우습게 보고 깔보고 하찮게 대했던 ‘비계떵어리’의 음식을 탐해야 하는 순간이다. 고귀한 그들은 머뭇거리기보다는 눈치보지 않고 잘먹고 나서 배를 두드린다.

▲ 누가 과연 비곗덩어리인가, 독자들은 그것을 놓고 여주인공인지 아닌지를 토론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 누가 과연 비곗덩어리인가, 독자들은 그것을 놓고 여주인공인지 아닌지를 토론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한 그들은 여관을 배정받고 쉬면서 전쟁의 공포도 벗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내일 떠날 생각으로 기분이 들떠있다.

그런데 점령지의 프로이센 장교는 이들에게 떠나도 좋다는 허락을 내리지 않는다. 신분증 검사에서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다.

답답해 하던 이들은 여관주인이 ‘비계떵어리’에게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는지 독일 장교가 묻는다는 말의 뜻을 나중에 알고는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집중한다.

예쁜 백작 부인만이 독일 장교가 자신이 아닌 ‘비계떵어리’에게 한 수청 제안을 속으로 기분 나빠 했을 뿐 나머지는 하루빨리 그녀가 장교의 침실로 들어가기를 고대한다.

그러나 그녀는 비록 매춘부 직업을 갖고 있다고는 하나 적국의 장교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은 애국심에 반하는 나쁜 짓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비계떵어리’는 그 생각을 바꿀 생각이 없고 그래서 여관주인은 매일 그녀를 찾아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는지를 확인했던 것이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비계떵어리’가 생각을 바꿀지 합심한다. 바꾸지 않으면 바꾸려고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한시 급히 여기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인공 ‘비계떵어리’는 과연 이들의 위협과 협박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애초 생각을 끝까지 지켜 냈을까.

그러나 모파상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비난하지도 않고 그들이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행동했다는 사실만을 전달할 뿐이다.

: <비곗덩어리>는 삼겹살의 그 비계 뭉치외에도 매우 추잡스러운 사람을 속되게 부르는 말이다. 저만 아는 이기주의자, 파렴치한 자, 위선과 혐오에 찌든 자에게 어울리는 단어다.

그러면 우리의 주인공 ‘비계떵어리’가 정말로 추잡한 비곗덩어리인가, 아니면 혁명가와 백작과 부르조아아 진짜 비곗덩어리인가.

책 읽기를 주저하는 게으른 독자들에게 본문에서 끝내지 못한 질문에 대한 답을 적어보자.

어쨌든 이 연재물은 친절함을 최대로 포장하고 있으니 스포일러 쯤이야 간단히 무시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는 점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비곗덩어리가 독일군의 침실을 찾은 것은 사실이다. 제발로 걸어가 자발적 매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독일군 보다 일행의 협박과 위협과 조롱과 책임 전가가 있었기에 그녀의 발걸음은 타의에 의한 강요하고 할 수 있다.

그 장면은 매우 드라마틱해 단편보다는 훨씬 길고 중편보다는 조금 짧다고 할 수 있는 <비곗덩어리>의 백미에 해당한다.

웃다가도 슬퍼서 조금 울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모파상의 탁월한 인간 심리묘사가 수려한 문장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거나 ‘비계떵어리’가 남자를 가릴 처지냐고 따지거나 성당을 막 다녀와서 '그러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몰아붙이는 수녀들의 대담한 선동 장면에서는 몸이 오싹 달아 오른다.

그러나 모른 척하고 외면하고 있다가 일이 끝나고 떠나는 마차 안에서 ‘비계떵어리’의 그 행동이 마치 애국인 것처럼 애국가를 부르는 혁명가의 휘파람 소리가 더 그로테스크하다.

누가 더 나쁜 인간인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비계떵어리’가 느꼈을 상류층의 그 뻔뻔함, 그 무자비함, 그 위선이 가면을 벗은 맨 얼굴에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이 모든 것을 덮어줄 성당의 은은한 종소리가 갑자기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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