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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5-04 06:13 (토)
이화의대 권복규 “의대 정원 확대, 학습생태계 파괴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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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의대 권복규 “의대 정원 확대, 학습생태계 파괴할 것”
  •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 승인 2024.04.26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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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회 뉴스레터 기고..."의학교육, 전체 의료시스템과 직결"

[의약뉴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이 의과대학에 구축된 학습생태계를 순식간에 파괴해 의사 수준의 질적 저하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화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권복규 교수는 최근 ‘대한의학회 뉴스레터’에 ‘의대 증원이 의학교육에 미칠 영향’이라는 기고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 권복규 교수.
▲ 권복규 교수.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계획에 따르면 현재 3058명 규모의 의대생은 내년부터 5058명으로 70% 가까이 늘어나게 된다.

이 가운데 권 교수는 “현시점에서 우리나라 의학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믿는 의학교육자는 거의 없다”며 “기초의학 교수의 정원은 적정 수에 현저히 미달하고 있으며, 조교 등 지원인력조차 충분히 지원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카데바의 기증은 학교마다 매우 큰 편차를 보이고 있고, 실험실습 시설과 장비의 수준도 천차만별”이라며 “게다가 대학 등록금은 10년 이상 동결돼 이러한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기 위한 재원은 크게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임상에서 실습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문제”라며 “임상 교수진의 격무에 기인하는데, 거의 모든 의대에서 진료와 연구에 치어 제대로 된 학생 교육을 하기 어렵고 환자의 권리 의식이 높아지면서 학생이 직접 진료에 참여하거나 관찰하는 데 대한 거부감도 점점 커지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2000명이란 정원이 늘어나면 의대 내에선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 권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학교에 따라서는 정원이 49명에서 200명으로 무려 4배 이상 증가하는 곳도 있다”며 “적시에 예산 지원을 한다면 아마 강의실과 실습실 공간은 마련할 수 있겠지만 이를 운용할 인력은 하루아침에 구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 이유로 “교육에는 교수뿐 아니라 각종 해부기사 등 보조인력이 필요하고, 시뮬레이션센터와 같은 실습 시설을 운영하려면 훈련된 인력이 필요하다”면서 “강의실이나 실험실습 장비와 달리 인력은 교육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며, 한번 채용하면 쉽게 해고하기도 어려워 인건비는 고스란히 학교의 교육 예산에 전가되고, 만약 정원이 줄어들기라도 하면 이는 학교에 부담으로 남는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교육이란 초기 투자 비용뿐 아니라 유지관리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며 “정원 증가로 인한 실험실습 장비들은 유지관리와 교체가 필요하고, 그 예산도 적지 않아 의대 등록금만으로 이러한 예산을 마련하기 충분치 않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더 큰 문제는 임상실습으로, 예컨대 정원이 200명으로 편제된 의대에서 본과 3학년과 4학년이 실습을 나간다고 하면 실습 병원은 최소 400명의 학생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학생 400명의 수용을 위해서는 병원 규모가 최소 1000병상은 훌쩍 넘어야 할 것이며, 임상 교수 숫자도 그만큼 늘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나마 “해당 지역 주민들은 지역에 상급 종합병원이 생겼다고 환영할지 모르지만 1000병상의 상급 종합병원을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배후 인구가 100만 명은 돼야 한다”며 “그 지역 인구 모두가 다른 지역으로 가지 않고 그 병원에만 온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오히려 "교육병원의 유지를 위해 경증 환자를 놓고 지역의 1차, 2차 의료기관과 경쟁해야 한다면 이는 해당 지역 의료 생태계가 초토화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그렇지 않다면 그 병원은 만성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그 정도 상급종합병원의 교수들은 해당 분야의 세부 전문가일텐데 그만큼의 환자 풀을 유지하지 못하는 지역에서 본인의 전문성을 유지할 수도 없다”면서 “해당 기관에 근무하는 의사들은 어떤 형태로든 ‘교원’으로 임용해야한다는 행정적인 어려움에 더해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라 별도의 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이에 대한 시간적, 금전적 보상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열악한 현재의 교육 환경에도 불구하고 배출되는 의사들의 질이 그럭저럭 유지된 것은 의학에 입문하는 자원의 질이 우수했고, 학생들이 의과대학이라는 학습생태계 내에서 생존하고 의학을 습득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정원의 몇 배를 늘리는 것은 학습생태계를 파괴하고 교란시킨다”며 “각자에게서 동질감을 확인하고 의사로서의 정체성을 발달하는 일은 이러한 급조된 환경 속에서는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또한 “현재의 전공의 TO는 수련기관의 교육/수련 역량이나 수련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고, 전공의를 피교육자가 아닌 저렴한 인력으로 보는 시각도 문제”라며 “이런 상황에 5000명에 달하는 신규 전공의가 매년 배출되면 제대로 된 수련을 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공공의료시스템을 채택한 몇몇 나라들에서처럼 1~2년간의 기본임상수련을 받게 한 다음 일반의로 일하게 할 수 없다면 제대로 된 전문의 수련은 참으로 어려워진다”고 부연했다.

이에 권 교수는 “의대 정원 증원이 필요해도, 모든 요소를 신중히 살펴보고 현재 의료와 교육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로 국한해야 한다"면서 "의학교육은 전체 의료시스템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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