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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7 06:51 (토)
가이드 호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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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 호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기록하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2.04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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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져보니 정확히 43년 만이었다. 올해가 2033년이니. 추운 겨울이었다. 실내 자전거로 늘어나는 뱃살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그가 핸드폰의 한 가운데서 웃고 있었다.

자세해 봐도 그였다. 전문 산악 여행사의 가이드 겸 대표로 히말라야를 소개하고 있었다. 발을 구르면서 라다크를 구경하면서 링크를 몇 번 따라가다 멈춰 섰던 곳에 무테 안경을 쓴 곽병장의 엷은 미소가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몰랐다. 하도 오래라 얼굴 형태도 변해 있었고 머리도 제법 셋으니. 긴가민가했으나 틀림없었다. 놀랍고 반가웠으나 바로 연락을 바로 하지는 않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그와 태수 사이가 대단한 관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주 별로는 아니었고 수개월 정도 그럭저럭 지낸 사이였다. 입대 동기는 아니었다. 어느 날 그가 전입해 왔는데 계급장이 태수와 같은 병장이었다.

군대에서 맺은 관계가 다 그렇지않느냐고 생각하는 일반적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둘은 일주일 간격을 두고 군복을 벗었다. 그리고는 까맣게 잊었다. 그런 얼굴을 보았다고 무슨 감회가 새로울 수 없다. 그러나 오래 살고 보면 지난 과거는 인연처럼 그리울 때가 있다.

잠시 망설이던 태수는 기왕이면 사촌 떡 팔아 준다는 심정으로 그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러기 전에 태수는 약간의 소개가 필요할 듯싶어 문자로 대략 자신이 누구이고 현재 어떤 처지 인지 알렸다.

수십 년 만에 갑자기 나타나서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치고 온전한 사람이 없다는 선입견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13년 만에 나타나 아는체하면서 수술비를 대 달라고 사정하는 놀라운 경험을 태수도 한 적이 있었다.

간단한 소개 덕분이었는지 그도 태수처럼 반가움 때문인지 바로 전화를 걸어 왔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시작됐다. 몇 번의 전화가 이어지고 곽병장과 태수가 신도림역 1번 출구앞 광장에서 만난 것이 2033년 1월이었다. 광장을 가로질러 다니던 출근길에서 그를 만난 태수는 근처에 있는 백화점 3층의 전문 커피숍으로 이동했다.

그날 이후 곽병장과 태수는 보름에 한 번꼴로 얼굴을 마주했다. 한마디로 통했다고나 할까. 서로 이렇게 맞는데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던 것처럼 만나면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이 계속 유지됐다. 그럴 때면 만날 사람은 만난다는 어떤 유행가 가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수다를 떨다 보니 제대 후 그가 했던 일들이, 제대 후 직업이 자연히 드러났다. 그는 십여 개가 넘는 직업을 가졌고 출가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가 새로운 일을 이야기할 때면 태수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도 놀라운 직업이 많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염을 무려 팔년 간 하기도 했고 국과수 보조원으로 삼 년을 일하기도 했다. 태수는 그를 통해 그가 세상의 모든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지경에 이르렀다. 단순 이야기가 아니라 가는 길을 손가락으로 정확히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가이드 호라는 별칭을 붙였다. 처음에는 그와의 대화를 기록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그러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이 입을 피해가 막심할 거라는 돈키호테와 같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해 3월부터 태수는 그의 말들을 기억해 적기 시작했다. 책을 쓰기로 작정한 것이다. 출판은 처음 하는 것이라 힘들었다.

‘뭐든 처음은 그래.’

위로인지 독려인지 모를 곽병장의 말을 벗 삼아 태수는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나온 결과물이 이것이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가이드 호는 곽병호의 호자를 딴 것이다. 참고로 이 이야기는 기록뿐만 아니라 녹음기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적고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어느 날 태수는 슬그머니 핸드폰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곽병장은 그러는 태수를 보고 우리 나이 때는 잘 잊어버려, 기계의 힘을 빌려야지, 하고 거들어서 그를 만나면 자연히 핸드폰을 옆에 꺼내 두는 것이 습관이 됐다.

쓰기에 속도가 붙은 것은 바로 이 녹음 덕분이다. 덧붙일 것이 거의 없어 책이 나오는 시점은 타자기 속도에 비례했다. 간혹 살을 붙인 것은 독자의 이해를 구하기 위한 것이지 내 의견을 넣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온전히 가이호드 의 것이다.

이 점을 내가 분명히 밝히는 것은 혹시 모를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조그만 공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온전히 가이드 호에게 돌리기 위함이다.

아무쪼록 근심과 걱정에 쌓인 독자들은 가이드 호의 안내에 따라 그것을 순식간에 해결하기 바란다. 그것이 가이드 호의 바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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