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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2-12-01 16:50 (목)
희미한 가로등과 초롱불 사이로 환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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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가로등과 초롱불 사이로 환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12.09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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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달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뱀 장수는 한 번도 자루 속의 뱀을 꺼내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 뱀에 없어서인지 있어도 꺼내 봤자 장사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곧 꺼내 보일 듯이 자루 쪽으로 눈길을 주거나 들었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하는 동안 행인들은 지쳐서 자리를 떴다.

그러면 새로운 사람들이 그 빈자리를 채웠고 뱀 장수는 여전히 자루를 들었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패턴은 일정했고 결론은 없었다. 그런데도 성일은 일부러 그 옆으로 지나가다 멈췄다. 그렇지만 처음처럼 오랫동안 지켜서서 보지는 않았다.

잠깐 섰다가 가는 정도였다. 유리병 속의 뱀의 크기가 달라졌거나 색깔이 다른 뱀이 들어왔을 때였다.

성일은 시골에서 숱하게 봤던 뱀과는 다른 뱀이 오면 일단 호기심을 보였다. 대개는 컸다. 시골의 뱀은 작았고 유리병 속의 뱀은 컸고 길었다. 몸통이 팔뚝만했고 감은 몸이 여러 겹이었다.

성일은 장사꾼의 말보다는 유리병 속의 뱀 움직임을 보는 것에 집중했다.

뻔한 이야기는 이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하는 말이 세게 들려올 때는 눈을 들어 뱀 장수를 봤고 그러면 몸을 돌렸다. 그 때 뱀 장수의 눈은 뱀눈처럼 작고 가늘고 초점이 없었다.

뱀 장수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은 바로 그 애들은 가라 였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목소리와 억양을 흉내 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만큼 각인된 것이다. 애들이 없는 곳에서 어른들만을 상대로 장사를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으나 애들이 없는 곳에서 장사는 잘됐는지 어쨌는지는 모른다.

애들과는 상관없는 어른들만의 은밀한 그 무엇을 사는 어른들은 흔치 않았다. 성일처럼 대개는 구경꾼들이었다.

진열해 놓은 이상한 곽에 든 약을 사는 사람이나 대병에 들어 있는 웅크린 뱀술을 사는 사람도 보지 못했다.

낮의 풍경은 대개 이런 것이었고 그런 되풀이 되는 일상에도 걷는 길은 언제나 흥미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에 성일은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아마도 감기에 걸렸는지 무슨 일인지 저녁에 밖에 나온 성일은 대로변의 한구석에서 작은 초롱불을 발견했다.

리어카에 쌓인 책들이 희미하게 빛을 받아 실체를 조금 드러냈는데 낮에 본 책들과는 다른 것이었다. 무엇이든 처음 보는 것에는 과님을 갖고 있던 성일은 주춤주춤 옆으로 다가갔다.

안 보이던 주인인 듯한 남자가 어디선가 갑자기 뛰어나와 성일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팔꿈치로 옆구리를 가볍게 치는가 싶더니 빨간책 찾지? 하고 물었다.

작고 빠른 소리였다. 확신에 찬 목소리는 그것 때문에 기웃거리고 있다는 것을 다 안다는 투였다.

머뭇거리자 그는 성일을 데리고 책 옆으로 잡아끌더니 책장을 펼쳐서 그 안의 것을 확인해 주었다. 희미한 가로등과 초롱불 사이로 환한 것이 시야를 확 밝혔다.

느닷없이 불빛 세례를 받은 동공이 커졌고 커진 눈으로 본 것은 젊은 여자의 나체였다.

성일은 아닌데요, 라고 말을 하고는 곧 그 자리를 벗어나났다. 심하게 뛰던 가슴이 진정된 것은 방에 들어와서 였다. 누워서 빈둥거리던 형이 너 왜그 러니? 고 물었으나 성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것에 대해 성일은 감춰야 할 무엇이나 되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그 후로 한동안 성일은 그 장면이 눈에 가물거려 간혹 혼미한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러나 책을 산다거나 다시 가서 자세히 보고 싶은 용기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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