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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는 쌀을 팔아 송아지 한 마리를 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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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는 쌀을 팔아 송아지 한 마리를 사왔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6.18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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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만큼 했다는 판단이 들었다. 노잣돈으로 부족하지 않았다.

지난달에 있었던 이웃 마을에서 머슴을 살던 김삼돌이 나갈 때는 단 한 번 만 쉬었을 뿐이었다. 그때도 노잣돈을 채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여 줄 하나가 풀려서 그것을 매기 위해서였다.

누울 자리를 보고 눕는다고 형편을 보면서 상여꾼들은 행동했다. 말하지 않아도 그들은 망자의 생전 지위와 후손의 가치를 가늠해 보고 어느 정도 선까지 해야 할지를 판단했다.

대개는 그 선을 넘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들은 지켜야 할 선을 엇비슷하게 지켰다. 김삼돌의 부족분을 벌충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꾼들은 다 이런 심사 때문에 가다 서고, 가다 서고를 반복했던 것이다.

부자는 아니어도 굶지는 않는 정태의 살림살이를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앞 들판의 닷 마지기 논이 그의 것이었다. 그 들판의 곡식이 올해도 풍년을 기약하고 있다. 그 돈은 장례를 치르고도 넉넉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상여꾼들은 다 알아챘다.

그러니 두 세 시간 상여를 맸어도 걷는 걸음이 가뿐했다. 일이 끝나면 그들은 줄에 매단 돈으로 장터에 나가 거나하게 한 잔 술을 걸칠 수 있다. 그런 기대로 그들의 얼굴은 굳어있지 않았다.

더구나 망자도 호상이다. 수년 내 인근에서 팔 십까지 산 노인이 없었다. 그들은 이제 쉬지 않고 산까지 갈 참이다.

해는 중천을 조금 비켜섰다. 돼지 간으로 요기를 했다고 하나 배고픈 것은 어쩔 수 없다. 묵은지가 들어간 비계에 밥을 말아 먹으면 원 없이 먹었다고 배를 두드릴 수 있다.

상여꾼 뿐만아니라 상주를 따라다니는 아이들까지 그런 생각에 군침을 흘렸다.

그렇다고 그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일정한 보폭으로 곡소리에 장단을 맞춰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상여는 허둥대서는 안 된다. 망자를 태운 가마는 품위를 지켜야 한다. 그것이 산 자들이 죽은 자에 대한 예의였다.

지금 이길이 이승의 마지막 길이다. 더는 되돌아올 수 없다. 그들은 모두 할머니와 안면이 있었다. 어떤 상여꾼은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얻어먹기도 했다.

행렬이 지나가는 왼편으로 넓은 들판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논 치고는 제법 반듯했다. 일제가 만들어 놓은 경작지라서가 아니라 원래부터 넓은 들이었다.

그래서 이런 논 한 다랑이라도 있으면 부자 축에 들었다. 굶어 죽지 않고 남의 돈 빌리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광산 김씨는 생전에 자식이 그런 논 닷마지기를 장만하는 것을 보았다. 평생 앞들에 우리 논이 있으면 원이 없겠다는 소원은 이뤄졌다.

할머니가 죽기 전 한 해 전부터 성일네는 보리밥을 먹지 않았다. 닷 마지기 논은 열 식구라도 충분히 먹고도 남았다.

할머니는 흰 쌀밥을 받을 때마다 쌀밥이다, 많이 먹어 하고 성일에게 큰 숟가락으로 하나를 가득 퍼서 성일의 밥에 올려놓았다.

추수를 하기 전인데도 광에는 쌀이 여러 가마 남아 있었다. 할머니가 누워 오늘 낼 하는 어느 날 정태는 그 쌀을 팔아 송아지 한 마리를 사왔다.

그리고는 방에 들어가 어머니, 송아지 샀시유. 들리지유. 음메 하고 우는 소리유. 우리도 이제 소를 키우는 집이 됐슈.

정태는 자랑했다. 자리에 누운 할머니가 그 소리를 알아들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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