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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다이하드(1988)-죽지 않고 사는 게 제일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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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다이하드(1988)-죽지 않고 사는 게 제일 쉬웠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05.19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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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제일 쉽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누구나 제일 쉬운 것이 있기 마련이다. 뉴욕 경찰 존 매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은 죽지 않고 사는 것이 제일 쉽다.

바로 앞에서 기관단총을 난사해도 살아난다. 높은 건물에서 떨어져도 살아남고 죽을 때까지 맞아도 죽지 않고 살아난다.

폭탄이 쏟아져도 자욱한 연기를 뚫고 끝내 살아서 걸어온다. 그에게 죽는 것은 너무 어렵고 사는 것은 너무 쉽다.

존 맥티어넌 감독은 <다이하드>에서 인간 존을 신의 경지로 끌어 올리는데 성공했다.

존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물불 가리지 않고 덤벼든다. 총을 든 적 앞에서 농담도 지껄인다. 이래도 죽지 않는 불사신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무리 영화라 해도 그렇지, 라고 비웃는 관객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럴 필요 없다.

주인공은 불의에 맞서는 정의로운 자이기 때문이다. 정의 앞에서 주인공을 살리고 불의를 일삼는 악당을 죽이는 일은 일도 아니다.

성탄절 이브다. 다 같이 즐기고 웃고 감사하면서 떠드는 날이다. 비극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 이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다. 최고로 즐거울 때 최고로 비극적이어야 한다.

▲ 어떤 영화든 주인공의 활약은 눈부시지만 부르스 윌리스의 반경은 다른 어떤 주인공보다도 넓고 크다.
▲ 어떤 영화든 주인공의 활약은 눈부시지만 부르스 윌리스의 반경은 다른 어떤 주인공보다도 넓고 크다.

무슨 일이 터져야 한다면 바로 이때다.

오랜만에 존은 일본계 회사의 간부로 일하는 아내를 만나러 간다.

강력계 경찰이라는 직업이 아내 곁에 늘 붙어 있을 수는 없다. 아내도 이를 모를리 없다. 그래도 이런 날조차 대면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한눈을 팔거나 딴짓을 할 수 있다.

경찰의 촉은 사건 현장의 분위기 파악에만 능숙한 건 아니다. 아내는 서서히 그의 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마음 한구석은 그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심지로 굳어졌다. 이런 아내의 변신에 존도 의구심을 품는다.

떨어져 있으면 사랑도 식어가기 마련이라고 해도 엄연히 임자가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눈짓을 보내는 걸 존은 다른 남편들처럼 용서하기 어렵다.

눈으로 본 것은 아니지만 여차하면 내지를 참이다. 꼬리를 잡힌 아내가 당신 없이 쓸쓸했어요 라고 변명을 해도 내버려 둘 수 없다.

존이 누구인가. 둘째가라면 서러운 마초 기질이 넘쳐나는 화끈하고 근육질 투성이 남자 아닌가. 기름에 불을 지를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일본인 동료의 추파를 즐기고 있다. 당장 풍덩 빠져들어도 이상할 게 없다. 미스라고 거짓말을 하지는 않지만 처녀로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굴뚝같다.

마음껏 자유연애도 하고 아낌없이 주려고 하는 동료의 사랑을 받고 싶다. 남편 성 대신 처녀적 성을 쓰는 것은 이런 속내를 감추지 않고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국식으로 따지면 무리한 설정이 아니다. 목석이 아닌 그가 이런 혼란한 감정을 가지고 아내 있는 곳으로 향한다.

더 늦으면 이자를 감당할 수 없고 파산이다. 그래서 오늘 성탄절 만은 만사 제쳐 놓았다.

높은 건물로 존은 들어간다. 악당 일행은 이미 잠입을 완료한 상태다. 그들은 파티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보스를 납치해 금고의 비밀번호를 알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인은 책임자는 끝내 거부한다.

진주만을 박살내고 워크맨으로 미국을 덮어버린 자부심이 대단하다. 한낱 미국 갱의 말을 들을 수 없다.

그러나 한스(알락 릭맨)의 총 앞에서는 무력하다. 조용히 진행되던 일처리는 존의 등장으로 외부로 알려지고 악당들은 30여 명의 인질을 미끼로 옥상 탈출을 시도한다.

여기서 줄거리를 줄줄 나열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앞서 쓸데 없는 썰을 많이 풀었으니 이쯤해서 멈추어도 될듯 싶다. <다이하드>를 본 사람이든 안 본 사람이든 피가 난무하는 영화라는 것쯤은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언제나 친절한 영화평이니 결론만은 말해야겠다. 악당들의 계획은 실패로 끝난다. 앞서 정의를 애기 했으니 불의가 승리할 건덕지는 애초에 없었다.

아내와는 화해했느냐고. 가족 사진이 담긴 액자를 내팽개쳤던 아내는 눈물 글썽이며 남편의 품에 달려든다.

이 영화는 비평과 흥행에서 모두 성공했다. 이후 숱한 시리즈가 쏟아져 나온 것은 다들 아는 바와 같다.

국가: 미국

감독: 존 맥티어넌

출연: 부르스 윌리스, 알락 릭맨

평점:

: 볼거리가 화려하다. 베트남 전쟁의 기분을 내려던 헬기 추락도 그렇다.

장면이 하도 놀라워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는 안타까움은 일지 않는다.

불기둥이 솟는 옥상의 장면은 또 어떤가. 대단한 화력이 건물을 집어삼킬 때 사람들은 분노보다는 그 위력에 입을 다물 수 없다.

공중에서 발사한 포탄이 지상의 차량에 명중할 때 과연 영화의 재미는 어디까지 인가, 하는 의문이 저절로 든다.

부처님의 자비를 기대할 수 없는 냉혈한들의 최후는 화룡점정이다. 이 모든 것은 존 웨인과 람보가 울고 갈 만한 브루스 윌리스의 활약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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