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1-01-20 17:59 (수)
359. 하나 그리고 둘(2000)- 생의 한 가운데서 품위를 지키다
상태바
359. 하나 그리고 둘(2000)- 생의 한 가운데서 품위를 지키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01.08 14: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잘 만든 영화가 반드시 좋은 영화는 아니다. 여기서 좋다는 의미는 교훈적이거나 사회나 개인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한 결과다. 그래서 잘 만든 영화라고 해도 추천을 꺼리는 수가 있다.

그 사람을 온전히 알지 못하는데 내 기준으로 잘 만들었다고 무턱대고 추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잘 만들기도 했거니와 좋은 영화인 경우는 관심 있는 사람이 물으면 그 영화라면 보라고 권하게 된다.

메시지가 분명하지 않아도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시간 투자를 아까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만든 대만의 명감독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의 서두가 길었다. 긴 만큼 할 얘기도 많지만 글로 읽기보다는 직접 보는 것이 속된말로 ‘개이득’이다.

그러니 글을 다 읽었다면 뜸 들일 것 없이 바로 봐야 한다. 손해 보는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처럼 영화 한 편 보고 인생이 바뀌지야 않겠지만 작은 변화 정도는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시작은 즐겁다. 결혼식 장면이기 때문이다. 일가친척이나 친구들이 모인다.

아빠(오염진)는 처남의 결혼식이니 당연히 참석한다. 여고생 딸 팅팅( 켈리)과 어린 아들 양양(조나단 창)도 외삼촌이니 축하객들 사이에 끼어있다.

순조로운 결혼식은 처남의 옛 애인이 소란을 피우면서 한바탕 아수라장이 되지만 그렇다고 파혼은 아니다. 결혼과 관련된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고 우선 회사의 중역역인 아버지부터 시작해 보자.

회사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그 아버지는 일본인과 협상을 벌인다. 상대가 대만으로 왔으니 이번에는 도쿄로 출장을 간다. 그 전에 아빠의 옛 애인을 만나 소식을 듣는다. 둘은 재회한다.

첫사랑을 낯선 타국에서 만났으니 그 감정은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여자는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았던 남자를 타박한다.

남자는 자신을 여자의 의도대로 끌고가는 인생에 불만이었다고 실토한다. 남의 인생에 간섭하고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에 단호한 입장이다. ( 그러나 지금 하는 일은 여자가 원했던 것이라니 아이러니다.)

▲ 파도없이 시종 일관 잔잔한 연기를 펼치는 팅팅이 할머니 무릎에 기대 있다. 할머니의 역은 비중이 없으나 영화가 말하려는 중심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 파도없이 시종 일관 잔잔한 연기를 펼치는 팅팅이 할머니 무릎에 기대 있다. 할머니의 역은 비중이 없으나 영화가 말하려는 중심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저녁이다. 둘은 각자 방을 얻는다. 여자는 남자가 함께 해 주기를 간절히 원하나 남자는 적당한 선에서 여자를 떼어 놓는다.

홀로 호텔방에 있는 여자는 흐느낀다. 도쿄 타워를 배경으로 처연한 울음이 한동안 지속된다.

이제 여고생 딸로 돌아가 보자. 딸은 싸우고 서먹한 관계인 친구의 남친과 잘되도록 편지를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다 그 남친과 사귀는 사이가 되고 이래도 되는 것인지 고민이 쌓여 간다. 그즈음 쓰러진 할머니는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재택 간호를 식구들이 도맡아 하는데 그녀는 자신 때문에 할머니가 그렇게 됐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제 8살 아들로 돌아가 보자. 녀석은 호기심이 왕성하다. 카메라로 무언가를 찍는데 사람의 뒤통수다. 보지 못하는 곳을 찍는다는 이유를 대니 입이 쩍 벌어진다.

마치 김기영 감독이 만든 <하녀>에 출연했던 안성기의 어릴 적 모습을 보는 것처럼 능수능란한 표정 연기가 대단하다.

어리지만 어리지 않는 그 천진함 속에 들어있는 무거움이 어른들을 쪼그라들게 만든다.

정신없이 영화에 빠져들다 보면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영화가 끝났을 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장면 하나하나가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명장면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결혼식은 탄생이다. 탄생으로 시작한 영화는 할머니의 죽음으로 끝난다. 그러나 남은 자들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빠의 뒷일이 궁금한가. 밤새 뒤척였던 삼십 년 전 그녀는 아침에 데리러 온다는 남자의 말을 듣기보다는 훌쩍 떠난다.

아무런 메시지도 남기지 않았다. 체크아웃했다는 호텔 종업원의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한 남자의 표정에서 남아 있었더라면 부인과 이혼하고 그녀의 말마따나 새 출발의 기운을 느꼈을까.

딸은 텔레비전 뉴스를 듣다가 호감을 보였던 남자가 살인사건의 주범이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대상은 학교 선생인데 그 선생은 자신의 여친과 그 여친의 모친과도 치정 관계를 맺고 있었다면 그 남자가 띵띵에게 잠시 한눈을 팔았던 이유로 설명이 가능할까.

사람의 뒷모습을 찍으며 철학의 세계에 빠져든 아들은 짝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수영장에 빠지는 등 남녀의 세계에도 일찍 눈을 뜨고 있다.

이처럼 이 영화는 할머니, 아버지와 딸, 아들 삼대에 걸친 인생 이야기다.

처남과 처남댁, 회사 친구와 학교 동기 등 여러명의 인물들이 화려한 입담과 연기를 과시하는 조연으로 나와 볼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국가: 대만, 일본

감독: 에드워드 양

출연: 오념진, 켈리, 조나단 창

평점:

: 앞서 추천할 만한 영화와 그렇지 않은 잘 만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글을 마치고 나서도 관점은 바뀌지 않았다.

힘들고 지친 누군가가 추천해 주고 싶은 영화를 묻는다면 가볍게 권하는 수준을 넘어 꼭 보라고 말하고 싶다.

얽히고 설켰지만 난잡하지 않고 지켜야 할 선을 지키는데서 오는 인간적 고뇌의 리얼리티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생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면서 가져야 할 품위를 버리지 않았다. 대사와 장면이 아주 그럴싸해서 누구나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코로나 19로 어려운 시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 난관은 다른 모든 난관과 마찬가지로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그 기간은 길고 복잡하고 후유증은 남다를 것이다.

이겨내기 위해 맷집을 키우고 내면을 단련시키는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이 같은 좋은 영화를 보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