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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 아메리칸 뷰티(1999)-겉과 다른 깊은 속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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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 아메리칸 뷰티(1999)-겉과 다른 깊은 속의 모습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11.25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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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아메리칸 뷰티는 어떤 모습일까. 그 모습은 하나로 고정되지 않고 여러 개로 쪼개져 있다.

쪼개진 것은 또 부분적으로 갈라져 어떤 것이 겉이고 속 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샘 멘데스 감독은 <아메리칸 뷰티>를 통해 미국 중산층의 겉과 속을 보여주고 있다.

겉과 다른 속은 어떤 모습일까. 레스터( 케빈 스페이시) 가족은 중산층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적어도 겉으로 봐서는 그렇다. 부인( 아네트 베닝, 배우자가 워렌 비티다)은 예쁘고 자상하고 내조적인 것처럼 보인다.

딸도 있다. 10대 딸은 그 또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막 성숙하고 있다. 몸은 이미 그렇고 정신은 그것을 따라가려고 발버둥 친다.

딸은 친구가 있다. 그 친구 역시 나무랄 데 없는 중산층 자녀로 이대로만 성장하면 속된말로 미래가 촉망받은 젊은 피다.

아버지는 딸의 친구에게 눈독을 들인다. 눈독 들인다는 표현이 경망스러우나 영화에서보다는 너무 점잖은 축에 든다. 노골적으로 어찌해 보려고 덤벼든다는 쪽에 가깝다.

42살인 그가 10대 딸의 친구에게 추파를 던지고 그런 아빠를 딸은 무시한다. 본받을 수 있는 아빠를 원하나 친구에게 축축한 시선을 보내며 넘보는 주제니 차라이 누가 죽여 줬으면 한다.

수시로 저주하면서 저질( 영화에서는 이런 장면들이 자주 나온다. 표현하기 뭐해 그저 저질이다는 정도로 순화시켜 본다) 아빠에 대한 분노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딸은 친구에게 "너에게는 집적거리는 남자 중 하나겠지만 나에게는 너무 창피한 아빠"라고 만나지 말 것을 말하나 친구는 친구의 말을 듣지 않고 되레 "너의 아빠는 귀여운 남자"라고 호감을 표시한다.

근육만 키우면 섹시한 남자야.

그 말을 들은 아빠는 벗을 때 죽이는 근육 맨이 되기 위해 열심히 운동하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는 관객들의 심사는 과연 뒤틀렸을까, 아니면 우스워하면서 배꼽을 잡았을까.

어쨌든 아빠와 딸의 관계는 정상과는 거리가 먼 쪽으로 자꾸 옮겨 간다. 서로가 점점 구제 불능의 상태로 빠져든다. 아빠와 딸을 살펴봤으니 이제 부인 쪽으로 넘어가자.

그 남편에 그 부인이라고 겉으로는 남편처럼 일상에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남자를 찾아 나선다.

적극적으로 대시하는데 전혀 두려움이나 죄책감이 없다. 다른 남자와 차 안에서 수작질하다 들켜도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식이다.

▲ 20년간 혼수 상태에 빠져 있다가 막 깨어난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아버지는 알고 있을까. 어메리칸 드림을 이룬 어메리칸 뷰티는 어떠해야 하는가. 인간은 그저 속물인가. 아니면 그것을 알고 나아가는 존재인가.
▲ 20년간 혼수 상태에 빠져 있다가 막 깨어난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아버지는 알고 있을까. 어메리칸 드림을 이룬 어메리칸 뷰티는 어떠해야 하는가. 인간은 그저 속물인가. 아니면 그것을 알고 나아가는 존재인가.

그래도 가정은 비 온 뒤의 물레방아처럼 그럭저럭 돌아가고 있다. 곧 멈추겠지만.

딸에게도 옆집 남자가 다가온다. 그는 비디오 카메라로 딸의 모습을 촬영한다. 사이코가 따로 없다. 딸은 그러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남자는 그러지 말라는 말을 한 귀로 듣고 계속 그런다.

딸의 친구는 물론 아버지는 그런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딸은 마음에 들어한다. 자연스럽게 만나고 어울린다. 한 술 더 떠 유방확대술을 위해 모아 둔 돈을 아버지를 죽이는데 쓰자고 수작을 부린다. 엇박자도 이런 엇박자가 따로 없다.

딸의 친구 역시 딸이 그렇게 싫어하건만 친구의 아빠에 연정을 키워간다. 소극적인 행동이 아닌 적극적으로 들이미는데 아버지는 기회를 잡기 위해 안달이다.

무언가 무시무시한 일이 터질 것만 같다. 그렇지 않으면 이게 어디 영화인가. 결론을 미리 알려주면 과연 일은 일어나고 비극의 주인공은 아버지가 된다.

한편 딸의 남자 친구 그러니까 카메라맨의 아버지는 게이다. 그는 딸의 아버지와 파트너로 지내고 싶어한다. 말끝마다 해병대 대령임을 내세우면서 강한 남자 이미지를 내보인다.

촬영하는 아들이 옆집 딸과 놀아나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한다. 얼굴이 붓고 코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힐 정도로 주먹질이 대단하다.

그러나 한 꺼풀 벗기면 연약한 내면이 숨어 있다. 아들과 딸의 아버지가 연인 관계인 것을 오해한다. 아들에 대한 질투심이 인다.

비가 억수로 쏟아 지는 어느 날 밤 해병대 대령은 아버지를 찾는다. 그에게 키스하나 아버지는 그런 마음이 전혀 없다. 자존심을 상한 그가 어떤 일을 벌일지 일단 상상에 맡겨보자.

인생에는 규칙이 있다면서 아들의 잘못에는 가차 없는 주먹을 날리는 그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하고야 만다.

그런 해병대 대령에게 아버지가 걸려 들고 만 것이다. 아버지가 처음 등장하면서 나레이션으로 말한 1년 후면 죽는다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한다.

이것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아메리칸 뷰티의 참 모습인가. 그것은 관객의 각자 판단에 맡기자. 그런데 마지막은 좀 애잔하다.

죽음의 순간, 아니 죽은 후에 아버지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 대해 반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해 보이고 행복해 보이는 가정의 내면에는 이처럼 각기 다른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다. 아닌척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경우가 있다.

우리 가정은 어떤가, 반성은 아니더라도 되돌아볼 수 있다면 영화가 주는 메시지와 어울리지 않아도 소정의 목적은 이룬 셈이다.

국가: 미국

감독: 셈 멘데스

출연: 케빈 스체이시, 아네트 베닝

평점:

: 웃으면서 보다가 감추고 싶어지다가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감독이 의도했는지 그러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는지 하여튼 끝나고 나서 뒷맛이 떨떠름한 것은 들키고 싶지 않은 개인의 욕망을 누군가가 알았기 때문이다.

깔끔하지 않고 지저분하고 메스꺼운 것이 마음 한구석을 찜찜하게 만든다. 그러라고 만든 영화인지는 모르나 보고 나서 어떤 카타르시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말초적 욕망에 초점을 맞추고 아닌 척하면서 실제로는 그것 이상의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니 영화 속 인간이란 존재는 얼마나 허접한가.

거대한 욕망 뒤에 감춰진 가식적 웃음은 또 얼마나 비굴한가. 그것이 인간인 것은 인간이란 원래 그런 역겨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딸이 싫어하는데 딸의 친구는 좋아하고 아버지는 싫어하는데 딸은 촬영하는 남자를 좋아한다. 해병대 대령은 아들을 싫어하는데 딸은 그런 아들과 미지의 세계로 도주를 모의한다.

과연 가족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인가.

사족: 아빠는 결정적인 순간이 왔는데, 어인 일인지 참고 그것을 하지 않는다. 참 다행이다 싶은 장면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영화는 막장의 끝판왕이 될 뻔했다. 비록 어둡고 무섭고 차갑지만 블랙 코미디로 봐줄 만한 이유다.

샘 멘데스 감독은 연극연출을 하다 처음 영화에 도전해 이런 의미 심장한 영화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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