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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3-19 18:50 (화)
표충사 여행은 전쟁이 터지자 한없이 미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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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 여행은 전쟁이 터지자 한없이 미뤄졌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11.09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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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입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숲과 큰 나무들이 마치 호위병처럼 주변을 둘러치고 있었다.

부끄러움 많은 장교가 사열을 받을 때 느끼는 것처럼 어디라도 숨고 싶었다. 가운데가 아닌 구석이라면 좋을 것이다.

마주쳐 오는 인파가 없어도 갈수록 커지는 붉고 굵은 소나무 둥치들이 그러라고 했다. 그것이 편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소대장은 그러려고 마음먹고는 길의 가운데를 벗어나 한쪽으로 걸었다. 그런 마음도 모르고 향숙이는 뭐가 그렇게 했는지 마냥 좋아했다.

얼굴 가득 생긴 웃음은 숲속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나무 사이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막힌 것을 뚫고 나온 듯이 빛은 땅에 부딪치면서 다시 위로 반사광을 쏘아 올렸다.

향숙이는 웃었고 재잘 거렸고 소대장은 그런 향숙이가 무르익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때 였다. 그에 비해 자신은 초라했다.

숨을 곳이나 찾고 있으니 무언가가 비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을 감당할 만한 내면의 부족이었다. 미래가 불안한 청년이 느끼는 감수성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후한 점수였다.

준비되지 않은 것에 대한 기습공격 같은 것이었다.

일주문을 통과하자 상수리 나무가 여기 저기 버티고 서서 검문하는 헌병처럼 가슴을 앞으로 내밀었다. 소나무와 상수리 나무 사이로 가을 바람이 불어왔다.

잎이 이 쪽으로 떨어져서는 저쪽으로 날아갔다. 절 마당에 들어서기 전에 왼편의 냇가에 앉은 까치 두 마리가 날아 올랐다.

반가운 손님이 오려나, 같은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 말은 지난 번에 한 번 써 먹은 경험이 있기에 소대장은 그 말 대신 지난 여름 폭우가 대단했지. 하고는 무안한 듯 또 앞장서 걸었다.

향숙이 팔짱을 끼려고 달려왔다.

뭐가 그리 급해.

그녀는 물었다기 보다는 자문하듯이 말을 하고는 소대장의 발걸음에 보조를 맞췄다. 절 마당은 방금 비질을 했는지 이리 저리 쓸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흔적 위에 발자국 하나가 대웅전 쪽으로 사라졌는데 잠시 후 그곳에서 경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대장은 절 마당 한 가운데에 못 처럼 박혀 있었다.

그리고는 눈을 돌려 사방을 둘러 보고는 입을 쩍 벌렸다. 주변의 산들이 절을 에워싸고 있는데 마치 적들이 포위망을 좁혀 오는 것처럼 서서히 압박해 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것들은 포위망을 풀고 이제 안심하라는 듯이 뒤로 물러났다. 앞으로 다가 왔다가 뒤로 물러나기를 반복하는데 처음에 느꼈던 두려움은 어느 새 안도감으로 변해 있었다.

낮 달이 중천에 걸렸다. 산의 꼭대기에 걸터 앉은 바위 덩어리를 끝을 좆다보니 반쯤 기운 달이 이쪽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향숙은 잡았던 팔을 풀고는 언젠가 다시 오면 그 때는 저 산을 올라가 보자고 말했다. 소대장은 그러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서 생각해보니 산에서 내려다 보는 절의 풍경도 괜찮겠다 싶었다. 아래에 있을 때는 위를 보고 위에 있을 때는 아래가 그리워 지는 법이다.

독경 소리는 커지거나 작아지지 않고 일정하게 울렸다. 스님 한 분이 옆의 문을 열고 내려와서는 다른 건물로 천천히 걸어갔다.

까치 두 마리에 추녀 끝에 있다가 날아서 스님이 간 건물의 꼭대기에 앉았다.

저 녀석들이지.

소대장이 말하자 향숙이 아까 냇가에서 날았잖아.

하고 받았다.

우리는 절에서 30분 정도 머물렀다. 그리고 소대장은 밀양을 떠났다. 다시 오자고 했던 표충사 여행은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한 없이 뒤로 미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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