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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조선은 요지경 속으로 깊숙히 빠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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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조선은 요지경 속으로 깊숙히 빠져 들어갔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8.21 1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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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탁은 대세였고 반탁은 몰락했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해방 그 해 추운 겨울 어느 날 미소가 남북으로 갈라 서로 통치하겠다고 소문이 돌 때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쪽의 수가 많았다.

소련은 찬탁 미국은 독립이라는 오보가 나오면서 세상은 한층 더 시끄러워졌다.

독립된 나라에서 독립 정부를 세워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누가 봐도 이치에 맞았기 때문에 미국은 환영 받았고 소련은 그러지 못했다. 민족 감정이 대규모로 일었다.

반탁은 분위기를 압도했다. 그러나 상황은 묘하게 꼬인 실타래처럼 풀기 어려운 쪽으로만 흘러갔다. 스스로 쟁취하지 못한 민족의 숙명이라고 해도 가혹했다. 꼭두각시를 중심으로 한 토벌대의 세력은 스스로를 그럴 능력이 없는 집단으로 격하시켰다.

국민들의 수준은 더 형편없다고 판단했다. 그런 국민을 끌고 가기 위해서는 찬탁이 필요했고 찬탁은 독립과 다른 말이 아닌 같은 말이었다. 다른 나라의 통치를 받으면서도 독립이라고 주장했는데 사람들은 이 무슨 해괴한 말장난이냐고 의문을 표하면서도 다들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다.

해방조선의 혼란과 그로 인한 파멸을 막기 위해서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것은 그들의 주장이 아니라 그러기를 바라는 자들의 주장이 담긴 포고령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포고령은 신탁통치 결사반대가 아니라 탁치만이 살길이다, 라고 씌어 있었다. 탁치라는 말 뒤에는 괄호 열고 독립이라고 쓰고 괄호를 닫았다. 신탁이 곧 독립이었다.

통일정부 수립은 물건너 갔다. 북쪽 세력들은 그들 나름대로 사분오열을 노렸다. 은인자중 하고 있다가 신탁이 옳다고 주장하는 등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고 그 속에 빠져들었다. 남한은 일사천리로 단독 정부 수립에 들어갔다.

세상은 요지경 속이라더니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순수한 자들은 불순자들의 음모에 걸려 들었다. 싸움을 불러오는 고성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주먹질로 코피가 터지는 일도 잠잠해 졌다.

미풍은 태풍으로 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람은 먼 아메리카에서부터 불어왔다. 거리가 멀어 불어오는데 시간이 걸렸으나 조선 땅에 당도하자 회오리를 일으키면서 반탁 세력을 똘똘말아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자유의 이름으로 그들은 날아가는 그들이 더 멀리 날 수 있도록 풍부질을 가열차게 돌렸다. 그들이 보기에 그것이 나쁘지 않았고 좋았다.

하려고만 하면 무엇이든 하는 그들은 미개한 조선인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대드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자신들에게는 있고 그들에게는 없는 힘을 이용해 그들은 흰옷 소매를 걷는 녀석들을 제압했다. 내 버려 두면 종주먹을 들이 댈 것이 뻔했다. 그들 역시 이이제이 전법을 구사했다.

간도의 일본인들처럼 자신들의 손에 피를 묻히기보다 조선인은 조선인 알아서 처단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을 따랐듯이 아메리칸을 따랐다. 따르는 것은 거스리는 것보다 쉬웠다. 그러지 말라고 해도 그럴 만만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는데 그러라고 하니 준비된 사람처럼 그대로 시행했다.

새 신을 신고 그들은 어린아이처럼 하늘로 뛰어오르며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이것이 애국이다. 높은 코를 따르라. 무조건 복종하라.

그들 앞에서 애국의 종류도 가지가지라는 말은 통용되지 않았다. 애국은 하나의 방법, 오로지 하나의 세력에 의해서만 독점됐다. 국토를 반으로 나누는 것도 애국때문이라고 했다. 남북이 갈라서서 총부리를 겨누는 것도 애국이라고 했다. 민중은 헷갈렸으나 먹고 살기힘들어 그들에게 애국을 일임했다.

겁 없는 누군가가 간혹 너만 애국하느냐고 따지면 발길질로 막았다.

한 번 더 떠들면 멍석에 말라 한강에 던지겠다고 협박했다.

이번에는 조용히 있는 것이 애국이라고 했다. 까불지 말라는 뜻이었다. 애국은 그 말을 쓸 수 있는 특권층에게만 허용됐다. 나머지가 애국을 들먹이면 그날 밤이 그의 제삿날이 됐다.

애국도 모르는 자들과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 갈 수 없는 종자라고 낙인찍은 그들은 저녁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은밀히 행동했다. 낮에 애국을 떠들던 자들을 처단하기 위해서 였다.

그러기 전에 그들은 손가락을 잘라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기 전에 박사님 만세 삼창을 하고 동지들, 오늘 밤 우리 애국합시다, 결의를 다지고는 바로 실행했다.

깊은 밤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렸으나 일하느라고 지친 국민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소리가 날 것을 예상한 사람만이 그럴 시간이 됐다고 시계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소리가 어디서 왜 나는지 사전에 알고 있었던 순사는 짐짓 개가 짖는 방향과는 다른 쪽으로 검은 몽둥이를 세우고 급하다는 듯이 몸을 움직였다.

치안이 필요한 쪽에 그들은 필요 없는 존재였다.

반탁에서 독립으로 완장을 바꿔 찬 토벌대는 밤새 종로 거리를 휩쓸고 다녔다. 차량으로 자전거로 삼삼오오 모였다가 흩어 졌다를 반복했다. 먼동이 트고 흰옷 입은 사람들이 주섬주섬 옷을 입고 일터로 나가기 위해 준비할 무렵 그들은 퇴근했다.

다음날 옆집 사람은 시체를 신고하면서 죽은자의 듣는 귀가 떨어져 나갔다고 몰려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제법 큰 소리로 떠들었다. 무리 중의 사람은 알아 들었다는 듯이 빨갱이가 한 명 또 죽었군 그래, 하고 살인자보다 더 흉악한 범인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 모욕했다.

자식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 달라고 십 삼 일째 단식하는 부모 옆에서 피자를 시켜 먹는 자들과 그들은 같은 배를 탄 쌍생아였다. 찬탁을 하는 순간 조선은 영영 죽는다고 삼일 만세 날처럼 목이 터져라 외치는 자들은 그들의 노리개로 전락했다.

허리가 잘리고 두 동강 나면 어떤 유능한 성형외과 의사도 꿰매지 못한다고 아우성치면 벌린 잎에 자갈을 물렸다. 이제 속마음을 털어놓는 조선사람들은 없었다.

일제 시대처럼 순사가 무서워 주인 몰래 무언가 훔쳐 먹은 개처럼 꼬리를 말고 구석으로 숨어 들었다. 통일국가를 세우고 하나의 정부를 세우려는 자들의 꿈은 사라졌다.

주인만 바뀌고 조선은 다시 외세의 지배하에 놓였다. 민족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렇게 됐다. 그것은 슬픈 일이었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 짓지 못한 민족은 끝내 남북의 허리를 끊었다.

그러지 않을 기회는 여러 번 있었으나 그럴 때 마다 꼭두각시는 이어지기를 반대했다. 그것이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더 오래 좋은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의 예측은 맞아 떨어졌고 남북은 반세기를 훌쩍 넘어 한세기 가까이 갈라져야 하는 운명에 맞딱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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