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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떨어진 그는 독립만세를 세 번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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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떨어진 그는 독립만세를 세 번 외쳤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8.20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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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정권을 거의 차지한 꼭두각시는 그것을 강화하기 위해 별짓을 다 했다. 이제 내가 여기 있다고 소리쳤다. 나를 중심으로 모여들라고 열변을 토했다.

다른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을 과음으로 먹은 것을 토해내듯이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럴 때면 그는 목이 뒤로 꺾어지고 침이 사방으로 퍼졌다.

사람들은 침을 맞으면서도 피할 생각도 없이 더 가까이 다가갔다. 대신 긁어 주니 가려운 곳이 싹 나았다는 듯이 사람들은 얼굴에 웃음을 짓고 거 참 말한 번 속시원하다고 말했다. 투덜대던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제일 앞자리에는 토벌대들이 앉았다. 호위병처럼 앉은 그들은 눈을 사방으로 굴리면서 서 있는 사람들을 경계했다. 사냥개가 따로 없었다.

개 주위는 회초리를 든 일제 대신 미제가 쵸콜릿를 들고 서성였다. 구경거리가 생기자 독립군도 머리를 들이밀면서 무슨 일인지 궁금해 했다.

토벌대와 독립군이 동시에 꼭두각시에게 몸을 기댔다. 그러나 그는 먼저 기댄 자에게만 자리를 내줬다. 나중에 온 자의 자리는 없었다. 애초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서로 불편해 할 까봐 따로 자리를 만들었으나 분열을 획책하는 자의 속임수가 드러나고 있다고 토를 달자 아예 치워버렸다. 형식적으로 내밀던 손은 이제 뒤로 감추고 그는 노골적으로 둘을 차별했다.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법을 그는 알았다. 내 편은 챙기고 남의 편은 적으로 돌렸다. 그리고 분노를 키워 서로 싸우게 만들었다. 중재자 시늉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는 말로는 평등이나 평화나 한민족을 내세웠으나 속으로는 그런 것은 없다고 못 박았다. 낮에 보였던 선의의 얼굴은 저녁에는 악마로 변했다.

악마는 다른 악마와 마찬가지로 악마 외의 불행은 외면하고 자르지 말아야 할 가지마저 싹둑싹둑 잘랐다. 전지가 필요 없는데도 그는 그래야 한다고 막무가내로 과수용 가위를 들고 이리저리 사과밭을 뒤집었다.

이제 지휘자와 지배자가 누구인지 윤곽이 드러났다. 소심한 민중은 그가 독립운동을 했으며 가장 활발하게 일제와 싸운 사람이라고 칭송했다. 왕족의 후예라고까지 했다.

공교롭게도 그는 무능했으면서도 600년간이나 통치했던 조선왕과 성씨가 비슷했다. 노란 눈의 여자를 부인으로 둔 그는 반신반인이었다. 능력있는 사람은 누가 모함을 해도 결국 인정받게 된다고 군중들은 멀찍이 떨어져서 수군댔다.

그를 위한 충성의 거대한 모래탑이 쌓여 지기 시작했다. 그와 한 몸인 조국을 맹세하는 자들은 목숨 같은 것은 초개처럼 버릴 각오가 돼 있다는 듯이 툭하면 그것을 내기처럼 걸었다.

어떤 자는 신이 전하를 지키겠다고 손가락을 잘랐는데 그 피는 천황폐하 만세를 적을 때처럼 매우 붉었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다. 신을 파는 자도 있었으나 대개는 신의 명령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옳다고 여겨 그렇게 했다.

그는 웃었고 영어로 탱큐를 연발했다. 그는 조선말보다는 영어에 능숙했는데 주로 쓰는 단어는 탱큐 같은 쉬운 단어여서 다른 사람들도 그 뜻을 알고는 알아듣는 귀에 감격해서 머리를 조아렸다.

대일본 제국의 천황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걸겠다고 혈서를 쓴 자와 동일한 방법을 쓴 것은 그것이 그의 눈에 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주인 대신 노예의 삶은 대대로 살아온 그들의 방식이었기에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주 쉬운 길이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충성하라면 손을 들고 거수경례를 하면됐다. 이보다 쉬운 일은 없었다.

고문하는 일은 더 쉬웠다. 늦게 조선에 들어온 독립군들을 토벌대는 늦은 이유를 대라며 고문했다. 빨갱이가 아니라면 늦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논리였고 고문의 이유였다.

혼백을 빼앗겼다가 차가운 물에 정신이 든 독립군은 못다 한 꿈이 남아 있어 하는 것이 아니라 기대에 어긋난 결과 때문에 평생 처음으로 후회라는 것을 했다.

나의 정체성은 사라졌다. 숨이 턱에 찼고 정신이 쇠락했다.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차라리 오지 않을 그 무엇인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 나았다.

평정심이 사라진 것은 나를 인정해 주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그저 조선의 독립만을 원했기 때문이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강행한 것은 조국탓이 아닌 순전히 내 탓이었다.

이 꼴을 보려고 그랬는가, 탄식은 이내 통곡으로 바뀌었다. 나라 잃은 설움보다 나라 찾은 설움이 더 클 줄은 예전엔 미쳐 몰랐다.

누가 올 줄 알았으냐고 항변하는 토벌대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태어나고 보니 일제 식민지인데 식민지 국민으로 산 것이 뭐가 잘못이냐고 소리 높이면 사방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처럼 이상해 보였으나 틀린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눈썰미 없는 자신을 탓해야 옳았다. 남이 아닌 자신 탓을 하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토벌대는 독립군을 거만하게 대했다. 함부로 발로 찼다.

일본군이 득세하던 만주보다 그들이 도망가고 난 조선에서 더했다. 악질 순사는 양반이었다. 독립군은 토벌대에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들은 최고였다.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쉰 목소리로 겨우 말하면 정말로 그들은 자비를 베풀었다.

놀라운 신의 은총이었다. 종이쪽지 하나에 전향서를 작성하기만 했는데도 그들은 독립군을 용서했다. 그래도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나았다.

독립군은 서대문의 빨간 벽돌 문을 밀고 나와 혀를 깨물었다. 그래도 잘리지 않으면 고물장수의 엿가락 가위를 뺏어 나머지를 잘라냈다.

오늘을 열심히 산 독립군은 후세에게 간직할 만한 과거를 물려 주지 못했다. 그는 쓰러져 죽으면서 천하에 가르쳐서는 안 될 독립운동이라는 네 글자를 발음도 정확하지 않게 주절댔다.

독립운동하면 삼대가 망한다. 독립군 생활 8년 만에 그는 마침내 인생의 종지부를 찍었다. 더이상 반탁을 외치지 않아도 됐고 고춧가루 물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만주와 간도에서 독립군을 고문하던 그 방식 그대로 완장을 바꿔찬 토벌대는 해방 조선에서 똑같이 방식으로 고문했다. 독립군의 장교는 토벌대 출신 경찰 간부로부터 따귀를 얻어맞고 그만 실성해 버렸다.

차라이 그게 나았다. 맨정신으로 토벌대 하수의 모욕을 받느니보다 정신 나가 미친 사람이 되는 것이 백배나 속 편했다.

이 상황에서 어찌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당연한 것은 이런 것이다. 실성한 그는 깨어났다, 실성하다를 반복하다 제대로 정신이 들었다.

그도 무릎을 꿇은 것이다. 토벌대 경찰 간부에게 살려 달라고, 목숨만 살려주면 개돼지가 되어도 좋다고 손을 싹싹 빌었다. 껍질이 벗겨져도 참아냈던 그들이었으나 자신의 조국에서도 똑같은 자에 의해 똑같은 방식으로 고문을 하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똥을 싸네, 더러운 새끼.

토벌대 출신의 경찰 간부는 이제 할 만큼 했으니 필요 없다는 듯이 이런 말을 지껄이면서 부하에게 종로 길거리에 갔다 버리라고 명령했다.

사지를 들린 독립군 장교는 종로 3가에서 하나둘, 셋의 구령이 떨어지자마자 도로로 떨어졌다. 떨어질 때 아팠으므로 그는 저도 모르게 아얏, 하고 비명을 질렀고 그 비명과 함께 미친 증세가 말끔히 사라졌다.

그는 이곳은 간도가 아니고 조선 땅이라는 것을 알고 벌떡 일어나 대한독립 만세를 세 번 외쳤다. 그 순간 그는 다시 미친 세계로 들어갔다.

구경하고 있던 거리의 여자들은 미친놈 다 보겠다는 듯이 혀를 차면서 손가락질을 해댔다. 세 살 먹은 애들도 다 아는 것을 모르고 있는 어른에 대한 비난과 야유였다.

독립한 줄 누가 몰라, 그러면 뭐해 미친놈.

여자들은 돈 많은 일본인들이 물러나면서 고객을 잃은 화풀이를 했다. 돈이 없는 조선인들은 깎으려고 했고 그런 조선 사람을 그녀들은 더러운 조센징 놈들이라고 욕을 했다.

돈도 없는 것들이 왠 꽃 타령이야.

독립군 장교는 문에서 쫓겨나 자신처럼 도로에 버려진 허름한 차림의 중년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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