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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 올드보이(2003)- 이유 없는 것의 무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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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 올드보이(2003)- 이유 없는 것의 무거움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8.1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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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에는 책임이 따른다. 죄가 있으면 벌을 받는다. 책임을 통감하기 때문에 벌을 받는 자는 왜라는 이유를 붙일 이유가 없다. 자신의 잘못을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알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으로, 어째서와 같은 대드는 질문으로 확인을 요구하지 않는다. 책임이나 벌이 자신이 범한 것에 비해 과하다고 불평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의 원인 제공자는 다른 누구 아닌 자신이기 때문에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남 대신 자신을 책망하는 것이 옳다. 15년간 옥에 갇힌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자신이 왜 그렇게 됐는지 알지 못한다.

정식 재판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냥 어느 날 끌려 왔을 뿐이다.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좋아하는 술도 먹었다. 장기인 떠벌이기도 신나게 했다. 그 기분 이어가기 위해 딸 생일 선물 어쩌고, 저쩌고 지껄인다.

그러다 납치된다.

여기서 잠깐 알렉상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자. 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냥 그러고 싶을 뿐이니 왜라는 질문 대신 아량 있는 독자들의 이해를 구한다. 이유없는 것은 가볍지 않고 무겁기 때문이다.

뒤마는 고작 19살 청년을 14년간 옥에 가뒀다. 박찬욱은 오늘만 대충 수습하고 살자는 오대수를 15년간 그렇게 했다. 백작은 비록 허위와 기만이라도 검사의 기소장을 받았다.

대수는 그런 것 없다. 백작은 왜라는 질문을 살고 산다. 그 점은 대수도 마찬가지다. 왜 자신이 감옥에 갇혔는지 이유를 알고 싶다.

백작은 파리아 신부를 통해 자신이 누명을 썼고 누명을 씌운 자들의 정체를 알아낸다. 왜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 풀렸다.

대수에게는 파리아 신부가 없다. 따라서 스스로 갇힌 이유를 알기 위해 자신을 가둔 자들을 찾아야 한다. 비밀을 안 자는 그것이 사일인지 확인만 하면 되고 모르는 자는 스스로 풀어야 한다. 그래서 전자는 여유롭고 후자는 답답하다.

백작은 14년 동안 대수는 15년 동안 매일 하루도 빼먹지 않고 나가겠지, 곧 그럴 거야 같은 희망을 품고 살았고 다 부질없다며 절망하며 살았다.

▲ 겨울 어느 날 강혜정이 최민식을 끌어 안고 울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다.
▲ 겨울 어느 날 강혜정이 최민식을 끌어 안고 울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다.

그 사이 프랑스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한국의 예만 들어보자. 노태우 취임, IMF, 디제이 당선, 평양 방문, 기적의 월드컵 8강, 노무현 등장 등이 불과 몇 초 만에 스쳐 지나간다.

한 달이면 나갈 것 같은 세월이 부지불식간에 흘러 흘러 이렇게 됐다. 자포자기 말고 다른게 뭐 있겠는가. 그런데 기적이 연출됐다. 두 사람 다 지옥에서 나온 것이다.

파이아 신부는 죽고 백작은 신부의 시체로 위장해 탈출에 성공한다. 대수는 납치된 자에 의해 스스로 풀려났다. 엄청난 돈을 가진 백작, 단련된 몸을 가진 대수, 둘은 이 가공할 무기로 실체적 진실에 접근한다.

백작은 철저한 복수를 한다. 검사를 응징하고 애인을 뺏은 자와 모함한 자를 끝까지 추적해 철저히 파멸에 이르게 한다.

이에 비해 대수의 복수는 끝까지 완벽했다고 볼 수 없다. 뒤마는 복수와 용서가 따로 놀지 않고 같이 가고 있음을 증명했다. 박찬욱은 복수와 용서에 따른 뚜렷한 메시지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마음껏 비웃어도 좋다.)

웬, 뚱딴지 같이 둘을 비교했는지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그냥이라고 답했으나 불친절할 것 같아 덧붙이면 영화 속에서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딱 한 번인가, 언급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이유 없이 사람도 죽이는데 그 정도라면 둘은 억지라고 해도 엮일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백작 이야기는 빼고 대수 이야기만 해보자. 대수는 끔찍한 인물이다. 자신의 혀를 잘 드는 가위로 자르는 모진 독종이다. (외국인들은 산 낙지를 통째로 먹는 장면을 많이 언급하는 모양이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엽기적일 터.)

그러나 그에 못지않은 또 다른 괴물이 있다. 바로 유지태가 분한 이우진이다. 차분한 목소리, 그에 따른 우아한 몸놀림, 귀족적인 태도가 사이코의 전형이다. 복수의 화신과 괴물이 만났으니 그들의 관계는 제정신이 아니다. 뭐를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그러나 줄거리나 자세한 평을 할 생각은 없다. 애초부터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것에 관한 내용은 사방에 널려 있으니 숟가락 얹을 생각 없다. 늘 친절하다면서 불친절한 이유를 묻는다면 앞서 나온 ‘그냥’이라는 단어를 또 쓰고 싶다.

박찬욱은 이 영화로 자신의 위상은 물론 한국 영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일등공신이 됐다. 영화가 나온 이듬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기생충>으로 아카데미를 석권한 봉준호 감독이 수상소감에서 형님으로 언급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 심사위원장이었던 칸 영화제 시상식에서 <올드 보이>는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스토리, 편집, 촬영, 각본, 연기 등이 뛰어났다는 증거다. 그러나 일반 대중에게 굳이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이 영화 말고도 없는 시간을 쪼개서 봐야 할 좋은 영화는 부지기수로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를 공부하거나 그쪽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영화로 손가락에 꼽고 싶다.

국가: 한국

감독: 박찬욱

출연: 최민수, 강혜정

평점:

: <올드보이>는 올드한 영화다. 나온 지 무려 17년이 지났다. 세월이 한 번 가고 강산이 두 어 번 변했다. 그런데도 어제 나온 따끈따끈한 필름 같다. 풀어쓰면 세련됐다는 말이다.

대사가 그렇고 화면이 그렇다. 감독이 끌고 가는 방향이 지루하지 않다. 잠시 딴생각하면 돌려보기를 해야 한다. 집중도가 있다. 끝날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완성도가 산의 팔부능선쯤에 있기 때문이다.

광기에 사로잡힌 두 남자의 이야기는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신이 아닌 사람이라면 복수를 해야 한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 아닌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서는 그에 두 어 발 앞에 있다. 용서를 모르는 자는 복수할 자격 없다.

한편 여자든 남자든 말이 많으면 실수를 한다. 술 먹은 뒤라면 더 그렇다. 그러니 혀를 자르기 전에 세 치 혀를 늘 조심해야 한다. 장도리로 이빨이 뽑히기 전에. 말 많은 자는 그 말로 인해 반드시 화를 입는다. 취중 망언은 술 깬 뒤 언제나 늦는 후회를 가져온다.

말하고 싶은데 그러기 어렵다면 민혜경의 ‘보고 싶은 얼굴’ 들으면서 터져 나오려는 입안의 혀를 달래보기 바란다.

한편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모래알이든 바윗돌이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라거나 ‘웃으면 모두가 웃고 울만 나만 운다’는 같은 문장은 기억해 뒀다가 쓰면 멋진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추신: 최민식이 처음 듣는 말로 ‘족방새’라고 표현하는 장면이 나온다. 텔레비전에서는 욕을 가르치지 않는다면서.

혼자 있을 때 점잖은 표정으로 족방새라고 말을 한다면 여럿 앞에서 자신의 위치를 과시하고 싶을 때는 된소리로 ‘쪽방새’로 발음할 수 있다.

건달이나 깡패 혹은 양아치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으나 그보다는 좀 가벼운 느낌이다.

행실이나 인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불량한 범죄자 정도로 정의할 수 있는데 이들의 특징은 허세가 심하고 폭력을 쓸 때는 거침없다는 점이다.

자신은 사람 취급을 하면서 상대방은 동물로 다룬다. 술 취해서 꼬장 부리거나 아무 데서나 오줌을 싸면서 이러지 말라고 말리면 내가 누군지 알아? 이 ‘시방새’야 같은 단어를 쓴다면 십중팔구 족방새다. 해서는 안 될 짓을 일삼는 못된 자. 반드시 누군가가 응징해야 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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