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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 세 그릇에 그들은 동료를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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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 세 그릇에 그들은 동료를 팔았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8.05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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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절 만주에는 반신반인 외에도 조선인들이 여럿 있었다. 호석 아버지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살기 위해 고향 땅을 등졌다. 넓은 땅이 있어 적어도 굶주림은 면하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그런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들은 간도로 떠났던 먼저 간 조선인들처럼 배부르고 등 따뜻한 기대 대신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그러나 다른 뜻으로 만주로 들어오는 조선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조선인 사냥을 위해 몰래 조선족 마을로 잠입했다. 호석 아버지 같은 불순불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이었다.

독립이라는 허황된 꿈을 꾸는 자들을 이 기회에 모기처럼 박멸하기 위해 특별히 투입된 정규군이었다.

바야흐로 조선사람들끼리 서로 죽이고 죽이는 참혹한 장면이 만주의 한 귀퉁이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만리타향에서 동포끼리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고 목숨을 서로 노렸으니 이런 비극이 따로 없었다.

흰옷 입은 사람들은 같은 옷을 즐겨 입었던 사람들을 피했고 조선말이 들리면 반갑게 나서기보다는 보이지 않도록 숨었고 그런 사람들을 그들은 찾아 나섰다.

그리고서는 잡아서 고문하고 죽였다. 죽이는 쪽은 주로 일제에 고용된 사람이었고 죽는 사람은 임시정부의 지시를 받는 사람들이었다.

천황에 충성하는 토벌대의 토벌 대상은 독립군이었다. 그들은 다정한 말 대신 총이나 칼을 썼다. 그들에게 있는 무력을 남 주지 않고 동포를 없애는데 이용했다.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겠다는 독립군을 같은 조선사람이 토끼몰이하면서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토벌대는 독립군을 향해 무모한 짓을 멈추라고 요구했고 거절당하자 두고 보지 않고 바로 실력 행사에 들어갔다.

신식 군대의 전술을 익힌 토벌대는 독립군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가족을 인질로 잡고 어떤 때는 독립군 대신 그들을 학살하고 그 시체를 나무에 달아 걸었다.

독립을 하면 이꼴 나니 하던 사람은 즉시 그만두고 하려던 사람은 그 일 말고 다른 일을 하라고 위협했다.

살기 위해서라면 이는 정도가 지나친 것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을 말살하고 대 일본 제국의 확장을 위한 신념 때문이었다.

토벌대는 일본인보다 더 조선과 조선인을 미워했다.

그들은 수시로 미끼를 놓았다. 같은 동포인데 설마 죽이기야 하겠느냐고 동정심을 구했다. 자수하거나 있는 곳을 알려 주면 두둑한 포상을 주겠다고 여기저기 방을 붙였다. 실제로 그런 사람을 주민들을 모아놓고 떠들썩하게 포상했다.

주민 가운데 일부는 흔들렸다. 자식이 굶고 마누라가 쓰러지자 마루 아래 숨은 어린 독립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렇게 잡힌 독립군은 총대신 칼로 죽였다.

총알을 아낀다는 명목으로 혹은 녹슬지 말라는 의미로 일본도를 꺼내 들고 망나니 춤을 췄다.

그런 소문은 빨리 퍼져서 독립군은 사기가 저하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토벌대는 독립군을 포섭하기 위해 유인물 전술을 썼는데 유인물을 받아가는 조선인들에게는 유인물에 더해서 1원짜리 종이돈을 얹어 줬다.

일원이면 설렁탕 세 그릇 값이었다. 굶기를 밥 먹듯이 하는 조선인들에게 그것은 유혹이었다. 그런 유혹에 조선인들이 전부는 아니어도 더러 저쪽으로 넘어갔다. 독립군은 그들 밀고자를 찾아 처형했다.

흰옷 입은 순박한 사람들은 그런 독립군을 미워했다. 반면 설렁탕을 사 주는 토벌대가 오기를 기다렸다 팔 사람이 있으면 팔아 넘겼다.

독립군은 쫓겼다. 깊은 숲속의 낭떠러지까지 밀렸다. 떨어져 죽나 총 맞아 죽나 죽기는 매일반이었다. 그런 위기의 순간에 간혹 독립군은 전과를 올렸다.

운이 좋기도 하고 토벌대처럼 작전을 짜기도 한 결과였다. 사방에서 포위된 토벌대 여러 명이 항복하면 살려 준다는 말도 듣지 않고 천황폐하 만세를 외칠 때 독립군은 그들의 얼굴을 외면했다.

아는 얼굴들이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독립군에 있다가 토벌대로 넘어간 자들이었다.

곧 뿌리가 뽑힐 것 같았던 독립군은 이처럼 죽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토벌대를 괴롭혔다.

겨울 어느 날 아마도 1월 13일쯤으로 기억한다고 호석 아버지는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본거지 만주에서 간도로 넘어가던 토벌대 특수부대 요원 33명이 한꺼번에 그날 몰살당했다.

세 명은 투항해 상해 임시 정부가 있는 건물로 이송됐다. 그날의 전과는 빨간 머리띠를 두른 장군과 장군 다음가는 지위를 가졌던 호석 아버지가 짠 매복 작전에 그들이 걸려들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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