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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2-05-16 14:52 (월)
작은 선녀의 잔을 받아 친히 따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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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선녀의 잔을 받아 친히 따라 주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7.28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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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의 몸에서 피가 나올수록 대장의 몸은 가벼워졌다. 몸이 가벼워지자 대장은 어린 시절 자신이 착한 소년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다시 한번 웃음을 지었다.

그 시절은 신과 소통하는 반신반인의 전성기였다. 또 다른 반신반인이 그들의 백성을 학살한 후 먼 나라의 섬으로 급하게 도망간 빈자리를 차지 한 후 수년이 지난 후였다.

큰 정적들은 대부분 제거됐다. 잔챙이들은 일부 살려 두었다. 인정이 많아서라기보다는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권력 유지에 도움이 됐기 때문이었다.

죽지 않고 산 자들은 죽은 자들의 흔적을 그리워하는 불순 불자들과 함께 지하로 숨어들었다.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한 것을 두고 반신 반신은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의도한 대로 됐는데 그런 게 있을 수 없었다.

좌우 쌍포에게 자네들만 믿고 있어, 하고 하루에 한 번씩 주의를 주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 말을 들은 그들은 알았다는 듯이 맹세의 눈빛을 드러냈고 전하는 걱정하지 말고 정권 보위나 신경쓰라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숙인 고개 사이로 경쟁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감정이 쌍포 사이를 오갔다.

반신 반신은 그것도 내버려 뒀다. 알면서도 내버려 둔 것은 그것이 나쁜 것이라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그것 역시 자신의 절대 왕권을 위해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충성경쟁을 통해 아랫것들을 통제하는 방식이었다.

그런 어느 날 반신 반인은 신의 계시를 받았는지 잘먹고 잘살자고 소리 높여 외쳤다. 그가 한 번 소리치자 전국의 골짜기마다 그 소리가 울렸고 메아리는 사방으로 퍼졌다. 온 나라가 잘먹고 잘 살기 위해 힘을 하나로 모았다.

그것은 지금 못살고 못먹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으나 그의 주장은 거침이 없었고 감히 누구도 그것에 대해 시비 걸지 않았다.

그 소리가 듣고 싶었던 필부들은 마침 잘먹고 잘살게 됐으니 잘됐다고 너도나도 그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앞다퉈 노래 불렀다. 마치 권력의 이인자라도 되는 양 목숨 빼고는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각오였다.

패배에 익숙한 국민의 가슴속에 긍정의 에너지가 홍수처럼 넘쳐 흘렀다. 모두가 이처럼 한목소리를 내는데 지하의 무리들은 간혹 너만 잘살아 보자고 비꼬았다.

평생 해 먹고 대를 이어 그러기 위해 고혈을 쥐어짜고 있다고 그럴듯한 말을 퍼트렸다. 귀가 얇은 몇 사람이 그럴 수도 있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워낙 수가 적어 어느 순간 퍼지다가 멈추었다.

쌍포는 그런 사실을 깊숙한 안가에서 열리는 소행사가 있을 때마다 반신 반신의 귀 가까이 대고 그런 사실이 돌고 있다고 나직하게 불었다.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으므로 그는 조금 전까지 웃던 웃음기를 싹 가시고 예의 그 살기띤 눈빛으로 둘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그래서 내가 자네들에게 말하지 않았나. 좀 잘 해보라고.

그 말 한마디면 끝이었다. 쌍포는 앉았던 다리를 풀고 일어나서 급히 무릎을 꿇었다. 대역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러면 옆에 있던 다른 쌍포가 쌍심지를 켜고 전하, 그것은 제 임무이니 제가 하겠습니다, 저를 탓해 주십시오 하고 더 크고 더 간절한 목소리를 심장에서 끌어냈다.

반신 반인의 눈이 앞선 쌍포에게서 다른 쌍포에게로 옮겨가자 앞선 쌍포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옆의 쌍포를 기어이 절단내고야 말겠다고 속으로 화를 삭였다.

반신 반신은 앞선 쌍포의 심기가 불편한 것을 알고는 임자들, 알았으니 자, 내 술잔 받아, 하고는 옆에 있는 작은 선녀가 들고 있던 술 주전자를 받아서 친히 따라 주었다.

감격해 마지않는 쌍포는 받아든 술잔을 단숨에 들이키고는 이년들아, 전하께 한 잔 올려야지, 그리고 엔카 한 번 불러라.

기타를 들고 무언가를 해서 이 어색한 분위기를 벗어나고 싶었던 조금 큰 선녀는 알았다는 듯이 기타줄을 매만지는 어설픈 흉내 대신 바로 연주로 들어갔다.

기분이 좋아진 전하는 만주벌판에서 천황폐하를 위해 어리석은 무리를 학살할 때 불렀던 섬나라 군가를 떠올렸다.

그의 얼굴은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좋았던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조용히 그러나 힘차게 현역 군인처럼 군기를 바짝 세웠다.

자기차례도 아닌데 먼저 불렀다고 핀잔 줄 사람이 없었으므로 그는 그가 싫증날 때 까지 부르던 노래를 멈추지 않고 계속 불렀다.

주먹 쥔 오른손은 저도 모르게 위로 갔다가 아래로 내려오면서 장단을 맞추었는데 쌍포는 그 모습에 감격해 눈물을 흘리면서 박수로 박자를 맞추기 시작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100만 명쯤 쓸어 버리자는 말은 자연스러웠고 자연스러운 것은 귀에 거슬리기 보다는 잘 익은 술처럼 입에 착착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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