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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탈출기> (1926)-두만강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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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탈출기> (1926)-두만강은 흐른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7.1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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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심덕이 ‘사의 찬미’를 부른 것은 1926년이다. 외국곡에 가사를 직접 붙였는데 제목에서 연상되듯 내용이 파격적이다.

황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 너는 칼 위에 춤추는 자 등은 지금 들어도 가슴이 먹먹하다.

갑자기 그녀의 노랫가락을 듣고나서 그 한 해전 1925년에 나온 최서해의 <탈출기>를 읽으니 주인공 박군의 심정을 노래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상념에 사로잡힌다.

죽음을 찬미할 만큼 삶의 고됨이 가혹했던 윤심덕과 박군은 어쩌면 그 시대 남녀를 대변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쓸쓸한 인생,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는 절규는 박군이 두만강을 넘어 간도에서 생활하는 그 한 달 동안 목 놓아 부르기에 딱 어울린다.

박군의 간도 생활이 어쨌길래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하는 윤심덕의 체념과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할까.

김군의 편지를 여러 통 받은 박군은 회답하지 못한 저간의 사정을 역시 편지로 밝히는데 ( 그래서 <탈출기>를 서간체 형식의 소설로 분류한다.) 그 내용이 하도 모질어서 읽다가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다.

‘사의 찬미’나 박군의 답신이나 애절하고 원통하고 슬픈 것은 매일반이다.

박군이 고향 땅을 버리고 물설고 낯설은 인제, 원통이 아닌 간도로 떠난다. 떠날 때 그는 대개 다른 곳으로 가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럴싸한 희망을 갖고 있다.

무슨 구체적인 일거리가 있거나 충분한 사전 조사가 있었던 것은 아니나 막연하게 그렇게 되리라고 자기 최면을 건다.

박군의 기대는 배불리 먹고 뜨뜻하게 지내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먹을 수 있고 잘 수 있는 생활이 지상 목표다. 놀면서 그러자는 것이 아니다. 뼈 빠지게 일하겠다는 의지는 차고 넘친다.

농사를 지으리라. 그곳 땅은 기름져 어디나 곡식이 잘 된다고 하지 않던가. 산림도 울창하니 나무 걱정도 없다. 아내도 도울 것이고 어머니도 힘닿는 데까지 보탠다면 이것은 꿈이 아닌 현실이다.

산 입에 거미줄 대신 흰쌀밥이 술술 넘어가리라. 에헤라 디야, 얼씨구나 좋다. 박군은 어깨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다. 내 힘으로 벌어 어머니와 아내를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면 어떤 가장이 풀이 죽겠는가.

그러니 여기 조선, 비록 내 조국이나 일제의 수탈로 목구멍이 포도청인 이곳을 미련 없이 떠날 때 신명은 극에 달한다.( 일제니 조선이니 하는 대목은 한 줄도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인 것은 앞뒤 문맥으로 보아 틀림없다.)

차가운 두만강을 건널 때 아직 청춘인 박군의 가슴은 이런 이상으로 불타올랐다. 그는 흥겨운 기분을 어머니와 아내에게 감추지 않았고 박군의 자신감에 전염된 그들은 덩달아 기뻐 어쩔 줄 몰랐다.

오랑캐령을 넘을 때 춥다고 수레 위에서 이불을 뒤집어쓰는 어머니에게 이 바람을 맞아야 성공한다고 되레 큰소리 친 것은 능히 그럴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렴, 식민지 조선보다 못하겠느냐는 또 다른 자기 최면에 걸려들면서 힘들어도 쉬지 않고 간도로, 간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상천국은 아니어도 배불리 먹고 등만 따습다면 더 바랄게 없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 하면서 흥얼거려도 이상할 것이 없다. (김정구가 부른 ‘눈물 젖은 두만강’은 1937년 발표됐다. 그러니 이 노래를 불렀을 리 없지만 박군의 그때 그 심정이 그랬을 거라고 짐작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 짧지 않고 긴 시간 동안 박군은 어떤 삶을 보냈을까. 애초 기대했던 것을 이뤘을까, 아니면 부족하나마 근처에는 갔을까. 박군의 편지글을 더 따라가 보자. 궁금하면 물음표 대신 책장을 넘기면 되니 이처럼 쉬운 것도 없다.

대답은 간단하다. 물거품. 간도 도착 한 달 만에 이런 꿈은 그야말로 개꿈이라는 것이 판명났다.

그 넓은 땅, 끝이 보이지 않는 간도의 평야에서 박군은 단 한 평의땅도 얻을 수 없었다. 중국 사람의 도조나 타조로 농사를 지으면 빚 값고 나면 남는 것 하나 없는 처음 그 상태로 돌아온다. 배부르기는커녕 하루 이틀 굶기는 예사다. 조선 땅보다 나을게 일도 없다.

설마 했던 목구멍의 거미줄이 여러 겹으로 쳐질 때 살기 위해 박군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동네 구들을 고쳐 주고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울 때까지 남의 집을 일을 도왔다.

아내는 삯 방아 찧고 어머니는 강가에 부서진 나뭇개비를 주웠다. 그러나 살림은 펴지지 않고 되레 쪼그라들었다. 가지고 갔던 돈은 벌써 바닥났다.

겨우 연명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박군은 깨달았으나 너무 늦었다. 자신은 그렇다 쳐도 어머니와 아내가 굶는 꼴은 더 견디기 힘들다. 피는 끓고 눈물은 흐르는데 다른 방도가 없다. 아무리 일해도 먹고 살기가 힘들다.

▲ 간도로 가는 박군 가족은 애초 기대했던 배부르고 등 따뜻한 삶을 살고 있을까. 박군이 집을 지키지 않고 탈출한 것은 가장의 책임 부족 때문인가, 아니면 깰 수 없는 견고한 구조적 문제점을 부수기 위해서인가.
▲ 간도로 가는 박군 가족은 애초 기대했던 배부르고 등 따뜻한 삶을 살고 있을까. 박군이 집을 지키지 않고 탈출한 것은 가장의 책임 부족 때문인가, 아니면 깰 수 없는 견고한 구조적 문제점을 부수기 위해서인가.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도는 박군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부지런한 자에게 복이 온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다. 부지런하기로 치면 이때 박군 가족처럼 부지런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또 얼마나 도덕적인가.

사흘 굶고 도둑질 안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박군 자신일 것이다. 그만큼 박군은 정직하기까지 하다.

이틀 굶은 어느 날 남산만 한 배를 안고 아내가 부엌에서 무얼 먹는다. 어머니와 나 몰래 먹는게 무얼까 박군은 괘씸하다. 아내가 도망치듯 나가면서 던지고 간 아궁이를 뒤지자 이빨 자국이 있는 귤껍질이다. 누가 버린 것을 주워다 먹은 것이다.

박군은 가만히 있어도 두 볼에 눈물이 철철 흐른다.

겨울은 더 혹독했다. 가을에 대구 장사를 했고 그 돈으로 콩을 사서 두부를 만들었다. 조금이라도 이문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역시 쉽지 않다. 그 새 태어난 아이는 젖을 달라고 울고 아내도 울고 나도 울고 어머니도 운다. 비통하고 애통하고 절통하다.

산림 천지나 내 나무는 하나도 없다. 주인 몰래 밤중에 도둑 나무하다 중국인 주인에게 잡혀 경찰서에서 여러 차례 얻어맞았다. 나무가 없어지면 모두 자신을 의심한다.

이웃들은 신수가 멀쩡한 연놈들의 하는 꼬락서니 보니 참 더러워서 못 살겠다고 욕지거리다.

시퍼런 칼로 식구들 다 쿡쿡 찔러 버리고 나까지 없어지고 싶다. 아니면 그 전에 강도질이라도 해야 한다. 이 상태서 정신이 온전하다면 이상하다. 박군은 점점 얼빠진 사람이 되고 있다.

이럴 때 다른 생각이 번쩍 든다. 지금껏 세상에 충실했다. 어머니도 아내도 그렇다. 뼈가 부서지고 살이 찢어지게 일했다. 그런데 세상은 우리를 모욕하고 멸시하고 학대한다. 나는 속아 산 것이다. 포학하고 허위스럽고 요사한 무리는 용납하고 옹호하는 세상인 것을 나는 참으로 몰랐다.

이런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고통이 내 생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자식 때까지 이어진다. 어린 것의 장래를 생각하면 분하기 그지없다. 그것은 내 죄가 아니다.

도적질을 해야 할까, 집단 자살을 할까. 아니다. 나는 탈출하기로 했다. 우리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 어떤 험악한 제도의 희생자로 살아온 삶을 탈출하기로 했다.

나는 탈출해서 어떤 단체에 가입했다. 그 단체 이름이 무엇이고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다. 그러나 험악한 제도를 바꿔보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하는 단체인 것은 틀림없다.

: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 듯이 박군은 구석에서 몰렸을 때 가만히 앉아서 떨다가 죽지 않고 고양이에게 대들었다. 무모하기 짝이 없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다.

쥐가 고양이를 이길 수 없는 것은 뻔한 이치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는 것이 실한 가닥만 한 희망이라도 걸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XX단에 가입해서 얻게 될 재산이 희망이 아니라 가입한 것 자체가 기대해 볼 만 한 유일한 희망인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사는 것에 대한 고민 특히 의식주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인간의 절체절명의 과제다. 그것이 해결되지 않고 파탄이 날 때 어떤 인간도 박군의 행동을 무모하다고 나무라기 어렵다.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김군 같은 순한 편지를 쓰기 어렵다. 벼랑 끝에 서 있는데 무엇이 두려울까 하는 심정으로 이를 갈고 주먹을 쥐게 되는 것이다. 신경향파의 대표적인 소설로 분류된다.

분량은 아주 짧지만 호소력이 대단하다. 편지글 형식이니 읽는 독자들은 신뢰를 더하게 되고 그때를 비록 살아 보지는 않았으나 대리 경험하면서 그 시절 고달팠던 조선인들의 애타는 마음과 가엾은 처지에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그리고 오죽하면 그런 결단을 박군이 내렸을까, 하는 감정이입에 사로잡혀 잠시 숙연해 진다. 최서해가 <탈출기>에서 이런 박진감 넘치는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간도에서 밑바닥 생활을 한 경험이 바탕이 됐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홍염>은 이 코너에서 지난번에 소개한 바 있다. 극심한 빈궁, 살인과 방화라는 결말이 섬뜩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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