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는 셰퍼드 한 마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독자들은 알 것이다.
그 개 이름이 검장군이었다. 원래는 그냥 장군이었으나 자네도 이제는 장군이 되어야지, 그러하려면 개 이름이 장군인 것은 당연해. 그런 말을 진짜 장군에게 듣고 무안해졌으나 이왕 그렇게 된 것 대놓고 해도 되겠다 싶은 대령 할아버지가 앞에 검 자를 하나 더 추가했다.
검은 칼을 상징했고 그 칼은 장군만이 찰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셰퍼드는 검은색이었으니 이보다 더 잘 지은 개 이름은 없을 거라고 대령은 입맛을 다시면서 흡족했다. 이름에 얽힌 내력까지 있는 그런 개에게 밥을 주는 것은 싫은 일이 아니라 즐거운 일이었다.
똥이 보이면 민구는 꾸물대지 않고 빗자루를 들었다.
사납게 짖으면서 첫인사를 했던 검장군은 이제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된 듯 멀리서 발소리만 들어도 꼬리를 흔들었다. 꼬리를 흔들 때 장군이의 통나무 같은 몸통도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바람에 물결치듯 그렇게 흔들리는 장군이는 할아버지처럼 당당했다.
장군아 하고 부르지 않아도 먼저 알고 달려들었다. 주인 할아버지는 방을 빌려줘서 돈도 벌고 개 관리도 하고 어떤 때는 심부름을 하는 민구를 밉게 보지는 않았다.
개밥을 주면서 장군을 바라볼 때 민구는 언제나 시골 들판을 달렸다. 옆에는 황색의 럭키가 함께 따랐는데 누가 먼저 지치는지 내기를 해도 좋다는 듯이 쉬지 않고 계속 앞으로 달려나갔다.
들판의 끝에는 작은 논들이 연달아 있었고 그 논을 지나면 넓은 백사장이 펼쳐졌다. 하늘과 바다에 기댄 백사장에는 해당화가 지천이었다. 하얀 모래 사이로 피어난 붉은 꽃은 어린 민구가 보기에도 나무랄 것이 없었다. 손 가리개를 해도 끝을 볼 수 없었던 흰 사막과 붉은 꽃밭은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이지 싶었다.
그곳을 민구와 럭키가 달렸다. 너풀대는 파도를 오른쪽으로 둘 때는 갑자기 그것이 달려와 온 몸에 물을 뿌려 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꽃 냄새는 마구 퍼졌다. 둘은 저 끝에서 이쪽 끝까지 쉬지 않고 달려도 누구도 지치지 않았다.
민구가 멈추면 개도 멈췄고 민구가 달리면 개도 달렸다. 시작하기 전에 언제나 승부를 걸었으나 끝날 때는 누구도 이기지 못했다. 둘은 그런 사이였다.
검장군이 금세 먹이를 다 먹고 입맛을 다실 때쯤 민구는 럭키가 녀석보다 더 뛰어난 개라고 판단했다.
시골보다 서울 것이 대개 좋았으나 개만큼은 고향에 있던 럭키가 나았다. 럭키는 잡종 진도견이었다. 귀가 작았고 다리가 길쭉했으며 꼬리는 끝이 등에 가까이 붙었으나 닿지 않고 허리 위에서 출렁였다. 어린 시절 같이 놀아주고 같이 컸던 그 3년의 세월.
지금 럭키는 죽고 없다. 절대자처럼 한 번 죽고 나자 더는 민구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꿈에도 보이지 않았다. 럭키는 완전히 잊힌 존재였다. 민구가 서울로 오기 하루 전 사촌 형은 럭키를 끌고 산으로 갔다. 몇 사람이 뒤를 따랐다.
숨어서 그 광경을 민구는 보았고 럭키는 가지 않으려고 뒤돌아보며 짖었다. 나를 찾는 것이라고 민구는 생각했다. 목줄을 풀고 함께 바다로 달려나가자고 끙끙거렸다. 그러나 민구는 몸을 드러내 럭키를 부르는 대신 더 깊숙이 몸을 감췄다.
불길한 것이 럭키의 온몸을 사로잡았다. 끌려가지 않으려고 앞발로 흙을 긁어내며 버틸 때 민구는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럭키가 생 똥을 쌀 때 민구는 저절로 울음이 나오는 것을 느꼈다.
매달린 럭키처럼 신음을 질렀다. 가슴이 쪼그라들었고 한없이 초라했다. 보잘것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부끄러운 것은 후회처럼 늘 뒤에 왔다. 엎질러진 물이어서 되돌릴 수 없었다.
자신 때문에 자신이 제일 소중하게 여겼던 것을 잃었다. 무언가가 자신의 일부에서 떨어져 나갔을 때 그것이 가져온 감정은 울음으로도 잘 통제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끝이 있고 민구의 울음은 어느새 그쳐 있었다.
날이 어두워졌다. 저녁상에는 기름진 음식이 올라왔다. 민구는 그것을 먹었다. 어머니는 기차를 오래 타면 몸이 축난다면서 서울로 가는 막내아들의 보양식으로 럭키를 밥상에 올렸다.
방금 전까지 짖어 대던 것이 찢어진 고깃덩어리로 눈앞에서 흐느적거렸다. 소금 쟁반에 담긴 관우의 목을 보는 조조의 심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만화책에서 보았던 그림 속의 긴 창이 민구의 가슴을 푹 찔러왔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데 민구는 먹었다. 목에 감길 때 고기는 부드러웠고 국물은 따뜻했다. 그날 저녁 민구는 일찍 잠에 들었다. 그리고 새벽녘에 깼다. 그런 경우가 없었는데 갑자기 눈이 떠졌고 몽유병 환자처럼 밖으로 나갔다.
소변을 보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하늘의 별들이 마구 쏟아져 내렸다. 별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뻗으면 잡힐 듯이 보였고 실제로 민구는 그러려는 듯 고개를 한껏 위로 들어 올렸다.
100년도 더 묵은 팽나무 아래서 민구는 하늘에 있는 그것들을 잠깐 바라보았다. 몰려 있었고 따로 있었으나 모두 빛났다. 럭키는 별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