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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종 진도견 럭키가 셰퍼드보다 더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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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종 진도견 럭키가 셰퍼드보다 더 뛰어났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6.17 0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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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전체는 고요했다. 작은 발소리까지 다 들렸다. 주인집 할머니는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으나 안에 있다는 것을 민구는 알았다. 할머니가 방으로 들어가서는 급하게 문을 닫는 것을 열린 문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부르기에 두 사람은 너무 젊었다.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그래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자주는 아니나 간혹 부를 때면 낯이 간지러웠다. 사실 그러는 것은 민구가 아니라 그렇게 불리는 두 사람이야 옳았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그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였고 나중에 그 호칭은 그들이 정해서 그렇게 됐다는 것을 알았다. 나이가 아니라 인격이나 돈이나 지위로 그런 대접을 받기를 원했다.

그까짓 호칭이 무슨 대수냐, 서울 하늘아래서 보호막이라고는 거미줄처럼 허술했으나 그래도 없는 것보다야 나았으니 민구는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원망 같은 것은 없었다.

그들 부부가 생활하는 공간과 민구의 방은 따로 떨어져 있었다. 원래는 없었으나 월세를 받기 위해 마당의 한켠에 ‘보로꾸’몇 장을 쌓아 가건물처럼 만들었는데 옆집 누나의 방도 그런 식이었다.

여름은 더웠다. 그러나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로 접어들자 이곳 생활도 나쁘지 않았다.

거실을 보기 위해서는 작은 창을 통해 비스듬히 시선을 돌려야 했는데 민구는 별로 하는 일이 없을 때는 그렇게 안쪽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쪽에서 누가 왔다 갔다 하거나 간혹 얇은 차림의 할머니가 경계도 없이 돌아다닐 때면 무슨 횡재라도 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사 온 첫날 그집의 식탁에서 밥을 먹었기 때문에 거실과 방의 위치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할머니 댁에서 식사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끼니때가 지나고 여독이 있고 첫날이라는 것을 감안한 배려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밥을 먹으면서 할머니가 말하는 주의사항을 듣자 밥알이 목구멍에 걸리지는 않았으나 영 거북했다. 밥 한 끼 주면서 할머니는 많은 것을 요구했다. 시골 촌놈이라고 깔보는 듯한 시선으로 이 정도의 친절을 베푸는데 그 정도의 예의로 보답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투였다.

먼저 자기가 찾기 전에는 안채에는 들어오지 말고 무엇을 시키면 군말 없이 해야 하며 혹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학교에 가서 떠벌이지 말고 전기세가 많이 나오니 전등 외에 라디오나 다리미 같은 것은 가급적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하는 할머니는 할머니가 아니라 40 중반의 아줌마였는데 건장한 체구에서 우러나오는 여유가 몸에 배어 있었다. 너와는 다른 신분의 사람인 나를 대할 때는 조심하라는 의미가 작은 웃음 속에 묻어났다.

화장하다 뒤돌아보면서 한마디씩 할 때는 훔쳐본다는 인상을 받았다. 귀중한 무엇인가를 몰래 가져갈 만한 놈인지 아닌지 판단하려는 듯했다. 순진한 민구는 교련 선생 앞에 불려 나갈 때 짓는 죄지은 사람 같은 표정을 하면서 얌전하게 밥을 먹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는 서로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대문을 통과하면 바로 우측의 작은 길로 가는 민구의 방과 똑바로 가서 들어가는 안채는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아저씨로 불리는 그 집 아들과는 학교 가는 길에 마주치기도 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이였다.

그 아들은 인문계가 아닌 공고를 다녔는데 가방을 옆구리에 끼는 좀 불량 끼가 있는 학생이었다. 민구보다 두 살이 많았고 형보다는 한 살 어렸다.

그날 저녁 할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그는 교련 선생처럼 군복을 입고 있었고 교련 선생과 같은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군복을 입은 모습을 민구는 그날 처음 보았다.

평소에는 신사복 차림이어서 그가 군인이라는 사실은 알았으나 실감하지는 못했었다. 짧은 머리를 단정하게 다듬고 갈색 서류 가방을 든 손목 위로 살짝 살짝 비치던 하얀색 와이셔츠가 언제나 돋보였기 때문에 군복 입은 모습은 낯설었다.

민구가 주인 할아버지 집에 온 것은 한적한 어촌 마을에 사는 외삼촌의 소개 때문이었다. 나한테는 멀었지만 엄마의 삼촌이라고 했으니 그렇게 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엄마는 전쟁 전에 친척들과 이북에서 함께 내려와서 충남 보령에 정착했다. 평양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오빠는 방학을 이용해 엄마를 만나러 왔다가 전쟁이 터져 그만 돌아가지 못했다.

엄마 삼촌들은 서울에서 살았다. 시골과 서울은 너무 멀리 있어서 자주 만나지 못했으나 소식은 간간히 주고 받고 사는 사이였다. 형은 그때 시골 농업학교에서 수재였다. 선생들이 이런 애는 아깝다고 서울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전학 보내라고 몇 번 집으로 찾아왔다.

농사짓는 아버지는 그러고 싶지만 돈이 없다고 거절했고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이북에 있을 때 어머니의 큰 아버지는 그러니까 지금 삼촌으로 불리는 주인 할아버지의 형은 해주 지방의 군수였다고 한다.

그 동생은 서울에 있는 신문사의 기자였고 그래서 어머니는 배우는 것에 미련이 있었다.

형이 고 3이 되기 전 어머니는 이 십리 길을 걸어 오빠가 사는 바닷가로 찾아갔다. 그리고 오빠가 다리를 놓아 둘째 아들 성구의 서울 전학을 부탁했다. 오빠는 그런 동생의 청을 들어주면서 삼촌이 군인이니 성구가 혼자 있다고 나쁜 길로 빠지지는 않을 거라고 걱정하는 엄마를 안심시켰다.

그러니까 군대 가기 전까지 형이 살았던 방이 지금 민구가 사는 곳이다. 그 집은 제기동에 있었는데 막 불기 시작한 개량 한옥 이었다. 주인 할아버지는 두 개의 집을 하나로 터서 넓게 사용했다.

할아버지는 첫눈에도 야무졌다. 깡마른 몸에 빈틈이 없었고 말은 항상 명령조였다. 그는 민구를 심부름꾼 아이 정도는 아니어도 언제나 심부름을 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당에는 셰퍼드 한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개밥도 민구가 주기 일쑤였다.

집안을 관리하는 식모가 있었으나 식모는 무슨 일을 하는지 늘 바쁘게 움직였다.

개밥을 챙겨주는 것은 힘든 것이 아니었다. 개를 좋아했던 민구는 그러기를 자청하기도 했다. 주인 할아버지는 방을 빌려줘서 돈도 벌고 개 관리도 하고 어떤 때는 심부름을 하는 민구를 밉게 보지는 않았다.

개밥을 주면서 셰퍼드를 바라볼 때 민구는 언제나 시골 들판을 달렸다. 옆에는 황색의 럭키가 함께 따랐는데 누가 먼저 지치는지 내기를 해도 좋다는 듯이 쉬지 않고 계속 앞으로 달려나갔다.

들판의 끝에는 작은 논들이 연달아 있었고 그 논을 지나면 넓은 백사장이 펼쳐졌다. 하늘과 바다에 기댄 백사장에는 해당화가 지천이었다. 하얀 모래 사이로 피어난 붉은 꽃은 어린 민구가 보기에도 좋았다.

백사장 앞에서 너풀대는 파도를 끼고 달렸고 그럴 때면 꽃 냄새는 마구 퍼졌고 민구는 저 끝에서 이쪽 끝까지 쉬지 않고 달려도 하나도 지치지 않았다. 검은 개가 금세 먹이를 다 먹고 입맛을 다실 때쯤 민구는 럭키가 녀석보다 더 뛰어난 개라고 판단했다.

시골보다 서울 것이 다 좋았으나 개만큼은 시골집에 있던 럭키가 나았다. 럭키는 잡종 진도견이었다. 귀가 작았고 다리가 길쭉했으며 꼬리는 끝이 등에 닿지 않고 허리 쪽에서 출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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