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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꺼삐딴 리>(1962)-이인국 박사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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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꺼삐딴 리>(1962)-이인국 박사의 인생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3.3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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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에 영합한다거나 처세술에 능하다고 하면 좀 부정적인 이미지가 난다. 시대적응이 뛰어나다거나 세상을 적극적으로 산다고 하면 긍정적으로 보게 된다. 어떤 눈으로 평가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진다.

독자들은 전광용의 <꺼삐딴 리>를 읽으면서 이인국 박사가 시대에 아첨하는 인물인지 능동적으로 인생을 개척한 사람인지 판단해 보기를 바란다.

이인국 박사는 직업이 의사다. 외과 의사다. 밀란 쿤데라식 표현을 빌리면 '인간의 내부로 향한 칼솜씨'가 뛰어난 인물이다. 대학병원에서 손쓰지 못하는 환자도 그는 너끈히 치료한 경험이 있다. 이런 실력 덕분에 병원비가 다른 병원에 두 배로 비싸도 환자들이 몰린다. 이 시절이 좋았다.

왜정시대가 끝나고 해방이 왔다. 친일파, 민족반역자 등의 구호가 나부낀다. 켕기는 것이 있지만 이인국 박사는 나야 괜찮겠지, 하는 생각이나 마음 한구석은 불안하다.

북에는 소련이 진주했다. 북에서는 남에서와는 달리 친일파에 대한 숙청이 상당했다. 이인국 박사는 일제 강점기 누구보다도 애국했다. 국어도 열심히 썼고 말도 당연히 모국어로 했다.

여기서 애국은 일본을 말하고 국어는 일본어이며 모국어도 당연히 일본어다. 외국인의 눈에 보면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으나 조선인의 눈으로 보면 뼛속까지 인본인이었다.

얼마나 애국에 열심이었는지 자다가 헛소리도 일본어로 할 정도다. 그러니 식민지 시절은 그에게 꿈이었고 인생은 그야말로 영광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누가 그럴 줄 알았으랴. 이광수식 표현을 빌리면 나라가 해방될 줄 알았더라면 굳이 친일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인국 박사는 사상범을 가난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치료를 거부했다. 환자의 행색과 그와 함께 온 사람을 보고 그가 재정적으로 부유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는 병실이 없다는 말로 그를 쫓아 보냈다. 더군다나 자타가 공인하는 황국신민이 사상범을 치유하는 것은 경력에 누가 될 터이다.

▲ 이인국 박사는 십팔금 회중시계를 보면서 과거를 회상한다. 그에게 친일이나 친소나 친미는 매 한가지였다.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것이 이인국 박사의 처세술이다.
▲ 이인국 박사는 십팔금 회중시계를 보면서 과거를 회상한다. 그에게 친일이나 친소나 친미는 매 한가지였다.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것이 이인국 박사의 처세술이다.

환자가 쫓겨난 것은 이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전에도 초라하면 여지없이 따돌렸다. 이때는 자신이 직접 하지 않고 간호사를 시킨다. 당연히  환자는 식민지 때는 주로 일본인이었고 해방 후는 권력층이나 재벌 축에 드는 사람들이었다.

이인국 박사의 병원은 세를 더해가고 종합병원의 원장 자리는 이인국 박사의 차지였다. 1.4 후퇴 때 청진기 하나 들고 월남했으나 이제는 평당 50만 환을 호가하는 도심지에 타일을 바른 2층 양옥을 소유하고 있다. 이인국 박사의 칼솜씨 만큼은 인정해 줘야 한다. 여기서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이나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을 따져야 하나.

해방이 오자 자위대에서 이름을 바꾼 치안대가 이인국 박사를 잡았고 이인국 박사는 감옥에 갇혔다. 설마 했던 것이 사실로 드러났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이인국 박사는 노심초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뉘우침이나 가책은 없었다.

이런 와중에도 이인국 박사는 자신만은 살아남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를 곱씹고 있다. 과연 이인국 박사의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감방에서 이질이 발생했다. 전염병이 돈 것이다. 이인국 박사는 이런 사실을 탱크를 몰고 진주한 소련군 소좌 스텐코프에 보고하는 기민한 행동을 벌였다.

감옥에서 간간이 익힌 노어가 도움을 줬고 이인국 박사는 그런 자신의 외국어 감각 능력을 고마워했다. 스텐코프는 뺨의 혹을 달고 있었다. 이인국 박사는 손짓 발 짓 하면서 자신이 그 혹을 떼 주겠다고 자신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거듭 말했듯이 이인국 박사의 사람의 내부로 향한 칼솜씨는 이 정도였다.

감옥에서 풀려난 이인국 박사는 스텐코프와의 인연을 계기로 아들을 모스크바로 유학 보냈다. 큰물에서 놀아야 큰 사람이 된다는 지론 때문이다. 효심 가득한 아들은 유학 후 잘 있다는 편지를 보내와 이인국 박사를 흐뭇하게 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났고 아들의 소식은 끊겼다.

1.4 후퇴 때 아내는 죽었다. 아내가 죽자 이인국 박사는 전에 병원의 간호사였던 혜숙과 결혼한다. 무려 나이 차가 20년이나 된다. 혜숙과의 사이에서 젖먹이를 하나를 두고 있다.

전처 소생인 미국에 가 있는 딸 나미는(원래는 나미코였으나 해방후 코 자를 뺐다.) 동양학 전공의 외인 교수와 결혼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마뜩잖은 이인국 박사는 그러나 한쪽으로는 어떤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미 대사관에 있는 브라운을 만나러 가는 이인국 박사는 십팔금 회중시계를 보고 있다. 약속이 20분밖에 남지 않았다. 이 시계는 감옥에서 소련군 병사에게 뺏긴 것이나 스텐코프에게 부탁해 되찾은 것이다. 웬일인지 이인국 박사는 그것을 매우 소중히 여기고 있다.

브라운은 흐뭇한 미소로 이인국 박사에게 미국 국무부 허가증을 건넨다. 브라운이 웃는 것은 이인국 박사가 가져온 고급스러운 고려청자 때문이다. 빈손으로 가지 않는 이인국 박사의 기민한 동작은 유에스에이에서도 빛을 발했다.

비행기 표를 사기 위해 반도호텔로 가는 택시 안에서 이인국 박사는 자신이 이처럼 운이 좋은 것을 마음껏 즐겼다.

: 전광용은 주인공 이인국 박사를 시종일관 이인국 박사로 표현하고 있다. 이박사나 박사 혹은 이인국이나 그라고 하기보다는 이인국 박사로 매번 칭하는 것은 어떤 의도된 이유일까.

박사가 주는 무게감과 책임감 혹은 그에 걸맞은 처세술이 이름 뒤에 붙는 호칭과 절묘한 매칭을 보이고 있다. 과연 이인국 박사는 많이 배운 박사답게 필부들은 좀처럼 하기 어려운 살아가는 신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일제 강점기는 친일로 소련 점령군 때는 친소로 미국이 힘을 얻자 친미로 발 빠르게 변신하는 이인국 박사를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도덕적으로 혹은 눈꼴 사나운 변신의 귀재로 수군댈지언정 이인국 박사의 놀라운 생존능력 앞에서는 모두 사나운 교장 앞에 선 학생들처럼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이인국 박사는 전형적인 아첨꾼, 변신술의 달인인가. 과거를 회상하는 매개체인 십팔금 회중시계를 보면서 이인국 박사는 과거를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자랑스럽게 여긴다.

“식민지 백성이 별수 있었어. 날구 뛴 들 소용이 있었느냐 말이야. 어느 놈은 일본 놈한테 아첨을 안 했어. 주는 떡을 안 먹은 놈이 바보지. 흥, 다 그놈이 그놈이었어.”

캘리포니아 특산 시가를 문 이인국 박사가 보는 하늘은 그래서 높고 더 푸르렀다. 참고로 ‘꺼삐딴’은 러시아어로 대장을 의미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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