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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근은 넘겠는데. 해체 전문가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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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근은 넘겠는데. 해체 전문가는 말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2.19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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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성으로 우는 건울음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슬픔이 배어 있었다. 곡조의 높낮이가 뚜렷했고 목소리가 매우 처량했다.

분위기에 취해서 나도 울었다. 사탕을 달라고 우는 억지 울음이었으나 나중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행길을 따라 할머니의 죽음 행렬은 길게 이어졌다. 만장이 바람에 펄럭였고 까치가 깃대에 올라타기도 했다. 형형색색의 그것은 어디서 구해왔는지 평소에는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무지개색이 총동원됐다. 명절날이나 입는 때때옷도 이처럼 화려할 수는 없었다. 그 풍경은 낯설었으나 멋스러웠다.

행렬이 나지막한 산에 도착한 것은 정오 무렵이었다. 해는 중천에 있었고 사람들은 말은 안 했으나 배가 고픈 눈치였다.

중간에 이탈한 나는 집에서 밥을 조금 먹었다. 뭉쳐둔 누룽지를 종이에 말아 들고 아무도 없는 빈집에 누워서 조금씩 떼어먹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잠속에서 할머니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런 꿈도 없었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잠이 깨자 나는 벌떡 일어나 산으로 내달렸다. 누가 말해주지 않았어도 가봐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막 관이 내려지고 있었다. 자식들은 곡을 했고 일부는 통곡을 했다. 그렇게 슬퍼할 일인지 의아했다. 살아 계실 때 무심했던 사람들이 더 크게 울고 더 큰 몸짓을 보였다.

두 팔로 관을 잡는 사람도 있었고 그것을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그런다고 관속의 할머니가 무덤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생전 보지 못한 사람도 와서 소리 높여 울 때는 사람들이 달리 보였다. 작은 봉분이 만들어지고 나서 식사를 했다.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삽이 들어갈 공간 조차 없었다.

자손들이 돌아가면서 한사람씩 삽질을 하고 나서 나머지는 일가친척이나 동네 사람들이 했는데 순식간에 무덤은 채워졌다. 일꾼들은 배가 고팠다.

무덤의 다른 쪽에서는 솥을 걸고 장작불을 땠다. 매캐한 연기 사이로 두부가 익고 돼지고기가 김치 사이로 붉은빛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먹어 보는 고기였고 흰쌀밥이었다.

사실 내가 잠이 깨고 바로 산으로 간 것은 아니었다. 한 오 분 정도 지체했는데 그것은 마당에서 모여든 사람들 때문이었다.

대여섯 명의 장정들이 멍석을 깔고 그 위에 커다란 돼지를 올려놓았다. 돼지는 두 발과 뒷다리가 묶여 있었다. 시커먼 돼지는 도끼질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악다구니를 썼다.

입에서는 거품이 흘러 넘쳤고 그 옆에서 식칼을 갈고 있는 사람과 도끼자루를 단단하게 치는 사람이 보였다. 나는 그전에도 돼지 잡는 모습을 두어 번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어떤 식으로 돼지가 죽는지 미리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준비나 절차가 이전과 다를 바 없었고 돼지 잡기의 명수로 알려진 사람이 뒷짐을 지고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직접 돼지를 도살하지는 않았다. 죽은 돼지를 해체하는 전문가였다. 어디부터 칼질을 시작해야 할지 가늠하는 폼새였다. 그가 말했다. 백 근은 넘겠는데.

그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팽나무 아래에서 막걸리 통을 들고 오는 사람은 술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는 이웃 마을 목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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