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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찿아오는 빠져나가는 영혼을 불러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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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찿아오는 빠져나가는 영혼을 불러 들였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1.08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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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병동의 간호사가 아내인 것은 오래전에 이야기 했다. 그녀는 그것을 하고 난 이후 천성과 맞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내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그녀는 그 날 이후 생기를 찾았다.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삶의 활력을 얻었던 것이다.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는 사람은 얼굴에 그렇게 씌여 있다. 오늘 하루도 즐거우리라는 것을, 그래서 사는 맛이 난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이것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표정이 그렇다. 아내는 들어주고 같이 울어주고 마음 아파하면서 환자와 자신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알았다.

남들은 고단한 삶이라고 지레 짐작했다. 어떤 이는 먹고 사는 것도 다 가지가지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고단하지도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 자신이 살기 위해서 였고 그래야만 삶에 의미가 있었다. 어떤 날은 하루에도 몇 명이 이승과 작별을 했다.

불과 몇초전에 자신의 손을 잡고 환한 미소를 짓던 사람이 더는 살아 있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처음에 그녀는 당황했다. 생명이, 온기를 가졌던 생명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모닥불도 꺼지기 전에 그런 신호를 보낸다. 신호는 길고 오래가며 준비할 시간을 준다. 그런데 사람은, 내일을 이야기한 사람이 오늘 다른 세상으로 넘어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자는 당황하지 않기 위해 하루에도 여러번 이별 연습을 했다. 마치 지금이 세상의 종말인 것처럼 행동했고 마음을 썼다. 그래서 인지 몸과 마음은 늘 녹초가 됐다.

무엇인가에 최선을 다하고 정신을 집중하는 것처럼 체력을 고갈시키는 것은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내에 비해 훨씬 편한 직업을 갖고 있다.

정신의 소모는 거의 없다. 몸만 쓰면 된다. 하루 종일 쓰레기봉투에 비닐과 스티로폼을 담으면 된다. 나는 생각한다. 모든 직업이 사라져도 내 직업은 온전할 것이라고.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사람들은 존재할 수 없다. 인류 멸망 직전까지 인간은 쓰레기를 배출한다. 그것도 오래가는 쓰레기를 말이다.

그런 것을 치우는 작업은 나쁠리 없다. 청소한다는 것. 버려진 것을 치운 다는 것. 더러운 것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 놓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은 소방관처럼 욕먹는 일이 아니다. 욕먹지 않고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호감을 갖는 공무원이 소방관 말고 더 있으랴.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면 청소 공무원이다.

내가 그 일을 하고 있다. 하루 종일 손을 부지런히 놀린다. 그러면 식사가 아주 꿀맛이다. 쓰레기 청소를 하고 난 이후 밥맛이 없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밥은 늘 맛이 있었고 허기를 달래줬고 간혹 찾아오는 빠져나간 영혼을 불러 들였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조금 미안했다. 편안 내일과 어려운 그녀의 일이 대비됐기 때문이다.

언젠가 전화로 그런 뜻을 비치자 아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전화기 너머로 손을 저으면서 강하게 부정하는 아내의 모양이 떠올랐다.

누군가를 위해 혹은 자기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은 인간에게 매우 신성한 일이라고 했다. 과대평가 하지 말라고 그녀는 내게 당부했다.

그런 그녀가 얼마 후면 한국에 온다. 무려 3년 만에 일주일 휴가를 얻어 오는 것이다. 그녀는 휴가 중에도 늘 병동에 출근했다. 그것이 그녀의 삶이었으므로.

가는 이의 눈을 보며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그녀는 그런 길을 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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